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강연 무대에 선 마사코 할머니. 유튜브 캡처.
81살 고령의 와카미야 마사코 씨는 올해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됐다. 바로 앱 개발자로 이름을 알린 것이다. 그간 엑셀아트를 선보이고 지식강연 ‘테드(TED)’에도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앱 개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일본 가나가와현에 거주 중인 마사코 할머니는 1936년에 태어났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였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40여 년간 은행원으로 근무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이었다.
변화가 찾아온 건 정년퇴직 무렵.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친구조차 만날 수 없던 마사코 씨는 “컴퓨터가 있으면 집 안에서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컴퓨터를 충동구매했다. 이 결단은 그녀의 인생을 크게 바꾼다.
하지만 ‘컴맹’ 탈출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설치부터 인터넷 접속까지 무려 3개월이 걸렸다. 이후 온라인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인터넷 재미를 알게 됐고, 컴퓨터 실력도 나날이 향상됐다. 그리고 2001년에는 노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트 ‘멜로우클럽’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이밖에도 마사코 씨는 ‘시중에 나온 컴퓨터 교육 서적이 어렵다’는 이유로 직접 관련 책을 썼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엑셀로 아트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엑셀아트’는 고령자도 쉽게 즐기는 아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2014년 테드 강연무대에도 서게 된다. 당시 그는 ‘디지털을 통한 창조의 기쁨’에 대한 강연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마사코 할머니는 ‘액셀아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재 마사코 씨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들과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컴퓨터와 태블릿 단말기도 자유자재로 다뤄 인근에서는 ‘슈퍼 IT 할머니’로 통한다. 이에 대해, 마사코 씨는 “디지털 기기를 가까이 하지 않는 고령자도 많지만, 사실 디지털 기기야말로 노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와병 중이거나 간병으로 외출이 어려울 경우 인터넷으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굳이 긴 문장을 쓰지 않아도 기분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면 되니 얼마든지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사코 씨는 “기술혁신은 눈부시게 발전해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모처럼 21세기를 살고 있는 만큼 즐기지 않으면 손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는 비록 혼자 사는 노인이지만, 이번 81세 생일에는 국내외에서 많은 축하 메일과 비디오메시지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인일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가 ‘노인들을 위한 앱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16년 여름의 일이다.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손가락 움직임이 빠른 젊은이들에게 유리하다’는 점이 늘 불만이었다. 이래서야 젊은이와 대결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질 않는가. 도통 재미가 없었다. 관련 계통의 사람들에게 ‘노인을 위한 게임’ 개발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질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만들기로 했다.
당장 맥(Mac) PC를 구입했고, 참고서적을 읽어가며 프로그래밍 언어 스위프트(Swift)를 배워갔다. 모르는 부분은 2주일에 한 번씩, 2시간가량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통해 미야기현에 사는 엔지니어에게 자문을 구했다. 홈페이지를 만든 경험은 있지만, 모바일게임 앱 개발은 또 다른 분야. 마사코 씨는 “앱을 기획하고 완성하기까지 꼬박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면서 “궁극의 뇌훈련이었다”고 말했다.
마사코 할머니가 만든 게임 앱 ‘히나단’. 기획하고 완성하기까지 꼬박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게임은 간단하다. 일본 고유의상을 입은 12개의 인형들을 알맞은 위치에 배치하면 ‘퐁’ 소리와 함께 축하메시지가 뜬다. 규칙이 어렵지 않고, 손놀림이 느린 노인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시간제한이 없고 틀려도 계속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 걱정 없이 마음껏 게임에 몰두할 수 있다. 또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고, 반대로 게임을 통해 전통을 배울 수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도 좋다.
지난 2월 23일. 애플 앱스토어에서 게임 ‘히나단’이 무료 배포되자, 마사코 할머니는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앱에는 수많은 리뷰가 달렸는데, 대다수가 별 5개 만점에 5개의 평점을 줬다. “아이디어와 행동력이 굉장하다” “단순해도 재미있다” “공부가 됐다” 등 젊은층부터 노인층까지 호평일색이다.
마사코 씨는 “앞으로 부족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보완해서 새로운 앱을 더 많이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많다”는 얘기였다. 아울러 그는 “나이는 상관없다. 열정과 창의성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앱과 서비스를 만들면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조만간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3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고령자가 사용하기 쉬운 정보통신기술(ICT) 제품과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이와 관련, 일본 인터넷매체 <이미신>은 “최근 ICT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80세가 넘은 여성이 스마트폰 앱을 개발했다는 건 엄청난 쾌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그의 열정에 힘껏 박수를 보낸다”고 전했다.
이처럼 80대에도 끊임 없이 도전하며 생기 넘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즐겁게 사는 인생의 힌트’에 대해 마사코 씨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눈부신 줄 안다. 100점 만점의 인생은 재미없지 않을까.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경험해야 맞다. 설령 취업이 잘 되지 않아도, 시험에 떨어져도 하나의 경험이다. 경험만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나는 무슨 일이 닥쳐도 한 가지 경험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험을 쌓기 위해 다른 것에 또다시 도전한다.”
81년을 살아온 인생 선배의 조언은 간단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부터 시작하라”는 따뜻한 격려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