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난감만으로도 친자확인이 가능해지면서 과거 가 의심스런 부부 간의 송사가 잇따르고 있다. | ||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서 묘사된 것처럼 열이면 아홉은 무작정 아내를 의심하기보다는 우선 “발가락이라도 닮았다”는 말로 억지를 부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지우려 해도 한 번 고개를 쳐든 의심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법.
최근 독일에서는 이런 의심을 참다 못한 남편들이 비밀리에 ‘친부확인검사’를 의뢰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아내는 물론이요, 하물며 당사자인 자식의 동의 없이 몰래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분명히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어긋나는 행위이긴 하지만 일부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친자식을 확인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다소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처음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독일의 마르쿠스 W.(35)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딸아이가 커갈수록 그리고 해가 갈수록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되자 그에게 이런 농담은 더 이상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특히 이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데리고 재혼해서 살고 있던 그에게 “내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란 의심은 날이 갈수록분명히 심각한 문제였다.
급기야 친부확인 검사를 실시하기로 마음 먹은 그는 뮌헨에 위치한 ‘게네디아(Genedia)’사에 감정을 의뢰했다. 딸아이와 자신의 유전자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머리카락이든 타액이든 무엇이든 가능했다. 그는 열다섯 살 된 딸아이의 방에서 머리카락, 손수건, 요구르트 숟가락 등을 몰래 빼낸 후 자신의 타액 샘플과 함께 실험실에 보냈다.
약 5주 후 드디어 ‘감정 결과’가 집으로 전달되었다. 불행히도 결과는 그가 친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충격 속에 지내던 그는 심사숙고 끝에 딸아이를 학교 기숙사로 보냈고, 전 부인에 대한 배신감에 아직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원한다면 언제든지 쉽게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되자 지금 독일 전역에서는 ‘핏줄 확인’을 의뢰해 오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몰래 실험실 문을 두드리는 것이 비단 아버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손주를 의심해서 몰래 젖꼭지나 장난감을 훔쳐 검사실로 보내는 조부모에서부터 자신의 형제자매가 유독 자신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몰래 감정을 의뢰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아서 불안한 마음에 직접 유전자 검사를 부탁해 오는 여성들도 상당수다.
현재 ‘게네디아’와 같이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전문 검사실에 몰래 감정을 의뢰해오는 건수는 매년 약 3천 건 정도.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수치다”라는 것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렇게 비밀리에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분명히 법망을 교묘하게 피한 다소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뮌헨의 지방법원은 불법 운영으로 기소된 ‘게네디아’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유전자 검사라고 해서 반드시 부당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배우자나 자식의 동의 없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개인정보 보호법에 저촉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안녕이 반드시 법적으로 증명해야 할 검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데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이 문제가 고등법원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 다시 한 번 찬반 세력간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