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안희정 충남지사가 야권 유력 대권주자 (우)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16.12.29 사진= 연합뉴스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찍는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신조어는 ‘문재인 대세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에 출마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다져왔고 박근혜 대통령에 아쉽지 않은 나름의 ‘콘크리트’ 지지층도 가지고 있다.
8주째 대선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문 전 대표를 바짝 추격하는 이는 안 지사다. 그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지지율을 흡수하고 지난 17일 ‘마’의 지지율 20%를 돌파하며 ‘안희정 대망론’을 보였다.
일부는 과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를 언급하며 ‘안희정 새 바람’ 아니, ‘새 태풍’을 기대하기도 했다.
최근 23.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문 전 대표를 맹추격하던 안 지사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일 안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이루지 못한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고 주장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가 내놓은 ‘대연정’ 제안에 맹공격이 이어졌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대연정은 배신”이라고 비판했고, 문 전 대표도 “연정은 어렵다고 본다.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대했다. 박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자유한국당을 ‘협치’의 대상으로 보는 그 자체가 ‘촛불 민심’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안 지사는 “저의 연정 제안은 박근혜-최순실을 용서하자는 것도, 과거의 적폐를 덮고 가자는 것도, 새누리당을 용서하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민주주의 의회정치의 움직일 수 없는 대원칙”이라고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연정’ ‘선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사진= 연합뉴스
그리고 19일, 안 지사는 ‘제2의 대연정 발언’을 내놓았다.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는 듯한 ‘선한 의지’ 발언이었다. 처음에는 논란이 확산되자 ‘반어법’을 통한 비판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오히려 “일부 언론에서 저의 발언 취지와 전혀 다르게 기사를 작성해서 보도해서 그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지 안 지사는 지난 20일 JTBC <뉴스룸>을 통해 “어떤 주장을 대하고 대화를 할 때 첫걸음이 선한 의지라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부당한 거래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모두 선한 의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처음에는 반어법이라더니 나중에는 ‘실수가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던 말’이라고 수습했다.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것이다. 그리고 네티즌들은 이날을 ‘뉴스룸 대참사’라고 불렀다.
이렇게 두 차례 큰 홍역을 치뤘던 안 지사는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19일 자신의 캠프를 방문해 “제가 모셨던 분들이 떨어져서 죽고 나서 들었던 심정”이라며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나서 제 마음이 편향돼 가는 것 아닐까 스스로 경계했다. 그런데 저는 편향에 빠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떨어져서 죽고 나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자칭 ‘노 전 대통령의 적자’라던 사람이 ‘떨어져 죽고’라는 어휘를 선택했다는 것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안 지사의 아슬아슬한 발언은 그를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허탈감과 배신감을 안겨줬다. 그의 언행때문일까. 그의 지지율 상승세가 4주 만에 꺾였다. 20%를 넘던 지지율은 어느새 10%대로 떨어졌다.
그의 정치적 신념뿐만이 아니다. 화법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그의 화법을 두고 일각에선 ‘양다리 화법’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동안 그의 발언은 다소 듣는 이를 헷갈리게 했다. “새누리와 대연정 할 수도 있다.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의원내각제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재용 영장 기각을 존중해야 한다. 법 비판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이명박-박근혜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를 어겼다. 다만, 선의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농담이다.”
뚜렷한 자신만의 철학이 없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여지를 만드는 비겁한 화법이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단도직입적인 전달보다는 에둘러 표현해 뜻이 모호해지기도 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안 지사는 되려 “언론이 왜곡 보도”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화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근혜어’를 떠올리게 한다. 2013.4.4 사진= 연합뉴스
게다가 안 지사의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화법은 국민들을 설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의의 마지막 완결은 사랑으로서 마무리되는 것, 이게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까요?” 듣는 이를 헷갈리게 하는 안 지사의 화법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의 화법에 네티즌들은 “‘근혜어(박근혜 대통령의 화법)’ 같다”, “번역기 돌려달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22일 토론회에서도 다소 혼란스러운 발언을 내놓았다. “어떻게 하면 표를 더 얻는 것에 대한 각자 계산을 하겠지만, 정치인의 저 안희정의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하늘로부터 받은 제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리는것, 그게 가장 승부를 낼수 있고 지도자로서 설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마음의 소리와 진실로 그 명령하는 바대로 걸어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국민들은 이미 ‘우주’ ‘혼’ ‘진실된 사람’ 같은 애매모호한 어휘와 화법에 지친 상태다.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을 확보하고 지지율 1위 문 전 대표와 격차를 좁히기 위해선 말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고 구체적이고 분명한 화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