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7일 열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기공식 현장. 이로써 한나라당 불모지였던 호남지역에 정몽준 최고위원(오른쪽)이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연합뉴스 | ||
이 같은 프로젝트의 중요 기반은 다름 아닌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정몽준 최고위원은 현대중공업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언제든 특정 지역 여론몰이에 활용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 현대중공업이라는 거대 기업이 공장이나 사업장을 건설하게 되면 해당 지역경제는 기름에 불을 붙이듯 활활 타오를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정치인 정몽준’도 해당 지역에서 직·간접적인 우호 여론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현대중공업 음성 태양전지 생산공장’ 준공식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로 꼽힌다. 물론 현대중공업의 전략적 선택이 우선한 것이긴 해도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합법적이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경제 살리기’에 나서면서 정치적 실리도 챙길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리게 된 셈이다.
“이달 7일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를 착공하면서 전북 지역에서 정 최고위원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 군산 지역은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저장고) 부지 선정에서 경주에게 패한 뒤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지역경제가 죽다보니 지역 자체가 생기를 잃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작년 10월 현대중공업이 이 지역에 투자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땅 값 상승률만 보면 군산이 올 들어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을 것이다. 군산조선소가 들어서면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 자명하고, 시로서도 세수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울산에 이어 또 하나의 ‘현중(現重·현대중공업)시’가 탄생하는 셈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울산에서 별 고생 하지 않고 5선 의원이 된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군산도 정 위원의 ‘호남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관계자의 얘기대로 최근 군산에서 정 최고위원의 인기는 말 그대로 ‘급등세’다. 군산지역에서 시작된 우호 여론이 인근 익산, 전주까지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사실상 한나라당으로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호남지역에 정 최고위원이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역 한나라당 대의원들 사이에서도 ‘정 위원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식의 여론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여론이 아직은 ‘정몽준이 누구냐’는 식의 호기심 차원에 머무를 수도 있다. 실제 지방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재산이 3조쯤 되는 사람을 실제 보고 싶다’, ‘축구협회장 오래했다는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는 등 주로 정치 외적인 이유로 정 위원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정치권 인사가 군중으로부터 관심을 사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해당 정치인에게 호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7월 전당대회는 결국 이 같은 ‘향촌 대의원’들의 표심이 향배를 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 1조 2000억 원이 투입돼 내년 8월 준공예정인 군산조선소는 연 매출 2조 원, 고용창출 1만여 명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상 전북 지역의 핵심 산업기지가 되는 셈이다.
정 최고위원은 군산조선소 기공식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충북을 방문해 당원들을 상대로 한 표심잡기에 나섰다. 충북 음성 소이공업단지 내 태양광 발전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이다. 정 위원은 “김밥 먹는 재미에 중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제천에서 내려 비포장 길을 달려 단양 시멘트 공장을 방문하곤 했다”고 자신과 충북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정 위원은 또 6·4 재보궐 선거 충북도의원에 출마한 유영준 후보 선거사무소에도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유 후보 선거사무소에 정 위원이 출현한다는 소문이 돌자 충북지역 당협위원장들과 도의원, 시의원들이 대거 몰리면서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 위원으로서는 지역에 ‘공장 준공’이라는 큰 선물을 안기는 한편 지역 당심을 잡는 데도 성공한 셈이다.
서부권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세를 얻고 있는 정 최고위원의 또 다른 ‘무기’로 정 위원의 ‘엉뚱함’을 꼽는 인사들도 있다. 다음은 당 관계자의 전언.
“얼마 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두 심각한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 최고위원이 ‘전화자동응답’(ARS) 얘기를 꺼냈다. ‘지난 총선 때 보니 ARS를 통한 여론조사가 꽤 유용하던데 그 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고 정 최고위원이 말을 꺼낸 것이다. 당 실무자가 상세히 설명을 해줬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학송 기획본부장이 ‘정 위원은 돈도 많은데 한번 설치해 보시구랴’고 해 다들 웃었다. 남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관심조차 두지 않는 ARS시스템에 대해 정 위원이 진지하게 질문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저 사람은 기존 정치시스템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까지 들더라.”
기존 ‘여의도식 화법’에 익숙지 않은 정 최고위원의 모습을 대의원들이 신선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정 최고위원이 당권 장악, 더 나아가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서기까지는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재벌가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겹쳐지면서 ‘독불장군이다’, ‘겸손함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정 위원이 유념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당을 이끌기 위해서는 정 위원 자신이 어떤 이념지향성을 가졌고, 당 운영의 미래비전은 무엇인지 확실히 제시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 최고위원에게 뼈아픈 것은 한나라당 내에 든든한 우호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정 위원은 여권 핵심세력에게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가치만 인정받았을 뿐 확실한 당권 주자로 입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전대 출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라 그의 ‘홀로 서기’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정 최고위원이 최근 펼치는 ‘서부 프로젝트’가 향후 당권 및 대권 경쟁 과정에서 과연 어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 귀추가 궁금해진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