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정권 초반부터 역대 유례없는 20%대 지지율에 화들짝 놀라 본격적인 민심 수습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적으로는 청와대의 위기 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력 재배치와 시스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여권 전력 약화의 핵심으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갈등 해소를 추진하는 전략을 시작으로 위기 돌파책을 찾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이 대통령에게 불어닥친 ‘너울성 파도’는 쇠고기 파동이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지만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계속돼온 그의 일방통행식 ‘여론 역주행’이 근원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입성 3개월 만에 여론의 성난 파도에 휩쓸려갈 위기에 빠진 이명박 대통령. 과연 그는 어떤 방파제를 만들어 이 위기를 돌파해나갈까.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의 사나이’다. 그의 인생은 끝없이 닥치는 위기와 그것에 대한 응전의 파노라마였다. 그는 <신화는 없다>라는 자서전에서 “나는 나를 가로막던 위기와 도전 앞에서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돌파했다. 이 돌파력을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27년간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그후 서울시장-대권후보-대통령으로서 걸어온 길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그것을 기회로 반전시키느냐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면돌파’라는 단어는 이 대통령이 현재 빠져 있는 ‘쇠고기 파동’이라는 위기 국면을 읽는 중요한 코드가 된다.
사실 이 대통령이 성공한 정치인으로 우뚝 서는 데 가장 확실한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위기 때마다 먹혔던 그의 ‘정면돌파’ 전략이었다. 다음은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때때로 자랑삼아 내놓았던 자신의 대표적 ‘위기탈출’ 일화다.
그가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10년 정도 지났을 무렵 당시 현대조선이 대형 유조선 3척을 해외 해운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아 우여곡절 끝에 건조를 완료했으나 갑자기 해운업계 불황이 닥치면서 계약이 취소돼 현대그룹이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계약취소로 수주대금을 받지 못한 데다 선박 3척도 처리할 방도가 없어 정주영 당시 그룹회장과 고심하던 끝에 내놓은 결론은 “차라리 해운사를 하나 만들어 유조선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립된 것이 현재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부상한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 상선’이다. 골칫덩어리 선박 3척을 처분하는 정도로 돌아가지 않고 상선회사를 차려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정면돌파 의지가 돋보인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기업 재직시절부터 맞닥뜨린 수많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지도자의 자질을 키웠고, 그 성공 과정에서 대통령으로 도약하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의 정면돌파 신화는 정치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청계천 복원 사업 성공이 그것이다. 그는 지난 2006년 10월 청계천 복원이 완료될 때 언론사 기자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다. 당시 그는 청계천 복원이 자신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였다며 안주거리로 자주 내놓아 일부 기자들은 “또 자랑이 시작되었구나”라며 지루해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자랑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1년 2개월 간 상인들을 무려 4200번 만나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사업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상인대표를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편법이나 우회전략보다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또 다른 저서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에서 위기에 강해지기 위한 전략으로 “핵심을 뚫고 나간다.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위기상황일수록 물러나지 말고 그 핵심을 뚫고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의 이러한 위기에 대한 인식은 현재 정치권에 노정되고 있는 ‘쇠고기 파동’에 대한 탈출 해법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기업인-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그가 내보인 위기 탈출 전략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번 쇠고기 파동은 어떨까.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 지지율이 이처럼 급락한 원인은 단지 광우병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당선 후 보여준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광우병을 매개로 폭발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권 출범 초부터 끊임없이 터져나온 각료-수석들의 부동산투기의혹 파문과 이에 대한 미온적 대응,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미련, ‘친박’(친 박근혜) 당선자들의 복당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지루한 권력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거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전략 관계자는 최근 쇠고기 파동에 대해 “이번 쇠고기 파동으로 이명박 정권의 명운도 결정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심각하다.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이성적 신뢰가 이번 파동을 거치면서 감정적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악재다. 