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그의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 | ||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및 보궐선거의 결과가 확정된 지난 7일 밤 센추리 플라자 호텔은 온통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가득했다. 특유의 오스트리아 억양으로 승리의 연설을 하는 아널드 슈워제네거(56)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으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연신 ‘아널드’를 외쳐댔다.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그를 지켜보고 있던 마리아 슈라이버(48)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선거전 막판에 불거진 자신의 ‘성추행 파문’과 온갖 악성 루머를 막아내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그녀에게 슈워제네거는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표를 얻었는지 알고 있다”는 말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치 무대에 새롭게 뛰어든 이들 주지사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2년 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약 3천8백억달러(약 4백46조원)에 달하는 캘리포니아주의 적자와 수년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제 문제다. 소환선거에까지 부닥치며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던 그레이 데이비스 전 주시사를 비롯한 수많은 노련한 정치가들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과연 ‘할리우드의 액션 스타’가 어떻게 풀어 나갈지 벌써부터 전 미국인의 눈과 귀가 그의 행방에 쏠려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변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는 특히 아내인 슈라이버를 향한 약속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에서 자랐던 슈라이버에게 ‘정치판’이란 지긋지긋한 ‘전쟁터’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유명한 ‘케네디가의 저주’라는 악몽 또한 그녀를 더욱 정계에서 멀어지도록 만든 요인이었다. 때문에 연애 시절에도 행여 ‘케네디’라는 자신의 이름 석자가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슈워제네거의 경력에 누가 될까 결혼을 수십 번 망설였다는 일화도 있다.
최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가급적 정계에서 나를 멀리 데려가 줄 사람을 만나려고 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신의 의지와 달리 슈라이버는 지금 ‘액션 스타의 아내’에서 다시 ‘정치인의 아내’로 자리 바꿈을 했다.
“처음에는 특히 아이들을 위해서 출마를 반대했었다”고 밝힌 바 있는 슈라이버는 “지금까지 나는 ‘… 후보의 조카’, ‘… 후보의 딸’ ‘… 후보의 남매’ 등 여러 위치에 서 보았다. 하지만 ‘… 후보의 자식’만큼 힘든 역할은 없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았다. 아버지 서전트 슈라이버가 지난 1972년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던 당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슈라이버는 가장 먼저 자신의 두 딸과 두 아들을 걱정했으며, 이런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던 슈워제네거는 “당선 후에도 우리 가족의 생활에는 별반 달라질 게 없다”고 약속했다.
늘 그래왔듯 아이들 중심의 생활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이들 부부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출근하는 엄마와, 그리고 매일 저녁 주지사 관저에서 업무를 마친 후 개인 비행기로 퇴근하는 아빠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루하고 따분한 새크라멘토의 주지사 관저보다 안락하고 넓은 보금자리를 택하겠다”는 것. 비행기로 약 50분 거리인 새크라멘토까지 매일 출퇴근해야 하는 슈워제네거는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새크라멘토로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며 주지사로서의 임무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한편 선거는 끝났지만 선거 막판에 불거졌던 성추행 파문의 ‘연장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30년간 16명의 여성을 성추행하고 농락했다는 사실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면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던 사람은 당연히 아내인 슈라이버였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남편을 옹호했던 그녀는 “그를 잘 모르거나 조금만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보다 그와 17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말을 믿어달라”는 말로 호소했다.
성추행 소문을 통해 종종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당시의 힐러리와 비교되곤 했던 슈라이버는 결국 “힐러리보다 한수 위”란 평을 받았다. 마지 못해 남편을 용서한 듯 보였던 힐러리와 달리 슈라이버는 진심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모습으로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 둘의 관계가 무사할 것인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미 슈워제네거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만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일단 출발은 순조로워 보인다. 슈라이버는 다시 NBC TV의 앵커로 복귀하고, 슈워제네거는 당분간 영화 출연은 중단한 채 정치가로서의 역할에만 전념할 예정이다. ‘할리우드 출신의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 부부가 과연 다시 한 번 ‘제2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될는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