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가 회의를 주재하다 얼굴을 만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전대 시기가 결정된 만큼 민주당 내 여러 정파는 당권 장악과 차기 대권 교두보 확보라는 중장기 플랜과 맞물려 피 말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각 계파는 전대 개최 시기를 놓고 치열한 기 싸움을 전개한 바 있고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일부 정파는 전대 일정이 결정되기 전에 이미 세부 로드맵을 만들었던 것으로 확인돼 ‘보이지 않는 손’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당 대표와 지도부 선출권을 가진 새 대의원과 이들 대의원 구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위원장 선정 문제를 둘러싼 계파 간 파워게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주가조작 혐의로 지난 4월 22일 구속된 정국교 비례대표 당선자 파문도 당권 전쟁 과정에서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 당선자를 추천한 손학규 대표 측은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 범동교동계 등 호남권 계파들은 손 대표 책임론을 부각시켜 당내 신주류로 부상한 손학규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권 계파 일각에서는 손 대표와 정 당선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X파일을 취합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적전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민주당 권력암투 속으로 들어가 봤다.
4·9 총선 공천 파동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는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총선 이후 당권 쟁탈전과 맞물려 또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내분=공멸’이라는 방정식에 공감한 각 정파들이 총선 이후 암묵적 휴전을 깨고 다시 전투 모드로 돌입한 형국이다.
당권을 겨냥한 여러 정파들의 파워게임은 사실상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놓고 그 서막이 올랐다. 81석이라는 어정쩡한 총선 성적표를 받아든 손 대표와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 공방전이 불거지자 손 대표는 ‘차기 당 대표 불출마’ 카드로 선방을 날렸다. 손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하자 범동교동계 등 호남권 계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5월 조기 전대론’에 불을 지폈다. 18대 국회가 개원(6월)하기 전에 전대를 치러 당 체제를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손학규계의 셈법은 달랐다. 손 대표가 비록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당권 장악을 위해선 ‘손학규 역할론’이 절실한 만큼 5월 전대는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손학규계 좌장 격으로 3선 고지에 오른 김부겸 의원은 4월 14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5월 전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빨라야 6월 말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보여진다”며 5월 전대론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손학규계가 6월 전대론을 설파하는 동시에 자파 실무진을 중심으로 전대 TF팀을 꾸려 세부 로드맵을 작성한 것은 손 대표의 중장기 대권 플랜과 맞물린 당권 장악 포석이 내포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요신문>이 최근 입수한 전대 로드맵 문건에는 전대 개최 시기와 관련해 세 가지 안이 담겨져 있었다. 제1안은 6월 중순(15일경)이고 제2안은 5월 말, 제3안은 7월 초(6일)로 일정을 잡았다. 특히 세부 일정은 6월 전대 개최를 전제로 작성돼 있었다. 손학규계가 주창한 6월 전대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전대 로드맵 작성에 참여한 당직자 A 씨는 4월 21일 기자와 만나 “지난주 화요일(15일) 전대와 관련한 의제 및 검토사항 등을 준비하기 위해 계파를 떠나 실무진 차원에서 작성한 것”이라며 “최고위원회의 등에 전달돼 당 지도부가 전대와 관련한 의제를 결정하는 참고자료일 뿐 특정 계파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전대 세부 일정을 ‘6월 전대’를 전제로 작성한 이유를 묻자 A 씨는 “TF팀에 참여한 실무진과 당 내부 의견을 종합한 결과 6월 전대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파악돼 그렇게 한 것이고 개최 시기가 결정되면 기본 로드맵에 일정만 수정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A 씨의 주장처럼 전대 로드맵이 특정 계파와 관계없이 작성됐다 하더라도 전대 개최 시기 및 지역위원장과 대의원 선출 방식 등을 둘러싼 계파 간 파워게임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호남권 계파는 ‘5월 전대론’을 설파한 반면 손학규계는 당초 문건에 적시된 1안대로 ‘6월 중순 개최’를 적극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일주일 후인 23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전대 시기를 다시 7월 6일로 최종 확정했다. 당초 6월 중순 개최를 검토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시기를 늦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날 정동영 전 장관의 측근인 박영선 의원을 최고위원에 임명하기도 했다.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철저하게 외면했던 정동영계에 대한 배려로 풀이된다.
