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공천 저승사자로 통하는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공심위가 5일 부정·비리 전력자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기준을 확정하자 민주당은 벌집을 쑤신 듯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쇄신 공천 칼날에 바짝 긴장하는가 하면 “박재승이 당 총재냐”는 격앙된 반응도 표출됐다.
공심위는 당내 거센 반발과 지도부의 선별 구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금고형 이상 비리 전력자에 대한 예외 없는 공천 배제 카드로 본격적인 개혁 공천 드라이브를 구사하고 있다. 공심위의 초강수는 DJ계를 비롯한 구 민주계와 친노그룹 등 오랫동안 민주당 터줏대감으로 행세해 온 주류세력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DJ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차남 김홍업 의원을 비롯해 구 민주계인 이용희 국회부의장, 신계륜 사무총장, 김민석 전 의원, 친노그룹인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안희정 씨 등 중량급 인사들이 대거 숙청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숙청 대상자 중 일부는 탈당은 물론 무소속 출마도 불사하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고 당 일각에서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등 개혁 공천을 둘러싼 내홍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슬퍼런 공심위의 쇄신 칼날은 극심한 후유증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남권 30% 물갈이론과 맞물려 현역 의원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중량급 11인 숙청’ 카드로 공심위가 공천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게 됐고 무엇보다 사심 없는 개혁공천 의지에 여론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큰 힘이 되고 있다.
▲ 손학규 대표(오른쪽). | ||
민주당 홈페이지 등에는 “박재승 위원장이 한국정치사에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지지자들이 속출하는 등 지지층 결집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 박 위원장을 ‘정치권의 암행어사’라고 부르거나 이참에 아예 당 대표로 내 세우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박재승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박 위원장의 개혁공천이 성공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경우 민주당은 ‘대선 완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4월 총선에서 기대 이상으로 선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심위의 공천혁명은 민주당내 역학구도 및 차기 대권 지형에도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공천 배제가 확정된 중진급 11인은 대부분 DJ계와 구 민주계 친노그룹 등으로 명실상부한 민주당내 주류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숙청은 민주당내 역학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호남 의원 물갈이는 여전히 ‘호남당’ 이미지가 강한 민주당의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중도개혁세력을 결집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공천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민주당내 주류세력 교체는 불가피하고 그 최대 수혜자는 손 대표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천 혁명을 주도한 박 위원장을 ‘삼고초려’한 끝에 영입한 장본인이 바로 손 대표이고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성공할 경우 자신을 정점으로 한 계파가 당내 신주류로 입지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기득권 세력인 DJ계와 친노그룹을 완전히 청산할 경우 민주당에 드리워진 구 정치 이미지와 친노 색깔을 탈색해 ‘손학규 브랜드’로 총선을 치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또 공천혁명을 통해 4월 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경우 손 대표는 취약한 당내 기반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류세력으로 우뚝 서는 동시에 야당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손 대표의 대망론에도 청신호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손 대표가 박 위원장과 공심위에 공천 전권을 부여하는 등 독립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자신 스스로 ‘공천혁명’이란 대의를 천명하고 나선 배경에는 나름의 총선 전략과 중장기 대권 플랜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5일 공심위의 중진급 11인 숙청 결정으로 당 전체가 술렁거릴 때 손 대표가 “구시대 정치행태를 보인 인사는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며 개혁공천 의지를 재천명하는 동시에 “어떤 일이 있어도 공심위를 지킬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공심위에 쇄신 칼날에 한껏 힘을 실어줬던 것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손 대표의 총선 전략과 대권 승부수가 순조롭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뿌리 깊은 야당의 생리와 한국적 현실, 쇄신 공천에 따른 극심한 후유증, 여기에 DJ를 중심으로 한 호남 역풍이 가세한다면 박재승 위원장의 쿠데타는 자칫 불발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숙청 대상에 오른 11명의 중진급과 호남권에 탈락이 예상되는 10여 명의 현역 의원들 중 상당수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호남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어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DJ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박지원 전 실장과 김홍업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 무소속 출마 시에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 사람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동교동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호남 여론의 역풍을 몰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박지원 전 비서실장(왼쪽), 김홍업 의원 | ||
당 일각에서는 손 대표가 박 위원장의 쇄신 공천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총선 후 민주당 당권과 차기 대권을 겨냥한 두 마리 토끼 사냥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손 대표가 정적 제거 차원에서 작심하고 깐깐한 박 위원장을 영입했고 그에게 공천 칼자루를 쥐어준 게 아니냐는 게 음모론의 골자다.
‘껄끄러운 상대방을 내 칼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서 제거한다’는 이른바 ‘차도살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구 민주계인 K 의원은 “손 대표는 박 위원장의 공천 칼날을 빌려 본인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며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을 숙청한 기세라면 호남권과 수도권 현역 물갈이 폭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K 의원은 또 “손 대표와 박 위원장 간의 사전 교감여부를 떠나 공천혁명이 성공할 경우 손 대표는 민주당을 친정체제로 구축하면서 야당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물갈이 대상으로 몰린 DJ계와 구 민주계가 조직적으로 반발할 경우 극심한 역풍에 시달릴 수 있고 총선을 전후해 민주당이 또다시 분열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정동영 전 장관계도 이러한 음모론 제기에 한몫 가담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의 핵심 측근으로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캠프 좌장 역할을 했던 이용희 부의장이 숙청 대상에 포함됐고 정 전 장관의 텃밭인 전북지역 의원 중 상당수가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되자 음모론에 한자리 거드는 형국이다. 정동영계는 손 대표가 민주당 최대 주주이자 자신의 대권 라이벌인 정 전 장관의 수족을 잘라내는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공천 칼날을 맞은 이용희 부의장은 연일 박 위원장과 공심위를 겨냥해 “제정신이 아니면 못된 짓을 할 수 있느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당적도 없는 공심위원장과 위원들이 제멋대로 놀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6일 이 부의장의 지역구인 충북 보은군 당원단합대회에 참석한 정 전 장관도 “당의 고심은 이해하지만 원칙은 반드시 지혜와 조화를 이뤄야 하고 그런 면에서 어제 결정이 최종은 아니다”고 말해 5일 단행된 ‘공천 쿠데타’에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재승발 공천 쿠데타’는 민주당 뿌리와 당내 권력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메가톤급 태풍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박 위원장은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전제하면서도 “호남의 변화가 민주당 변화의 상징”이라고 말해 대대적인 호남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또 비리·부정 전력으로 탈락한 인사 일부를 전략공천 내지는 비례대표 추천을 통해 구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상식상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공천혁명 최대 수혜자로 지목받고 있는 손 대표 역시 또한번 중요한 정치실험 무대에 오른 상태다. 친정체제 구축이냐 역풍이냐 쇄신공천 카드로 승부수를 띄운 손 대표의 정치적 명암은 공천 결과와 후유증 봉합 여부, 그리고 총선 민심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손학규 박재승의 혁명은 총선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