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오 의원, 정두언 의원 | ||
여권 핵심부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권력이동)가 정권 출범 후 만 석 달 만에 일어날 것이라는 정가의 관측은 5월 중으로 예정된 청와대 비서관급 재산공개와 맞닿아 있다. 2월과 4월 있었던 내각과 청와대 수석 인사 파동 때도 끄떡없던 핵심 권력이 왜 한 단계 급이 낮은 비서관의 재산공개로 흔들린다는 것일까. 이는 현 청와대 핵심세력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대선 승리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현재의 진용을 갖춘 여권의 핵심 라인은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도왔던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계의 리더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 측근 인사들이 거의 ‘소외’된 채 구성됐다. ‘탈 여의도’ 정치를 주장해온 이 대통령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청와대 수석과 내각의 대부분이 정치인을 배제하고 교수와 관료 등 전문가 그룹으로 채워졌다.
그런가 하면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측근들은 상당수 청와대 입성에 성공해 이재오-정두언 그룹과 대조를 이뤘다. 정두언 의원이 대선 때 지휘했던 전략기획팀 근무자 가운데 청와대에 들어간 인사들은 2~3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들어갔던 이태규 비서관은 정권 출범 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러나 여권 핵심실세들에게 ‘낙점’을 받아 ‘개국공신’들을 따돌리고 중용됐던 청와대 수석과 내각 인사들이 국민에게 받은 평가는 ‘고소영’ ‘강부자’였다. 인사 비판을 넘어선 ‘조롱’을 받은 셈이다. 정권출범 전 내각 인선을 앞두고 박은경(환경부) 이춘호(여성부) 남주홍(통일부) 3명의 장관 내정자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옷을 벗었다. 또 김성이(보건복지부) 정종환(국토해양부) 이윤호(지식경제부) 장관 등도 부동산 투기 의혹을 샀지만 다른 3명의 내정자가 옷을 벗음에 따라 여론의 질타 속에서도 장관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에 남아 있던 대선 ‘공신’들이 자신들은 배제된채 청와대가 주도한 인사에 불만을 터트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방호 사무총장 주도로 물갈이 공천이 한창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문제제기를 했던 인물이 이재오 의원 측이었다. 그것도 이 의원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공천심사위원들의 입을 통해 ‘70대 고령을 이유로 이상득 부의장의 불출마를 거론’한 것이 전부였다. 이 부의장은 한나라당 내 인사들로부터 정권 초기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지목돼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재오 의원을 청와대에서 만난 후 친형의 손을 들어줬고 이 부의장은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소장파 의원 55명이 이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반면 이재오 의원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총선에서 패배해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핵심세력에게 치명타를 날린 것이 청와대 박미석 전 사회정책수석 파동이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고소영’ 내각 파동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악재였다. 반면 당 쪽에서 보면 총선이 끝나 의원들이 더 이상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4월 24일 공개한 재산등록현황에 따르면 박 전 수석은 배우자인 고려대 이 아무개 교수 명의로 인천국제공항 옆 영종도에 논 1353㎡(신고액 1억 8500만 원)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은 인천시가 2006년 드라마 세트장과 각종 영화산업 관련 시설을 갖춘 영상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한 지역으로 사전개발정보를 입수한 투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박 전 수석의 재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 전 수석은 영종도 농지에 대한 불법 대리경작 및 투기 의혹을 숨기기 위해 허위서류를 제출했다는 의혹까지 샀다. 박 전 수석이 땅을 산 것은 2002년이고 인천시 영상단지 조성계획 발표 시기는 2006년으로 3년 이상의 차이가 있어 투기가 아니라고 박 전 수석을 두둔하던 청와대도 ‘허위 자경확인서’에 ‘감싸기’를 포기했다. 4월 27일 박 전 수석에게서 사표를 받아 나흘 만인 1일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더 이상의 수석은 경질하지 않을 것이며 경질 요구는 ‘정치적인 수사’라고 못 박았다.