앞으로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개혁 정책이 ‘쇠고기 파동’으로 형성된 안티세력에 의해 조직적인 저항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18대 국회 개원과 함께 추진할 각종 정책이 이성적 판단 없이 감정적인 반발에 의해 사사건건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 지난 7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성토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렇다면 그가 내놓을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권에서 지적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가 이번만은 ‘정면돌파’가 아니라 ‘낮은 데로 임하소서’ 전략을 가지라는 주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 대부분은 그동안 청와대가 내세운 ‘섬김의 리더십’이 국민과 소통하는 ‘상호통행’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리더십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성공신화에서 나온 ‘지나친 자신감’이 여론과의 괴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소장파 등을 비롯한 ‘아랫사람’들과 주저 없이 만나 사심 없는 의견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한 참모를 오랜만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잠시 차나 한잔 할까”라며 자신의 방으로 이끌어 ‘바닥 민심’을 경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룬’ 이 대통령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닥 민심 경청의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정권 출범 초기 멀리 했던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들을 중용, ‘여론 밀착형’ 정치로 선회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 의원이 이미 청와대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정무라인에 참여하라는 언질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최근 주변에서 조언하는 대로 ‘자신을 낮추는’ 전략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는 시그널도 잡히고 있다. 그 첫 신호탄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5월 10일 오찬 회동. 사실 그는 지난 1월 박근혜 전 대표와 회동한 이후 ‘친박 복당’ 요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 공동 지분을 가지고 있는 박 전 대표마저 ‘쇠고기 재협상’ 요구를 하며 이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여론 악화에 여당마저도 적전 분열 양상을 보이자 이 대통령도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번 5·10 회동은 쇠고기 파동으로 사면초가가 된 청와대에 숨통을 터주는 동시에 1인극 부담에서 벗어나 박 전 대표도 국정의 무대로 끌어올려 그 짐을 나누어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위기 탈출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전략은 청와대 컨트롤 타워의 재조정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쇠고기 파동 과정에서 온·오프라인에서 들끓는 민심의 심각성을 대통령에게 제때 보고하지 못했다. 또 정무수석실의 홍보라인은 논란이 최고조에 달한 7일에야 네티즌을 상대로 ‘블로그 청문회’를 여는 뒷북 대처의 전형을 보여줬다.
윤여준 전 의원은 “우리나라는 어떤 문제든 조금 커지면 본질과 관계없이 정치문제로 비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정무기능은 당·청 관계만을 보는 단선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정 전반을 늘 살피는 복합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분야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해당 부처에 경고음을 전달하고 대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청와대 정무라인은 뒷북치기와 사후수습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 같은 청와대 정무라인의 재조정 필요성은 “대통령이 현안마다 나홀로 뛰어 오히려 국정운영에 역기능을 하고 있다”라는 자성론으로 이어진다. 이는 모든 국정이 이 대통령 중심의 원톱 체제에서 한승수 총리, 박근혜 전 대표 등이 총 동원된 ‘멀티 스트라이커 체제’가 등장할 공간을 만들어줌을 의미한다. 그동안 청와대의 직·간접적 견제를 받아온 총리실의 민정 기능 등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박 전 대표 역할도 향후 국정의 동반자로서 정책 일부분을 전담하는 시스템으로 재편될 수 있다.
‘아세아 상선’-‘청계천 복원’에 이어 ‘쇠고기 파동’의 위기에 봉착한 이명박 대통령. 그는 과연 이 위기를 뚫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이 대통령 자신이 가지고 있다. 아세아 상선의 성공은 정주영 회장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힘들게 짜냈던 고육지책의 산물이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도 여론조사 3위의 후발 대권주자가 1위를 따라잡기 위한 일종의 베팅이었다(이 대통령이 대권 레이스에 참가한 2006년 7월 무렵 그의 지지율은 15% 안팎으로 고건 전 총리,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3위였다). 그리고 그 ‘정면돌파’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앞선 2건의 성공은 그가 힘이 없고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던진 건곤일척의 도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금, 그의 정면돌파 전략이 과연 다시 성공할 수 있을까. 도전할 상대도 없고 윗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1인 권력자가 된 이 대통령.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정면돌파식의 1인 성공 신화가 아니라 민심과 더불어 가는 ‘국민성공시대’의 신화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최근의 쇠고기 파동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이 대통령에게 새로운 화두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교훈은 성공이 아닌 실패에서 나온다.”(<신화는 없다>의 한 구절).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