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수’ 아닌 ‘도로 철수’ 이미지도 꿈틀댄다. 결국 안 전 대표는 3월 14일 공식 일정까지 취소했다. 하루 만에 행보를 재개했지만 즉각 3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대선 날 개헌 국민투표’와 충돌했다. 위기에 처한 안 전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측 인사들에게 손을 뻗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치개혁 정책공약발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포스트 탄핵 정국’에서 안 전 대표의 위상은 훼손됐다. 국민의당 대선 경선 룰과 3당의 개헌 합의 과정이 대표적이다. 당내 경선 룰 협상 과정에서 안 전 대표는 ‘철수정치’와 ‘강철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손 전 대표 측의 벼랑 끝 전술 속에서 후퇴와 양보를 반복하더니, 막판에는 비서실장인 송기석 의원과 김철근 대변인 등 룰 협상자들이 줄사퇴했다. 안 전 대표가 공식 일정을 취소한 그날이다.
룰 싸움은 2월 22일 첫 협상 때부터 시작했다. 모바일 투표 여부 및 선거인단, 기간 등이 쟁점이었다. 안 전 대표 측은 현장투표 50%+여론조사 50%’, 손 전 대표 측은 ‘100% 현장투표’를 주장하며 맞섰다. 안 전 대표 측은 나흘 뒤인 2월 28일 모바일투표를 뺀 ‘현장투표 40%+여론조사 30%+공론조사 30%’안을 주장했다. 손 전 대표 측 룰 협상 대리인인 윤석규 전략특보는 ‘현장투표 50%+세 후보 측이 3분의 1씩 뽑은 배심원단 50%’을 제안했다.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하자, 국민의당은 3월 2일 룰 협상을 잠정 중단했다. 사흘 만에 재개된 룰 협상에서 손 전 대표 측은 ‘현장투표 80%+숙의 배심원제 20%’를 제안했다. 경선 룰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용호 의원은 ‘여론조사 25%+현장투표 75%’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양측이 모두 거부했다. 경선 룰 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는 상황에서 개헌파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3월 7일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안 전 대표는 다음 날인 3월 8일 당 중재안을 전격 수용하는 ‘역제안’으로 손 전 대표를 압박했다. 손 전 대표도 ‘경선 불참’을 앞세워 배수의 진을 쳤다. 정치권 안팎에선 손 전 대표가 탈당한 뒤 김 전 대표와 함께 제3지대 구축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양측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날인 3월 10일 ‘현장투표 80%+여론조사 20%’와 ‘4월 첫 번째 주 후보 선출’에 합의했다. 박지원 대표조차 “안 전 대표가 너무 많이 양보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룰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행 세칙’이 문제였다. 안 전 대표는 당 최종 대선 후보 선출 일을 4월 2일, 손 전 대표는 4월 9일을 각각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3월 13일 양측 제안의 중간 지점인 4월 5일 후보를 선출키로 했다. 7개 권역별로 투표소를 15~30개 설치하는 안도 확정했다.
안 전 대표 측은 즉각 반발했다. 안 전 대표는 다음 날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그러자 손 전 대표는 3월 1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안 전 대표를 향해 “구태정치의 표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과정에서 천정배 전 공동대표는 대선 불출마를, ‘호남 4선’ 박주선 의원은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후 박 대표가 세월호 선체 인양 날인 4월 5일 대신 하루 앞당겨 4일에 후보를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안 전 대표와 손 전 대표 모두 반발했지만, 당 선관위는 ‘4월 4일’ 안을 의결했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안 전 대표가 ‘하루 칩거’에 들어간 3월 14일까지 측근들은 항의성 공식 성명을 내지 않았다. 안 전 대표가 공식 일정을 취소한 당일 손금주 최고위원이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선관위의 절차’를 문제 삼았을 뿐이다. 룰 협상 과정에서 손 전 대표 측 박우섭·이찬열 최고위원이 연일 안 전 대표를 압박한 것과는 다른 팀플레이의 모습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전 대표 측근의 ‘충성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면서도 안 전 대표 측 내부에서는 손 전 대표 측에 “완전히 당했다”며 격앙된 분위기가 속속 감지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룰 갈등과 관련해 “손 전 대표 측 룰 협상자인 윤 특보 때문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도록 한 현장투표를 두고 한 말이다. 윤 특보는 민주당 경선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측에서 염동연 전 열린우리당 사무총장과 김두수 넥스트코리아 대표(김두관 민주당 의원 동생)와 함께 여의도 조직을 맡아 선거전략 등을 조언했다.
박 시장이 당시 주장한 ‘촛불공동경선’도 윤 특보 등이 아이디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은 이와 관련해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각지 촛불집회가 열렸던 촛불광장에 수만 개의 투표소를 설치해 누구나 자유롭게 공동정부 후보 선출에 참여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당 현장투표와 비슷하다. 이에 대해 야권 한 분석가는 “검증이 안 된 룰”이라며 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 전 대표의 ‘양보 정치’로 국민의당 경선은 ‘조직력 대결’이 됐다. 손 전 대표 측 내부에서는 “해볼 만한 게임”이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당 적합도에서 안 전 대표와 손 전 대표, 답변 유보층은 약 ‘60 vs 10 vs 30’ 구도다. 여론조사 비율이 전체 룰의 5분의 1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안 전 대표의 60%도 10% 안팎으로 줄어든다. 조직력 풀가동에 들어간 손 전 대표 측에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안 전 대표 측도 경선 승리를 자신하지만 위기감도 감지된다. 애초 캠프 합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박주선 의원까지 대선 경선에 나섰다. 박 의원이 당 합류 전 창당에 나섰던 통합 신당 당원만 3만 명 수준이다. 박 의원 역시 만만치 않은 세를 확보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안 전 대표는 호남 중진 껴안기에 실패했다. 호남 중진 핵심인 유성엽 의원은 손학규 캠프 경선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다수의 호남 중진들은 뚜렷한 입장 표명을 안 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호남 중진 껴안기’에 나서지 않으면서 다수의 호남 의원들이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호남 중진들 사이에서는 “안 전 대표가 왜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지 않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대선 당일 개헌 국민투표’에 전격 합의했다. 3당은 3월 15일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에 합의했다. 국민의당에선 호남 중진인 주승용 원내대표가 3당 개헌안을 주도했다. 그간 안 전 대표가 주장한 ‘대선 전 개헌 반대-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와 충돌한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이어 또다시 당과 엇박자를 낸 셈이다.
3당이 개헌안을 합의한 당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 전 대표의 ‘정치개혁’ 공약 기자회견장은 개헌파 성토장이 됐다. 안 전 대표는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라다”며 “이런 사람들이 개헌을 외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안 전 대표는 당과의 엇박자에 관해선 함구했다지만 당 안팎에선 ‘개헌 작심 비판’이 호남 중진 의원들에 대한 ‘경고성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우외환에 처한 안 전 대표는 3월 19일 서울 종로구 사회적기업 ‘마이크임팩트’에서 대선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대선 행보에 드라이브를 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보수층 안기에 나선 안 전 대표는 반기문 싱크탱크인 ‘국민포럼’과 팬클럽 ‘반딧불이’ 일부 인사를 끌어안을 예정이다. 다만 외연 확장을 통해 당 경선을 뚫어도 ‘김종인 벽’과 ‘문재인 대세론’을 넘어야 산다. 안 전 대표의 길은 첩첩산중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