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진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하는 개헌을 장기적인 목표로, ‘중도+보수’는 군사주권과 자주국방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사드 배치에 공감하며, 무엇보다 ‘진보+중도+보수’는 경제의 올바른 성장과 분배 해법을 함께 또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는 가치 아래 큰 틀에서 합의를 봐야 한다는 여러 조언이 모여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3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국제포럼에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참석했다.
조기대선까지 한 달 남짓 남은 최근 이런 이념 연대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대연합의 징조로 풀이된다. 친박-친문 패권주의의 종식과 함께 단임 대통령제를 손질해야 한다며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의원(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이 동반성장론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회동한 것이나, 바른정당 고문인 김무성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유력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와 만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언론에 알려진 이러한 회동을 빼놓고도 비공개 소통 횟수는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회동의 테이블에는 후보 단일화와 연대 가능성이 현안으로 올라 논의되고 있다. 바른정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홍 지사와는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면서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라고 향후 연대 정국을 에둘러 암시했다.
민주당 내 친문 세력을 뺀 모두의 연대 혹은 단일화 시나리오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또 그 과정 속에 많은 장애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게 함정이긴 하다. 무엇보다 대선까지 40여 일밖에 남지 않아 촉박한 시간 내에 골을 향한 패스가 순조롭게 이뤄져야 한다. 연대까지 남은 시간이 ‘인저리 타임’ 수준이란 얘기다.
정치권에서 회자하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바른정당이 3월 28일, 한국당이 3월 31일, 국민의당이 4월 4일까지 최종 후보를 선출하게 되면 이들은 단계적 후보 단일화를 꾀하게 된다. 이는 3당이 ‘원샷 경선’에 임할 경우 지지층이 복잡하게 얽히기 때문에 경선 룰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어 단계별로 하나씩 해나가는 게 낫다고 본다는 것이다. 지지율 측면으로 봤을 때 안철수 의원이 선두권에 있어 바른정당과 한국당이 ‘보수의 적통’ 자리를 두고 선단일화하는 게 순서라고 대부분 예측하고 있다.
여기서 변수는 홍 지사가 아니라 친박계 김진태 의원이 후보로 확정될 경우다. 탄핵소추안 가결에 반대하고 대통령 파면에 불복한 친박계와 바른정당의 연대 명분이 하나도 없게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바른정당 내부에서 범보수 단일화를 내세운 유승민 의원을 비토하려 은근히 김 의원의 후보 확정을 지원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빅텐트의 키를 쥔 국민의당 내부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일단 국민의당이 대선 전 개헌에 한발 물러나면서 연대할 고리가 희석됐다는 분석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최근 김종인 전 의원과 정 전 총리가 조찬 회동을 한 직후 우연히 김 전 의원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조우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가 먼저 김 의원에게 “우리 둘이 만나야 대연합이 되지 않느냐”는 덕담식 인사를 건넸다. 국민의당이 연대의 핵심고리이니 우리도 만나서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리고 박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만간 보기로 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런 대연합 시나리오는 한국당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어 가능성을 높인다. 지난 3월 23일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가 측근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에는 ‘김(종인) 전 대표와는 (한국당) 경선이 끝나기 전에 우선 3자(한국당, 바른정당, 김종인) 간 후보 단일화 추진에 대한 입장을 조율해 놓고 시기와 방법, 연대시 통합 등 방법에 대해서도 사전 강구와 교감을 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승민 남경필 등 바른정당 대선주자와 접촉한 바 있는 김 전 의원을 고리로 한국당이 범보수 단일화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구여권의 돌아가는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의 말은 이랬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을 두고 홍 지사가 ‘이혼한 게 아니다’라고 하자 두 당 모두 일제히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바른정당도 한국당이 소수의 강성 친박계만 청산되면 다시 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인명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이 최근 견제 받으면서 친박계 숙청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게 문제다. 그것만 해결되면 대선 전이든, 아니면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합당될 공산이 크다.”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3당의 연대에는 김 전 의원, 정 전 총리, 그리고 늘푸른한국당 대선주자가 된 이재오 전 장관,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떠나려다 잠시 일정을 미뤄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불쏘시개 내지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끊임없이 만나고 이슈를 제시하면서 3지대로의 조명이 꺼지지 않도록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연합의 데드라인은 4월 15일쯤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선 하기만 한다면 시기는 관계없는 것으로 분석한다. 김 의원과 정 전 총리가 지난 23일 만나 4월 15일을 못 박았다. 패권을 뺀 세력의 연대와 후보 단일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결과물이 이 날짜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의 관계자들은 “4월 15일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있었던 대선 전 25일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는 투표용지가 인쇄되는 4월 30일 이전에만 단일화가 되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른정당에서는 정 전 총리의 영입이 실패한 것이 오히려 독이 아닌 약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 바른정당 지도부는 정 전 총리와 10차례 가까이 만나 입당을 확약 받았다. 하지만 끝내 정 전 총리는 입당하지 않았고 3지대에 머물며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정 전 총리에게 처음에는 괘씸한 마음을 품은 분들이 적잖은데 지금은 오히려 잘됐다고들 한다”며 “유승민 남경필의 토론배틀이 예상외로 흥행하고 있어, 김 전 의원이 나 홀로 3지대 터 닦기에 나서는 것보다 정 전 총리와 함께하니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바른정당에 일부 존재하는 옛 친이계는 최근 홍 지사와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단일화는 상수로 보기 시작했다. 예고했던 대로 ‘홍준표-유승민’의 보수 적자를 둔 싸움이 펼쳐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