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이 끝난 후 구급차를 타고 있는 로저 무어. 왼쪽 모자 쓴 이가 그의 아내 키키. | ||
대본이 없는 이 감동적인 드라마는 지난 5월7일 뉴욕의 한 극장(Lyceum)에서 펼쳐졌다. 올해 75세인 로저는 <내가 쓴 연극>이라는 연극을 공연하던 중 맥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무대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어요. 그리고 팔다리를 벌리고 바닥에 누워 있었어요.”
로저가 대(大)자로 누워 괴로워 하자, 극장 안을 꽉 메운 관객들은 그것이 연기의 일부분인 줄 알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누운 로저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가장 공포에 질린 가운데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극장 맨 앞자리에서 앉아 있던 로저의 아내 키키(63)였다. 키키는 지난해 로저와 결혼해 신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 로저 무어가 무대에서 쓰러지는 순간. | ||
하지만 우리의 제임스 본드는 결코 위기 앞에서 당황하지 않았다. 동료 배우인 하미시 멕콜이 놀라서 “괜찮냐”고 묻자 로저는 “내가 생각하기엔 기절했던 것 같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게 된 객석에서는 로저가 이제 죽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막이 내렸고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10분 동안 휴식시간을 갖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대기실에 실려 간 로저는 동료 배우들이 911에 신고하려는 것을 제지하고 나섰다. “연극을 ‘무조건’ 끝마쳐야 한다”는 것.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던지 옆에서 계속 울고 있던 키키마저도 말릴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무어는 정신을 차린 후 무대에 다시 올라 두 시간 동안 연극을 계속했다. “연극이 끝났을 때 관객들이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자 로저의 붉은 얼굴은 승리의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것은 분명 연극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광경이었습니다.”
로저는 분장을 지운 후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 등 대기실에서 10분을 더 지체한 후에야 극장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면서 무대를 향한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운명은 내가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내 목숨을 뺏어 갈 정도로 모질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무대에 계속 서고 싶습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