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의원(왼쪽), 이방호 전 사무총장 | ||
물론 측근 그룹들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향후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단 ‘국민의 심판’을 받아 여의도에서 ‘아웃’된 인사들을 중용하는 데는 청와대 역시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의원의 낙마는 ‘친이’(친 이명박)계 인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 줬다. 이번 총선 공천과정에서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재오 의원, 정두언 의원, 강재섭 대표 등은 각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 의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상당수 계파 인사들을 공천 받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었다. 이 때문에 오는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이 의원이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러나 이 의원의 낙마로 인해 ‘이재오계’, 더 나아가 친이계는 새로운 리더를 찾아야 할 입장이다.
물론 이 의원이 원외인사로서 당권에 도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한 최소한 최고위원직에 복귀할 길도 열려 있다. 강창희 최고위원이 원외인사임에도 최고위원직을 맡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오는 10월 있을 예정인 재·보궐 선거를 통해 다시 원내에 진입하는 방법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당선자만 37명에 달해 ‘빈자리’가 생길 여지는 크다. 그러나 시기상 이미 전당대회가 끝난 시점일 뿐 아니라 본인 역시 정치적 텃밭인 은평을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는 것이 썩 내키는 카드가 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단 주요국 공관장으로 나가 자신에 대한 당 내부의 ‘반감’을 희석시킨 뒤 복귀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돌고 있다. 이는 공천에서 탈락한 권철현 의원이 주일 대사라는 ‘보상’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이와 더불어 이 의원이 한동안 칩거에 들어간 뒤 개각 때 정부요직에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 의원의 ‘부활 시기’를 한반도 대운하와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인사들도 있다.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이 대통령이 보수 대연합 등을 통해 ‘절대과반 의석(168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대운하 건설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 것이고 이때 ‘대운하 전도사’인 이 의원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해 당 내외 친박계 인사들은 이번 총선과정에서 ‘대운하 반대’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친박 측 인사들의 대운하 반대 움직임에 맞설 인물을 찾아야 하는데 이 의원만큼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방호 전 총장의 경우 친박계 인사들뿐 아니라 최구식 의원 등 중립 성향의 인물들로부터도 ‘공천 학살의 주역’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터전’인 영남권에서 이 전 총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부활의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의 한 관계자는 “2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잘 봐야 한다. 지방선거는 지난해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2:3:3:2 룰’이 적용된다. 만일 조직의 귀재인 이 전 총장이 경남지사를 노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3:3:2는 경선과정에서 대의원과 당원, 일반국민과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을 말한다. 대의원과 당원 등 조직력을 갖춘 후보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만일 이 전 총장이 경남지사를 노린다면 김태호 현 지사와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이번 총선에서 이 전 총장은 영남권에 적지 않은 ‘인맥’을 심은 것으로 평가된다. 유사시 이들 대부분이 이 전 총장의 우군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전 총장으로서는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관측은 어디까지나 이 전 총장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는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전 총장 역시 이재오 의원처럼 재·보궐 선거, 입각 등 부활을 위한 몇몇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시각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운영했던 ‘정무특보단’ 형식의 자문 그룹을 이 대통령이 운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통령도 정무기능 강화를 위해 공식조직 형태를 띤 ‘조언자 그룹’을 만들어 이재오 의원이나 이방호 전 총장을 우선적으로 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형준·정종복 의원의 경우 앞의 두 ‘패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휴지기’가 길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 의원의 경우 해당 지역구인 경주에서 당선된 친박연대 김일윤 후보가 금품 살포 등의 혐의로 사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터라 재·보궐 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가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는 바람에 친박계 인사들의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동아대 교수에 적을 두고 있는 박형준 의원은 학계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그보다는 이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새 둥지를 틀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박 의원은 지난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측 대변인을 맡아 박근혜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를 막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특히 그가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신(新)발전 체제’를 이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등 집권에 필요한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 역할까지 겸해왔다는 점에서 어떤 방식이 됐든 여권에서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박 의원 역시 2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는 평이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