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 예비 후보는 법정 선거비용의 5% 한도, 최대 약 24억 원을 모을 수 있다. 공식 선거 운동 기간에 발생한 비용은 국가에서 보전해 주지만 경선 비용은 그렇지 않다. 대선 주자들이 당 예비 후보 등록을 서두르는 이유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후원회 ‘문재힘 위원회’가 후원 계좌를 연 지 이틀 만에 7억 원을 돌파했다. 일요신문 DB
‘문재인 대세론’은 후원 규모에서도 입증됐다. 문재인 전 대표는 3월 2일 후원 조직 ‘문재힘 위원회’를 발족했다. 문재힘 위원회는 후원 계좌를 연 지 이틀 만인 3월 4일 후원 금액이 7억 원을 넘어섰다. 이틀 만에 법정 한도 금액인 24억 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채운 셈이다. 문재인 캠프에 따르면 참여 인원은 1만 명을 돌파했고 후원자의 96%인 9728명이 10만 원 이하 소액 후원이었다.
문재인 캠프에선 탄핵 국면임을 감안해 조용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펀드’와 같은 대규모 캠페인 대신 일반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후원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후원회장을 따로 두지 않고 ‘국민 모두가 후원회장’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문 전 대표 측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선고된 뒤 모금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깜짝 이벤트 등도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민정 대변인은 “탄핵 집중을 위해 모집을 조용히 진행했음에도 자발적 개미 후원자들이 몰렸다”며 “정권교체의 여망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후원회인 ‘흙수저 후원회’는 민주당 경선 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10억 원을 돌파했다. 일요신문 DB
이재명 성남시장 후원 규모도 관심을 모은다. 이 시장 후원 조직인 ‘흙수저 후원회’는 3월 3일 10억 원을 돌파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빠른 2월 9일에 후원회를 출범시켰다. 당시 하루 만에 후원금이 약 3억 원을 넘어서 화제가 됐다.
이재명 캠프에선 KTX 해고 노동자, 단역배우, 사드 배치 반대 운동가 등을 공동 후원회장단으로 꾸렸다. 김남준 대변인은 “대표적 유명 인사를 모시던 기존 후원회와 달리 이재명 시장 후원회는 공동 후원회장 체제다. 모든 후원회장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분야별 대표 ‘을(乙)’들이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캠프 관계자는 최근 이 시장이 호남을 방문한 뒤 후원 참여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대변인은 “현재까지 약 2만 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보고 있다. 지지자들 모임이기 때문에 후원에 참여한 인원수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후원금 대부분은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다. 법정 한도액이 언제 채워질지 종잡을 수 없다. 다만 1만 명이 넘는 후원자 다수가 서민, 비정규직 노동자,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 서민들, 흙수저 계층이 참여하고 있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적극적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희정 캠프는 후원 규모 공개에 신중한 입장이다. 박수현 대변인은 “헌재의 탄핵 결정 등 엄중한 시국이 계속되는 가운데 후원금 등으로 세몰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후원금 모금도 탄핵 이후 안 지사만의 방법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희정 캠프에선 이세돌 9단을 비롯해 스타트업 CEO 등 청년 15명으로 후원회장단을 꾸렸다. 2월 16일부터 후원금 모금을 시작해 약 5억 원의 후원금이 모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허성무 정치 평론가는 “소액 후원금이 많이 들어올수록 절대적 지지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 투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액 후원자들은 지지를 끌어 모으는 힘이 있다. 자발적으로 후원에 참여했기 때문에 지지하는 후보를 가족, 지인 등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후보 입장에선 개미 후원자가 많을수록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여권 주자들은? 모금함 오픈 시기 고심 후원금도 야권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야권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게 예상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회 한 관계자는 “후원금이 야권에 폭발적으로 몰리고 있다. 정권 재창출의 국민적 염원이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권 대선 주자들은 후원금 모집 시기 등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모양새다. 바른정당은 3월 3일부터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지만 아직 등록 마감 시한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먼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경선 후보 등록을 마쳤다. 남 지사 측은 “후보 등록을 빨리하면 그만큼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후원회를 열 수 있는 등 이점이 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리가 끝난 뒤 후보 등록을 할 예정이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대통령의 탄핵 결과가 나오면 후보 등록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사비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경선 룰이 확정되지 않아 후원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이후 후원회 구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는 “여권 후보들은 전통적으로 기업, 부유층의 후원이 많이 들어온다. 야권만큼 활성화되진 않겠지만 열혈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후원에 어려움을 겪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또 다른 국회 관계자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미 야권으로 몰려 여권 대선 후보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