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대표와의 정례회동에서 논의될 줄 알았던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청와대도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과 민심 이반이 정권 연착륙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비서진 개편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스크린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현재의 정치 구도가 한나라당 대 통합민주당의 여야 정책 경쟁이 아니라,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 대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그룹’의 대결 구도만 부각돼 그것이 권력 나눠먹기 식으로 비쳐지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청와대로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청와대가 하루 빨리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정립해 정치 불안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친 기업),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친 언론) 하며 프렌들리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왜 박근혜 프렌들리(친 박근혜)는 외치지 않는 것이냐. 도대체 박근혜 전 대표와 친해져서 손해 볼 게 뭐가 있느냐. 경제도 어려운데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 마주 앉아 해결책을 연구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나중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혼자서 덤터기쓰는 것도 피할 것 아닌가.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도 여당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데 그때 대중성이 높은 박 전 대표가 있으면 여당은 선거 치르기가 얼마나 편한가.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사사건건 박 전 대표를 무시하고 멀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대통령은 정치를 싫어하면서도, 모르는 것 같아 정말 답답하다.”
최근 한 친박그룹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친박 측의 강력한 불만이 배어나오는 말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일 열린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도 탈당한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를 일체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친박 측은 더욱 격앙돼 있다.
사실 친박그룹 일각에서는 이번 이 대통령과 강 대표의 주례회동에서 복당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언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한나라당의 가장 큰 현안인 장외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 문제를 일단락 짓고 당권 경쟁도 원만하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박 측의 기대가 말 그대로 희망에 그침에 따라 복당 문제는 현재와 같이 ‘더 논의해보자’는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며 새 지도부 구성 이전까지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청와대의 ‘무시전략’에 대해 친박 측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친박 측의 또 다른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복당 문제를 풀 사람은 이 대통령밖에 없다. 차기에 욕심이 있는 강재섭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모두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당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통령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회동에서 그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박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 요구한 복당 요구를 이 대통령이 대놓고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가 고민해서 내놓은 물음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친박 인사들은 이 대통령이 지난 1월 선언했던 박 전 대표와의 ‘동반자 관계’를 이번 ‘무시전략’으로 완전히 파기한 것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그래서 친박 측 일부 강경파들은 “이런 식이라면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라며 분당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 지난 4월 25일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박근혜 전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대 박근혜’ 전략은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는데 그중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으로 ‘박근혜 배제론’을 들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애초부터 믿지 못하고 끝까지 그를 배제한 채 국정을 운영해갈 것이라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 시각의 연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에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이 일생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해 일언지하로 반대를 선언했을 때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이 대통령으로선 국제 경기 침체에 따른 경제회복의 모멘텀을 대운하 건설 등의 내수 진작으로 돌파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대운하 건설 반대는 ‘과연 그와 같은 배를 타야 되느냐’라는 심각한 문제의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박 전 대표 배제론’을 펴는 논리는 간단하다. 만약 이 대통령이 선별 없는 친박그룹 복당을 허용할 경우, 당권 경쟁이나 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에 있어 사사건건 당내 분란을 야기하게 되고 이 대통령은 그 혼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오로지 박 전 대표의 입만을 쳐다보게 돼 결국 박 전 대표의 입지만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또한 집권 초기 가장 중요한 당·정 간의 협력 관계도 친이-친박의 대립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배제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청와대는 복당 문제에 대해 계속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가 복당 문제에 관한 한 ‘올가미’에 빠져 있다는 ‘배제론파’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다. 배제론을 주장하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로서는 복당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이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만약 박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복당 반대로 결론을 낸 것에 대해 ‘예스’를 할 경우 그는 앞으로도 계속 친박그룹의 수장으로 당에 남아 있어야 한다. 만약 ‘노’를 외친다면 당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도 치명상을 입게 된다. 당에 있기도 그렇고 나가기도 그런 어정쩡한 박 전 대표의 답답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배제론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인 복당 문제에 대해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을 두고 “계속 박 전 대표를 압박해 결국 스스로 탈당 등의 강수를 두도록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복당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친박 측 일부 강경파들이 “탈당도 불사할 수 있다”라고 흥분한 것도 이 대통령으로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마음속으로는 간절하지만 감히 청할 수 없음)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이런 자신감에는 박 전 대표가 지난 2002년 4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탈당을 한다면 결코 대권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탈당을 할 경우에도 당내에 남아 있는 친박계 의원들이 여당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쉽게 따라간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까지 내다봤을 수 있다. 결국 박 전 대표 배제론은 현재 한나라당의 리딩 그룹을 예전의 영남세력(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에서 수도권세력(친 이명박 계의 수도권 출신을 중심으로 한)으로 ‘체질개선’을 하기 위한 필수요소라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배제론파가 너무 강경 일변도라며 반기를 드는 세력도 있다. ‘동반자파’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들 세력은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그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배제론파가 안고 있는 강경책이 과연 실효가 있겠느냐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동반자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권 출범 초부터 친이-친박이 강경 대립으로만 가면 결국 그 부담은 모두 이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차라리 박 전 대표와 공동책임을 지는 게 이 대통령으로선 낫지 않겠느냐. 박 전 대표가 원한다면 그에게 당을 맡겨 정부와 협력하도록 하면 원활한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되고 대통령 독주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특히 영남권 민심인 ‘친박과의 화합’을 이룬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또한 경제회생이 여의치 않을 때에도 박 전 대표와의 연대는 그 책임론 공방에서 부담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정치적 이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동반자파는 당권도 아예 박 전 대표에게 주면 어떻겠느냐는 주장도 하고 있다. 특히 여당 내 이 대통령의 젊은 참모 그룹 쪽에서 박 전 대표를 이번 당권 경쟁에서 추대하는 형식으로 당 대표로 밀자는 구체적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한승수 국무총리도 자신의 위상을 ‘자원외교’로 한정해 대외적 활동을 자제하면서 국정 운영 부담이 오로지 이 대통령에게만 몰리는 현상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작용한다는 배경에서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함께 여권의 ‘투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당의 화합과 권력 균점,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세 번째 ‘대 박근혜’ 전략은 ‘절충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이 대통령이 유지해온 ‘불가근 불가원’ 원칙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마음으로는 박 전 대표와 함께할 수 없지만 총선에서 나타난 영남권 민심을 존중해 박 전 대표와 한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한 것도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 복당 등의 문제에 대해 ‘동반자’에 합당한 예우를 해주지 않으며 박 전 대표를 무시하는 것도 ‘그 실체를 인정하되 거리를 유지하는’ 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당의 지속적인 정치 불안을 초래해 결국 그 하중이 청와대의 국정 운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매듭지어야할 대목이다. 그리고 ‘절충형’ 입장에서 보면 이번 7월 전당대회의 당권 후보로는 양 세력과 고루 친분이 있는 김형오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때린 사람(강자)은 그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 하지만 맞은 사람은 평생을 두고 기억하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4·9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이그룹에 ‘이유도 없이’ 두들겨 맞은 친박그룹을 생각해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일까, 박근혜 전 대표 자신일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