▲ 민주당 실무진이 작성한 전당대회 로드맵 사본. | ||
실제로 손 대표는 자신이 추천한 정국교 비례대표 당선자가 구속되자 조기 사퇴론에 직면하는 등 정치적 시련기를 맞이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지난해 5월 평양 방문 때 정 당선자를 동행시킨 바 있고 대선 경선 과정에서는 정 당선자에게 중소기업특보 자리를 맡기는 등 친분관계를 유지해 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당선자가 손 대표의 자금줄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물론 손 대표 진영에서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낭설이라 일축하고 있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정 당선자가 구속된 만큼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된 400여억 원의 용처를 파헤칠 경우 그 불똥이 손 대표에게까지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손 대표가 ‘정동영계 끌어안기’를 시도하면서 전대 시기를 최대한 늦춘 배경에는 자신이 처한 이러한 정치적 위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검찰의 칼끝이 자신을 정조준할 경우를 대비한 고육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손 대표가 현직을 고수하는 한 검찰이 제1야당 대표에게 칼날을 겨누기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손 대표가 조기 사퇴할 경우 정국교 파문에 따른 후폭풍이 곧바로 손 대표를 압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손 대표 자신은 물론 당권 장악을 노리고 있는 손학규계의 입지도 극도로 약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손 대표와 자파 의원들이 정 당선자가 구속된 다음날 당초 계획했던 ‘6월 전대’ 카드를 버리고 7월 전대론으로 급선회한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범동교동계 등 호남권 계파는 손 대표와 신주류 측의 이러한 전략에 호락호락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오히려 정국교 파문을 계기로 손 대표와 신주류 측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구 민주당 수장 격인 박상천 공동대표와 일부 최고위원들은 손학규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호남권 일부 의원들은 손 대표와 정 당선자의 ‘관계’를 뒷받침할 X파일을 은밀히 취합하는 등 폭로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당 대표를 상대로 폭로전을 구사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격이고 자칫 역풍이 불 수도 있지만 당권 장악이 여의치 않을 경우 막가파식 폭로전도 불사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분위기다.
당권을 겨냥한 ‘7월 전쟁’이 가시화되면서 계파 간 세 불리기 경쟁 및 대의원 선출 방식 등을 둘러싼 암투도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7월 당권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인 지역위원장 선임 및 새 대의원 선출 방식을 놓고 치열한 파워게임을 전개하고 있다.
실무진이 작성한 전대 로드맵에 따르면 7월 전대에서 지도부 선출권을 가진 중앙 대의원 구성 과정에는 지역위원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방식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지역위원장이 중앙당 대의원의 60~70%를 선임하고 나머지 30~40%는 지역 당원 가운데 ‘랜덤(임의) 방식’으로 선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역위원장 선임은 당선 지역(66개)의 경우 당선자를 최고위 결정으로 임명하고 낙선 지역(131개)은 낙선자를 중심으로 추가 공모하고 무(無)공천 지역(48개)은 시·도당 추천과 신규 공모를 통해 결정하도록 적시돼 있다. 특히 낙선 지역이 전체 지역구 중 절반에 가깝고 주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파가 더 많은 지역위원장을 배출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수도권 출마자가 많았던 손학규계는 ‘낙선자 중심’을 주장해 왔고 상대적으로 출마자가 적었던 호남권 계파는 ‘무작위 선출’을 고집해 왔으나 현재로선 실무진이 작성한 방식(낙선자 중심 추가 공모)이 채택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호남권 계파는 손학규계에 비해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고 당원 수에 비례해 호남권 대의원이 다른 지역에 비해 1.5배가량 많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동교동계가 추미애 전 의원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고사위기에 처한 정동영계 역시 후일을 기약하는 차원에서 추 전 의원을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호남권 계파가 똘똘 뭉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신주류를 이끌었던 손 대표와 민주당 대주주(정동영 김근태), 친노그룹 중진(한명숙 신기남 유인태) 등 주요 계파 수장들이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민주당. 과연 차기 당권을 어느 계파가 거머쥐게 될까. 민주당 주변에 드리워진 전운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