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사랑스런 ‘아메리칸 스위트하트’ 멕 라이언(왼쪽),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도도한 요부’ 니콜 키드먼. | ||
미국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비행기로 불과 1시간, 자동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토론토는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의 로케이션 촬영이 늘어나면서 ‘Hollywood North’, 이른바 ‘할리우드의 북쪽’이라 불리기도 한다. 매년 영화제 기간마다 니콜 키드먼, 멕 라이언, 셀마 헤이엑, 줄리안 무어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이웃집 나들이 오듯 이곳을 찾아 자태를 뽐낸다. 올해 역시 이들 여배우들을 비롯해 니컬러스 케이지, 덴젤 워싱턴, 나오미 와츠, 케이티 홈즈 등 미국의 스크린과 TV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지에서 만난 할리우드 스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
멕 라이언은 피곤한지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기 전 연방 하품을 해댔다. 그녀는 영화제에서 마련해준 스타벅스 커피를 연이어 마셔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옆에 서 있는 감독 제인 캠피온과 수다 떠는 것 역시 멈추지 않았다. 멕 라이언은 평소 즐겨입는 걸로 알려진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아메리칸 스위트하트’ 멕 라이언다운 차림새였다. 그녀는 마치 모두에게서 사랑 받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모두들 그녀를 “메기”라는 애칭으로 불렀고, 뜻밖에도 멕 라이언 역시 영화제 스태프 몇몇의 이름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멕 라이언은 언제 하품을 했었냐는 듯 기지개를 켜며 배시시 웃었다. 그리곤 귀여운 표정으로 기자들을 바라보며 ‘여우짓’을 해댔다.
‘메기’와는 달리 ‘영화제의 여신’ 니콜 키드먼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즐기는 듯 보였다. 멋진 하얀색 이브닝 드레스를 차려 입은 니콜 키드먼은 기자들의 즉석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곤 했던 칸과 베를린, 베니스에서와는 달리 이곳 토론토에서는 지역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격식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도도했다. 니콜 키드먼은 고개를 치켜든 채 기자들과 한가롭게 잡담을 주고 받았다.
“니콜, 이곳 토론토 영화제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은 감독이 누군가요?” “제인 캠피온이요. 그녀와 함께 일해보고 싶어요.” 니콜은 마치 멕 라이언의 절친한 친구를 샘내는 듯했다. “당신이 영화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짓궂은 질문이었지만, 니콜 키드먼은 웃어넘겼다. “노∼티(호주 사투리로 ‘아이, 짓궂기는’ 정도의 뜻)….” 하지만 절대로 고개를 가로젓지는 않았고, 카메라는 그러한 그녀의 도도한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 왼쪽부터 덴젤 워싱턴, 케이트 블랜쳇, 발 킬머 | ||
이윽고 후문에서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미국의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이 등장했다. 그는 올해 영화제의 최고 익살꾼이었다. 여느 배우들과 달리 그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느라 캐딜락에 오르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영화 <스쿨 오브 록>에서 초등학생 록밴드를 조직하는 대책 없는 선생님 역할을 맡은 그는 한참을 히히덕 거리며 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덴젤 워싱턴은 조금 달랐다. 지난해 자신이 적접 연출한 <앙트완 피셔>로 토론토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은 그는 올해 타락한 형사로 출연한 섹스 스릴러 <아웃 오브 타임>에서 두 명의 섹시한 여배우들과 진한 키스를 나눈다. 물론 더 화끈한 베드신도 있다. 덴젤이 등장하자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흑인 여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흑인 여성들에게 일종의 섹스 심벌이다. 토론토 케이블 TV의 한 여성 리포터는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녀는 덴젤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영화 속에서 두 여배우와 키스를 했는데 누가 더 좋았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덴젤 워싱턴은 능글맞게 웃더니 말했다. “그런 질문을…(웃음) 그런데 당신은 원래 마이크를 그렇게 잡나? 우스꽝스럽다. 내 입에 댔다가, 당신이 말할 때는 당신 입이 댔다가… 안 그런가?(웃음)” 순간 그의 말을 들은 팬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스타 배우의 임기응변이었다.
<엘리자베스> <쉬핑 뉴스> 등으로 잘 알려진 호주 출신의 연기파 여배우 케이트 블랜쳇 역시 엉뚱한 질문을 받았다. 한 노기자가 느닷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올랜도>에 나오는 미셸 파이퍼가 아니냐고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케이트 블랜쳇은 잠시 당황한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오히려 놀란 쪽은 케이트 블랜쳇보다는 영화제 관계자였다. 그녀 옆에 서 있던 영화제 관계자는 케이트 블랜쳇 앞을 가로막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 로맨틱 코미디 <르 디보스>의 나오미 와츠(왼쪽), <프리다>에서 동명의 멕시코 여류 화가를 연기한 셀마 헤이엑. | ||
이런 엉뚱한 해프닝은 발 킬머가 출연한 영화 <원더랜드>의 시사회장에서도 터졌다. <원더랜드>는 발 킬머가 전설적인 포르노 스타 존 홈즈 역을 맡은 준포르노성 영화였다. 존 홈즈는 무려 33cm나 되는 물건을 ‘무기’ 삼아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포르노계를 주름잡았던 수퍼스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발 킬머는 자신의 재기작이 될 <원더랜드> 시사회에 앞서 영화관 근방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금방 알아보질 못했다. 긴 수염에 눌러쓴 모자가 그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토론토에 모인 관객들을 흥분시킨 건 비단 할리우드 스타들만이 아니었다. 우리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토론토의 어떤 스타들보다 더 큰 관심을 모았다. 영화제의 심야 섹션인 ‘미드나잇 매드니스’를 찾은 관객들은 시작부터 요란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영화 속의 주요 소품인 때밀이 수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 것 같나요?” 장준환 감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휘파람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내들이 외쳤다. “콘돔!” <지구를 지켜라!>를 찾은 관객들은 박장대소했고 상영관은 흥겨운 분위기를 더했다. 자유로운 스타들과 이들보다 더 자유로운 관객들. 영화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캐나다 토론토 =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