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이 민주당 당권 경쟁의 또다른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 ||
특히 DJ와 노 전 대통령은 이번 전대를 통해 당내 대주주 위상을 되찾는 동시에 4·9 총선 과정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총선을 거치면서 앙금이 쌓인 손학규 공동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를 적극 지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 주변에서 벌써부터 ‘김심’·‘노심’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러한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 당권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부상하고 있는 DJ와 노 전 대통령의 당권 복심 속으로 들어가 봤다.
민주당 7월 전대는 당내 역학구도 및 당권 향배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DJ와 노 전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50년 정통 민주 정당을 자임하고 있는 민주당은 두 사람에게 정치적 고향이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현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있긴 하지만 계파를 중심으로 여전히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손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 측이 지난 4·9 총선 공천 과정에서 동교동계와 친노그룹을 소외시켰던 배경에는 ‘대주주’격인 DJ와 노 전 대통령의 향후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전략도 어느 정도 투영돼 있었음은 물론이다. 4월 총선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된 양 계파가 손 대표와 신주류 측에 적잖은 반감을 품고 있는 것도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당내 실세그룹으로 부상한 신주류를 상대로 ‘맞짱’ 승부를 펼치기에는 양 계파의 지분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양 계파가 당권 주자인 추미애 전 의원과 정대철 고문을 측면 지원해 신주류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세균 의원을 견제하고 있는 것도 현실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세균 의원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추 전 의원은 DJ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와 과거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는 점에서 동교동계와 구 민주계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또 친노 중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구 민주계와도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정 고문은 친노그룹과 구 민주계의 지원을 자신하고 있다.
정 의원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신주류 측과 자신의 고향인 호남권에 텃밭을 두고 있는 구 민주계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처럼 주요 당권주자인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구 민주계를 지원군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파 후보를 내지 않는 한 구 민주계는 이번 전대에서 확실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는 역으로 구 민주계의 지원을 받는 후보가 당권을 장악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세 사람이 경쟁적으로 구 민주계에 적극적인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구 민주계의 표심이 분산될 경우 신주류 측의 적극적인 지원이 예상되고 있는 정 의원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추 전 의원과 정 고문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동교동계와 친노그룹이 신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 이마저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커 두 사람이 고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 동교동계와 친노그룹의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추미애 전 의원과 정대철 고문. | ||
실제로 상당수 동교동계 인사들은 추 전 의원 및 정 고문과의 잇따른 비밀 회동을 통해 당권과 관련해 물밑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DJ의 핵심 측근인 권노갑 전 고문을 비롯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홍업 의원, 김옥두 이훈평 최재성 윤철상 전 의원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은 5월 18일 밤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정 고문과 회동을 갖고 전대 전략 및 당권 플랜과 관련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영원한 DJ맨으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지원 전 비서실장도 5월 16일 목포에서 추 전 의원과 단독으로 만나 전대 문제 등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5월 2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박 전 실장은 “DJ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며 동교동계가 움직인다거나 DJ의 뜻이 어떻다는 것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김심’ 논쟁을 일축했지만 고사 위기에 처한 동교동계가 7월 전대를 통해 활로를 모색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친노그룹 인사들도 정 고문과의 물밑 소통을 통해 당 정체성 논쟁을 부추기는 등 당권 경쟁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최근 최고위원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친노그룹 핵심 안희정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정통성”이라고 강조하면서 “두 전직 대통령이 걸어온 길이 ‘제3의 길’이고 민주정부 10년이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구호를 만들고 있는데 참으로 갑갑한 일”이라고 언급해 ‘제3의 길’을 주창해 온 손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친노그룹은 안 씨의 최고위원 당선을 위해 모든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친노그룹은 좌장격인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이병완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중심으로 잇따라 모임을 갖고 전대 전략 등 향후 진로 문제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추 전 의원과 정 고문 간의 후보단일화 논의도 가시화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부 지지 세력이 겹치고 있는 만큼 손 대표와 신주류 측이 지원하고 있는 정 의원과 3자 대결을 벌일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두 사람은 5월 20일 이뤄진 이명박 대통령과 손 대표 간의 ‘영수회담’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등 ‘손학규 때리기’에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추 전 의원은 21일 강원도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과 손 대표 간 회동은 민심수습을 위한 해답이 없는 정치적인 요식행위였다”고 평가절하했다.
▲ 지난 5월 20일 가진 여야 영수회담과 통합민주당 차기 당 대표 주자로 신주류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세균 의원(원 안). | ||
손 대표가 전날(19일) 청와대의 회동 제의를 받고도 박 대표는 물론 지도부와 전혀 논의를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영수회담을 결정한 것에 대한 당 내부의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구 민주계 일각에서는 “손 대표가 자신이 민주당 단독 대표라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영수회담 무(無)성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손 대표가 져야 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영수회담을 비판하고 있다. 최재성 대변인은 21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야당 대표와 대통령이 만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지막에 할 수 있는 평화적 수단이지만 동네 목욕탕에서 두 분이 만난 꼴이 돼 버렸다”며 영수회담 장본인인 이 대통령과 손 대표를 싸잡아 비판했다.
반면 신주류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 의원은 2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 정부 국정운영 능력은 아마추어”라며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영수회담 책임론을 이 대통령에게 전가시켰다.
후보단일화와 구 민주계의 지원을 이끌어낼 경우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추 전 의원과 정 고문이 본격적으로 ‘손학규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반면 신주류 측의 지원이 절실한 정 의원은 애써 영수회담 책임론 논쟁을 피해 가고자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쇠고기 파동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카드였던 영수회담마저 불발탄으로 끝난 것에 대해 여야의 정치 공방전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권 쟁투와 맞물려 책임론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월 총선 과정에서 손 대표에게 앙금이 깊었던 동교동계와 친노그룹은 자파 생존게임 연장선에서 이른바 ‘손학규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수회담 책임론과 당권 전쟁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김·노 전 대통령과 신주류 좌장격인 손 대표 간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실질적으로 이끌며 민주당 대주주를 자임해 왔던 두 전직 대통령과 이번 전대를 통해 확실한 실세 그룹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손 대표의 서바이벌 게임이 본 궤도에 진입하고 있는 민주당 전대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