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출자다.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에 이르기까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물론 ‘팬덤’으로 인정받는 티켓파워도 있다. 김은희 작가도 마찬가지. <싸인>을 시작으로 <유령>과 <시그널>에 이르기까지 장르드라마를 개척한 인기 작가로 인정받는다. 그와 손잡은 김성훈 감독 역시 영화 <끝까지 간다>와 <터널>로 연이어 흥행에 성공한 연출자다.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면서 영화계와 방송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초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다 할 확장을 보이지 않은 넷플릭스가 인기 감독 및 작가와의 협업으로 영역 확대를 적극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합작이 만들어낼 시너지를 쉽게 예측할 수도 없어 시선을 떼기는 더욱 어렵다.
동시에 북미와 유럽 시장을 석권한 넷플릭스는 <옥자>와 <킹덤>의 제작 투자를 통해 한국 콘텐츠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도 노린다. 성공한다면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이끄는 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킹덤>…한국 오리지널 시리즈의 시작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출발한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이다. TV나 휴대전화 등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넷플릭스가 제작한 콘텐츠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도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휴대용 이동 기기를 통해서도 손쉽게 접속할 수 있어 빠르게 가입자를 늘려왔다. 치열한 정치의 세계를 다룬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내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드라마 ‘킹덤’의 김성훈 감독(왼쪽)과 김은희 작가. 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가 내놓는 첫 한국 드라마 시리즈인 <킹덤>은 올해 촬영해 내년에 공개된다.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극의 배경은 뜻밖에도 조선시대다. 왕세자가 걸린 의문의 역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라 전체를 위협할 만한 진실을 마주한 주인공들의 이야기. 외연은 사극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좀비물이다. 사극과 좀비 스릴러를 접목한 첫 시도다.
8부작으로 제작되는 <킹덤>은 대규모로 완성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아직 구체적인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가 그동안 진행한 방식을 고려하면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시대극 드라마의 경우 편당 100억 원을 쏟아 붓는 투자도 마다지 않았다. 실제로 김성훈 감독은 “<킹덤>을 영화 이상의 규모로 완성할 계획”이라며 “기존 드라마 문법에 제약 받지 않는 혁신적인 형태로 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왜 <킹덤>을 택했을까. 넷플릭스의 에릭 바맥 부사장은 “사극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초자연적인 판타지 요소를 함께 녹인 <킹덤>의 시나리오는 마주한 순간부터 상상력을 자아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김은희 작가가 이번 작업에 거는 기대도 상당하다. 2011년 SBS에서 방송한 <싸인>의 후반부를 쓰던 무렵 <킹덤>을 처음 구상했다는 김은희 작가는 “현대 사회의 공포와 두려움을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에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넷플릭스와의 작업으로 <킹덤>에 품었던 창의적인 상상의 나래를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옥자>…한국영화 새로운 패러다임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드라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다면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그보다 먼저 시험대에 오르는 한국 영화다. 기획부터 제작, 공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한국영화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을 택한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옥자’ 홍보 스틸컷. 사진제공=넷플릭스
<옥자>는 향후 세계 시장을 노리는 한국영화의 제작 방식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기대의 시선을 받는다.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라면 넷플릭스와 협업해 세계시장으로 향할 수 있다는 방식을 알리고 있어서다.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이유도 그 방식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봉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보다 더 큰 예산과 완벽한 창작의 자유라는, 동시에 얻기 힘든 두 가지를 넷플릭스가 제공했다”며 “감독으로서 진정 환상적인 기회”라고 밝혔다.
<옥자>의 독특한 스토리는 넷플릭스와의 만남을 가능케 했다. 온전히 한국 자본으로 제작하기에는 규모는 물론이고 작품의 메시지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옥자>는 비밀을 간직한 채 태어난 거대한 동물 옥자가 어느 날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옥자의 하나뿐인 가족인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 분)가 필사적으로 옥자를 찾아 나서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옥자의 탄생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난 슈퍼돼지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관객의 호기심까지 자극하고 있다.
<옥자>는 6월 공개될 예정이다. 넷플렉스가 제작하는 콘텐츠는 자사 플랫폼을 통해서만 공개되지만 <옥자>는 예외다. 6월 극장에서 먼저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