▲ 새 정부의 인사파동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해가 엇갈린 계파별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대통령 취임 축하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형 이상득 의원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청와대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문책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인사 파동과 관련해 “(정부 인사) 자료를 활용하지 못한 점도 있다”며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서 정부 인사자료 접근제한 등으로 인해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자인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일어난 일에 대해 현실을 탓할 게 아니라 극복하려는 노력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 국민에게 일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문책론은 일축했다.하지만 문제는 이 대통령의 간접 ‘사과’ 발언으로 이번 인사 파동이 쉽게 잠재워질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일단 통합민주당이 공개적인 대 국민 사과와 함께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며 총선 때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총선의 결전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은 그 대응차원에서라도 계속 인사 파동에 대한 책임론 등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나라당에서 일고 있는 책임론의 또 다른 이면에는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전 고문으로 대표되는 원로그룹과 이재오 정두언 의원으로 대표되는 소장그룹 간의 권력투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전문가는 이에 대해 “최근의 잇단 인사 파동에 대해 정두언 의원이 쓴소리를 하면서 원로그룹과 소장그룹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새 정부 핵심 요직 인선을 주도한 사람은 초반에는 정두언 의원이었지만 그가 워낙 실세다 보니 원로그룹과 교수그룹 등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은 것으로 안다. 이는 이번 장관 인선에서 그가 올린 인사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신빙성이 있다. 반면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이 인선 작업을 주도했다. 이런 점에서 정두언 의원 등의 소장그룹이 원로그룹이 올렸던 인선안이 문제가 되자 집중적으로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 아니겠느냐. 특히 이번 인사 파동이 3명의 장관 내정자 낙마와 함께 잠잠해질 경우 권력투쟁의 불길이 더 일어나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인사 잡음이 나올 경우 당·청간의 대대적인 파워 게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사실 양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은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정두언 의원이 지난 2월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부 인선이나 한나라당 공천은 총선에서 압승한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인선내용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정 의원이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이 발언은 누가 봐도 인선 작업을 주도했던 박영준 비서관을 지칭한 것이라는 게 당내의 해석이었다. 정 의원이 박 비서관을 겨냥한 것은 단순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인사 때문만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인사작업의 부적절성을 제기한다기보다 향후 일어날 파워게임의 전주곡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권력다툼 그림자가 스멀거리고 있다.
정 의원의 경우 자신과 친분이 있는 정부인맥들이 각종 핵심요직의 하마평에 오르내린 뒤부터 원로그룹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올린 ‘인선안’이 박영준 비서관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에선 이명박 새 정부의 요직 인선 작업에 깊이 참여해 온 정 의원이 비판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예상 밖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당내 전반적 기류는 정 의원이 지적한 이번 인사 파동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이번 청와대 비서진 인선도 전공과 대우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오죽했으면 행정관 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도 있겠느냐.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경쟁력도 문제가 있게 된다. 정 의원이 지적했던 인사 문제가 일리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두언 의원을 위시한 소장파와 이재오 의원이 정치적 지향점이 달랐지만 이번 인선 파동을 겪으며 한배를 탔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실 이 의원은 6인회의에 속할 정도로 실세이긴 했지만 같이 했던 원로그룹과는 정치적으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해결사로 나선 이상득 의원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말이 중재이지 실제로는 이 의원이 이상득 의원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래서 이상득 의원이 당에 계속 남아 있는 것도 이재오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대선의 막판에 이재오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가 또 다시 갈등을 겪었을 때 이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내놓고 ‘토의종군’을 했을 때였다. 이때부터 양측 간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최근 이상득 그룹이 주도한 인사가 문제를 일으키자 이재오-정두언 그룹이 ‘연합군’을 형성, 인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온 자신들의 입지 회복을 위해 반격을 하는 과정이 바로 인사 파동의 권력투쟁 본질이라는 것이다.
양측 간의 갈등은 이상득 의원의 공천 파동과 최시중 전 고문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확정이 지연되고 있는 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먼저 이상득 의원의 공천 파동을 보자. 그는 지난 2월 29일 공천심사위원회로부터 최종 낙점을 받긴 했다. 하지만 이 의원이 공천장을 받기 전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것은 이상득 그룹 대 이재오-정두언 그룹 간의 보이지 않는 권력갈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재 공천 문제로 공심위 회의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이 의원의 공천배제를 주장한 공심위원은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와 김애실 의원인 것으로 알려진다. 강 교수는 17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공심위원을 맡았는데, 당시에도 ‘물갈이’를 적극 주장했던 강성 인물이었다. 김애실 의원은 처음부터 ‘이명박계’로 분류되던 인물. 그런데 김 의원이 이명박계의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오 의원 측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득 공천 갈등의 본질에도 이상득 대 이재오-정두언 연합군의 권력 투쟁 단면을 볼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특히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이상득 의원의 재 공천을 두고 “공천 물갈이는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이제 총선은 물 건너갔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측은 애초 최 전 고문을 위원장으로 확정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여론이 “이명박 측근들이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대표적인 코드인사”라며 부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측근 중의 측근을 초대 방통위원장에 내정하려는 것은 방송 장악 음모라는 비난 여론이 비등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초 최 전 고문은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맡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지원할 것으로 본인이 스스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자 본인이 적극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전 고문이 모두 ‘현역’에 나선 것은 이명박 정권이 이재오-정두언 그룹에 의해 컨트롤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일종의 견제 장치를 공식적으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권력 창출 과정에서는 협력 관계였지만 이제는 각자 도생하지 않으면 어느 날 뒷방 늙은이로 내몰릴 자신들의 입지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일종의 무리수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 전 고문의 방송통신위원장 내정 소식에 대해 소장그룹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뭔가 이상한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이번 인사 파동에서도 안일한 자세를 보였는데 최시중 전 고문 등과 같은 최측근 인사들을 핵심요직에 앉히는 것은 비판 여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국민을 섬기는 게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정권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 전 고문이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막후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온 만큼 청와대가 쉽게 ‘최시중 카드’를 내려놓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이상득 재 공천-최시중 전 고문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으로 이명박 정권의 권력투쟁 1차전은 원로그룹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권불 10년이 아니라 1년이다. 지금 아무리 잘 나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만한 자세를 버리고 낮은 자세로, 희생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이 권력다툼의 모습보다는 경제회생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