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도 본선 링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보수진영에선 홍준표 경남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남은 카드는 ‘4월 빅뱅’ 정도다. 적게는 1∼2번, 많게는 총 4차례 빅뱅이 대선 정국을 강타한다. 이 승부에서 살아남는 자가 19대 대선의 여의주를 거머쥔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3월 마지막 주 막 오른 ‘슈퍼 위크’의 퍼즐 맞추기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문재인 대세론’을 필두로 안 전 대표, 홍 지사,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이 사실상 본선 열차를 탔다.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궐위 선거’인 탓에 샤이 보수층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지만, ‘보수 vs 중도 vs 진보’ 구도로 대선판이 짜인 셈이다.
‘다자냐, 양자냐’의 구도만이 대선을 흔들 변곡점으로 남았다. 이 변곡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재인 대세론 ▲‘문재인 대항마’로 나선 안 전 대표 ▲샤이 보수 ▲4월 빅뱅 등이다. ‘문재인 대세론’의 파괴력은 크지만 ‘난공불락 요새’는 아니다. 남은 한 달여 동안 ‘조선왕조 500년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게 한국 대선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문재인 산성’의 균열 여부다. 문 전 대표는 3월 27일 호남 경선에서 60% 이상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뒀다. ‘야권 텃밭’ 호남에서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격침한 문 전 대표는 대세론을 장착했다.
안 전 대표는 광주·전라·제주 경선과 전북 경선에서 각각 64.60%와 72.63%를 기록, ‘문재인 대항마’로 떠올랐다. 안 전 대표가 줄기차게 주장하던 문 전 대표와의 양자구도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샤이 안철수’를 확인한 것”이라며 “지난해 4·13 총선 때 28석 중 23석을 석권한 호남 민심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자평했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을 둘러싼 ‘문재인 vs 안철수’의 진검승부가 범야권 구도의 중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이 지점의 변수는 안 전 대표의 정계개편 구상이다. 주사위의 수는 ‘독자 완주’와 ‘반문연대 진지 구축’으로 나뉜다. 안 전 대표가 독자 완주할 경우 범야권은 분열한 채 대선을 치르게 된다.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양김(김대중·김영삼)이 분열한 ‘1987년 모델’이다. 다만 당시에는 보수진영이 어부지리를 얻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강력한 ‘문재인 산성’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친문계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완주를 택해 다자구도가 돼도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구도나 3자구도 관계없이 ‘필승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주목할 대목이 있다. 안 전 대표의 독자 완주와 ‘문재인 대세론’의 상관관계다. ‘문재인 산성’이 견고할수록 안 전 대표를 향한 반문 연대 압박은 커진다. 안 전 대표가 독자 완주할 지지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반문 빅텐트로 내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산성’에 대한 당 안팎의 전망은 대세론과 박스권으로 엇갈린다. 문 전 대표는 호남 경선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의 거친 도전을 뿌리치고 압승했다.
그러나 불안하다. 문 전 대표의 지지도는 민주당보다 낮다. 강력한 대선주자가 뚜렷하게 주도권을 쥐고 당과 정국을 이끄는 게 아니라 탄탄한 당 지지율과 정국 분위기에 업어 탔다는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4월 3일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문재인 공포증’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3월 24일 공개한 조사 결과(21~23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전화인터뷰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9%,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문 전 대표의 대선 지지도는 31%였다. 안 지사와 이 시장의 지지도는 각각 17%와 8%였다. 민주당 지지도는 42%였다. 문 전 대표의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11%포인트 낮은 셈이다. 반문 한 인사는 “문 전 대표의 지지도는 대세론이 아닌 박스권”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 전 대표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정한 5자 가상구도 지지도는 42%였다. 다자구도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를 합친 지지도는 56%였다. 이 갭을 좁히지 못한다면, 문 전 대표의 베이스캠프는 민주당이란 ‘원 팀’이 아니라 ‘친문(친문재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안 지사 지지층 중 31%만 문 전 대표를 지지했다. 34%는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했다. 이 시장 지지층도 53%만이 문 전 대표를 지지했다. 22%는 안 전 대표로 선회했다. 문 전 대표로선 ‘반문 끌어안기’를 통한 외연 확장이 과제로 남은 셈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본선에서 ‘원 팀’으로 만들지 미지수다. 양 진영의 앙금은 이미 3월 22일 민주당 현장투표 결과 유출 의혹 직후 금이 갔다. 비문 한 관계자는 “당 지도부가 문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며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친문계를 정면 비판했다.
문 전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캠프 안팎을 둘러싼 이상 경고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켜지고 있다. 전북대학교 조직 동원 논란을 비롯해 문 전 대표의 아들 특혜 채용 의혹 등도 불거진 상태다. 문 전 대표의 불안한 리더십 논란도 여전하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등 외교·안보에 관한 전략적 모호성은 본선에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기득권층 영입 논란과 측근들의 잇따른 실언도 위험요소다. 요즘 대선 정국에선 문재인 캠프를 겨냥,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안 전 대표와 4월 빅뱅을 주도한 반문 인사들이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법원이 3월 31일 검찰이 청구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발부하면서 홍 지사의 행보를 옥죄고 있다는 점도 ‘4월 빅뱅’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보수의 대안론으로 떠오른 홍 지사의 구심력이 강화될 경우 ‘진보 2 vs 중도 1 vs 보수 1’의 구도가 한층 공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끝내 구속되면서 보수의 공간은 좁아졌다. ‘문재인 산성’을 넘으려는 반문진영의 이합집산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되는 ‘4월 빅뱅’의 1∼4차 마지노선은 ▲4월 9일 공직자 사퇴 시한(1차) ▲4월 15일∼16일 후보자 등록(2차) ▲4월 25일 재외국민 투표(3차) ▲4월 30일 투표용지 인쇄(4차) 시점이다. 대권 도전에 나선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직접) 선수로 나서서 선수들 교통정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문연대 규합의 ‘불쏘시개’ 역할을 마다치 않겠다는 얘기다.
반문진영의 최상의 시나리오는 ‘원샷 경선’이다. 다만 안 전 대표가 막판까지 독자 노선을 고수할 경우 ‘순차적인 빅뱅’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4월 빅뱅의 ‘1차 마지노선’은 한국당(홍준표)과 바른정당(유승민)의 ‘보수 단일화’다. 홍 지사의 사퇴 문제가 걸린 만큼, 보수 단일화 여부는 4월 9일 전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차 마지노선’은 보수 단일 후보와 김종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 빅텐트 후보의 단일화다. 앞서 김 전 대표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3월 23일 양자회동에서 합의한 것도 이 구상이다. 2차 빅뱅 이후는 투표용지에 이름이 남아 단일화 효과가 반감된다. 3·4차 마지노선은 자강론의 안 전 대표를 염두에 둔 ‘불가피한 시나리오’다.
이 경우 4월 빅뱅은 ‘보수 단일화→김종인 제3지대 빅텐트→안철수 단일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최대 5자 구도(민주당·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비패권지대)인 19대 대선은 4월 빅뱅 여부에 따라 4자(민주당·국민의당·보수단일화·비패권지대)부터 양자(민주당·제3지대 빅텐트) 구도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막판까지 판칠 것으로 전망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