재산이 110억 원에 이르고 위장전입 의혹을 사고 있는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달리 박 전 수석이 특히 언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일부의 해석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박 전 수석을 집중 공격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사회정책수석으로 발탁된 과정을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치나 정책 경험이 없는 박 전 수석의 전격 기용 이유를 놓고 언론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박미석 전 수석이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같은 학교인 숙명여대 교수이고 소망교회를 다닌다는 점 외에는 없었다. 인사를 주도했다는 청와대의 몇몇 인사와 이들에게 인사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진 핵심세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미 총선 후 박 전 수석의 재산공개 상황 전부터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정무라인에 대한 불만이 컸다. 정무라인은 청와대에서 총선 공천에 개입해 공천파동의 한축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던 데다 총선 이후 당의 가장 핵심 현안인 친박(박근혜 전 대표)계 당외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에 대해 비타협적인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왔다.
일부 당 관계자들은 그 근거로 총선 직후 이 대통령의 발언을 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청와대에서 가졌던 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친이’ ‘친박’ 하는데 아직도 경선국면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며 “‘친이’라고 하기에 난 ‘친 이재오’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4월 22일 청와대 당선자 만찬회에서는 “대통령이 된 이상 내 경쟁자는 당에 없다”며 “친이는 이제 없다. 친박이라면 모를까”라는 말을 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말을 반추하면 친박 측뿐 아니라 이재오 의원까지 ‘배척’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며 “총선 후 당내 화합이 가장 중요한데 대통령이 오히려 이를 가로막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당에서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것이 박 전 수석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청와대가 박 전 수석 사퇴를 막기 위해 방어에 나섰지만 당에서 오히려 질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 등 3명의 장관 내정자를 교체할 때와 비슷한 국면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 기회에 사회정책수석뿐 아니라 정무수석까지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무수석의 교체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세력이 이처럼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에 대해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중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교수 중심의 청와대 인사들이 여의도 정치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며 “여의도 정치에 대한 몰이해가 정무 업무의 마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경험이 별로 없는 이들의 비타협적인 정무 감각이 고비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엇박자로 나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수석에 이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농지매입 관련 의혹도 한나라당을 들끓게 하고 있다. 이 대변인은 배우자 명의로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토지(신고액 4000만 원 상당)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변인은 농업만 허용되는 절대농지를 사들이면서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의혹과 국민일보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에 들어가자 기사를 쓰지 말라고 요청해 기사를 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다수 언론들은 계속되는 이명박 정부의 실수와 혼란에 대해 얼마나 대립각을 세워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도 5월 초가 되면서 기사로 크게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신 쇠고기 수입 문제와 당과 정부의 엇박자 등을 다룬 기사가 지면을 대체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비서관 재산공개가 또 다른 파동을 일으킬 경우 이명박 정부 비판 수위를 고민하고 있는 언론들이 친이에서 ‘반(反)이’로 전환하는 일대 모멘텀이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계속된 인사 실수와 정책 엇박자 등으로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마저 조기 종료될 조짐인 상황에서 청와대 비서관의 재산공개가 당·청 갈등의 대폭발을 불러일으키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론가와 여당 주변에서는 아무개 비서관의 재산이 100억 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나오는가 하면 또 어떤 비서관은 대선 직후 강남에 최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설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비서관 재산공개와 관련해서 이처럼 설들이 난무하는 것은 ‘궐’ 밖에서 청와대 핵심세력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일부 비서관들의 경우 청와대와 내각의 주요 인사가 이들에 의해 진행됐다는 주장이 흘러나오고 있어 그간 인사에서 소외됐던 당 안팎의 친이 인사들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이들 비서관의 재산 공개 과정에서 재산형성 의혹이 불거진다면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 내부세력들의 대반격이 예상된다. 특히 당권 경쟁에 나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전략으로 ‘표몰이’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반이 정서가 강한 친박 인사들뿐 아니라 소장파 등이 이처럼 대립각을 세울 경우 이 대통령의 권위와 정체성에 큰 흠이 나는 것은 물론 여권 내부의 본격적인 권력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도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전망 때문에 일부 비서관이 재산공개 파동 전에 박 전 수석 인사에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할 것이라는 때 이른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조기사퇴는 또 다른 의혹을 불러올 것이며 한나라당 내 불만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박 전 수석의 빈자리를 단순히 메우기보다 정무라인을 손질하는 개편 인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당권파·소장파에 밀리면 끝장이다’는 식으로 버티고 있는 일부 청와대 인사들 때문에 여권 내부의 대대적인 권력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