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나왕 | ||
그러나 그녀의 명성 속에는 부귀와 명예라는 단어와 함께 허영과 사치, 섹스와 탐욕이라는 단어도 담겨있다. 그녀는 홍콩에서 ‘리틀 스위티’라고 불리운다.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에도 요란한 화장과 현란한 의상을 입고 다니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지난 1백71일 동안 자신의 유명세를 실컷 즐겼다. 이 기간 동안 전매체가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했다. 그녀가 법정에 출두했기 때문이었다. 분쟁의 대상과 그 상대도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법정다툼의 맞상대는 그녀의 시아버지 딘쉰왕(90)이었다. 싸움의 대상은 니나왕의 남편이자 딘쉰왕의 아들인 테디왕(56) 이름으로 되어 있는 저택이었다. 최고의 전망과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는 이 대저택의 시가는 약 2억달러.
분쟁의 출발은 테디왕이 납치범에 의해 유괴가 되어 사라지고부터였다. 이때가 1990년. 거부인 테디는 이미 1983년 한 차례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 테디의 가족들은 1천1백만달러의 몸값을 치른 후 테디를 만날 수 있었다.
테디의 실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두 사람에게는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였다. 테디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대저택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넘어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사망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니나가 아내로서 소유권과 재산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사정은 니나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법정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와중에도 니나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차이나챔’이라는 회사를 홍콩 최대의 회사로 발전시켜 놓았다. 그러나 딘쉰왕은 아들이 사라지기 전 니나가 보여 준 사생활의 내막을 공개하는 등 승소에 적극적이었다.
니나가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법정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이 사진은 테디가 죽기 전 직접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찍힌 것이었다. 1999년에는 마침내 테디가 ‘죽은 사람’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검거된 테디의 납치범들이 그 내막을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홍콩의 자키클럽이라는 곳으로 돌아오는 테디를 유인해 납치한 다음 작은 나무배에 가두었다가 나중에 바다로 던져버렸다고 진술했다.
모든 것이 니나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다. 그리고 최근 1백71일 동안의 마지막 심리기간에 최종적인 판단이 내려졌다. 대법원 재판부는 ‘니나왕이 죽은 남편의 집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집은 딘쉰왕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시아버지에 의해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되었음에도 기가 죽지 않았던 니나왕은 그러나 마지막 재판에서 끝내 우려하던 결과가 나타나자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