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 구명로비’ 관련 조풍언 씨 구속에 이어 DJ 장남 김홍일 씨(왼쪽 작은 사진)도 검찰 조사 방침인 가운데 범동교동계가 쇠고기 파동, 남북관계 경색 등 난국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 ||
범동교동계의 생존 플랜은 크게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를 상대로 한 ‘화해’ 전략과 민주당 당권 전쟁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하고자 하는 내부 투쟁 전략으로 나뉘어져 있다. ‘화해’ 전략은 ‘대우 구명 로비사건’ 등 과거 DJ 정권 때 불거졌던 대형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강도 높은 사정 드라이브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검찰은 DJ의 측근인 재미동포 무기거래상 조풍언 씨를 구속한 데 이어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과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해서도 조만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치권 로비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조 씨의 계좌 추적 과정에서 김 전 의원 쪽으로 일부 자금이 유입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의원 쪽으로 유입된 돈의 성격과 자금 흐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얼마 전 파킨슨씨병으로 입원해 있는 김 전 의원을 찾아갔으나 건강 상태 등을 이유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선 김 전 의원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한 만큼 방문 내지는 소환 조사를 실시하는 동시에 관련 계좌 추적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조 씨 구속 후폭풍이 DJ 측근들에게 번지지면서 DJ와 동교동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범동교동계와 DJ 측근 그룹이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를 상대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도 검찰의 심상찮은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평화센터는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을 맞아 오는 12일 63빌딩에서 기념행사를 갖기로 하고 이 대통령과 한승수 총리, 김하중 통일부 장관 등 여권 핵심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위원장을 맡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5월 26일 초청장을 통해 “이번 행사는 새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고 6자 회담의 긍정적 전망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열리는 것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의의가 깊다”고 밝혔다. DJ를 정점으로 한 1차 정상회담 주역들이 경색된 남북관계 해법을 찾는 데 일조하겠다는 ‘화해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1일에는 평화센터 핵심 관계자들이 여의도의 한 중국집에서 비공개 회동을 갖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6·15 기념행사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확인됐다. 이날 회동에는 DJ 내외를 비롯해 평화센터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고문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사인 임동원 전 장관과 김성호 전 복지부 장관, 최재천 전 의원(당시 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DJ와 측근 인사들은 이날 회동을 통해 ‘노벨상 로비 의혹’ 대처 방안과 이명박 정부와의 관계 설정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일부 DJ 측근들 사이에서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이 대통령과 여권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J 측근들을 겨냥하고 있는 검찰의 칼날을 차단하는 것을 담보로 DJ와 측근그룹이 현 정부의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데 적극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DJ와 이 대통령 간의 ‘정치적 빅딜’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DJ 측근그룹의 ‘화해의 손길’에 이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는 10년 좌파 정권이 주도했던 대북정책과 ‘실용정부’를 기치로 내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강경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쇠고기 파동에 남북관계마저 악화일로로 치달을 경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설이 확대 재생산되는 등 현 정부의 대북 정보와 대화 채널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점점 현실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대북정책 전문가들도 현 정부 출범 후 남북 당국 간에 대화가 중단되고 북한에 상주하던 정부 당국자들이 모두 추방당해 정부가 공식라인을 통해 취득할 수 있었던 대북 정보망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 ‘김정일 사망설’ 등 각종 유언비어가 양산되는 주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민주당 당권전쟁서 정세균 대세론에 맞선 범동교동계 ‘3자 연대론’이 가시화되고 있다. 왼쪽부터 정대철 고문, 추미애·천정배 의원. | ||
따라서 여권 일각에서는 쇠고기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북관계마저 악화될 경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DJ 측이 던진 화해의 손길을 못 이기는 척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범동교동계와 DJ 측근 그룹이 대야 협상 파트너인 민주당 내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DJ와의 관계 재설정은 꼬일대로 꼬인 ‘쇠고기 정국’과 FTA 문제, 대북관계를 풀어가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5월 24일 저녁 청와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초청해 단독 만찬회동을 가진 배경을 둘러싼 뒷말도 무상하다. DJ와의 회동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 씨를 비롯해 민주계인 김덕룡 김무성 의원과 박종웅 전 의원 등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이 대통령과 한동안 대립각을 세워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날 회동을 통해 섭섭한 감정과 앙금을 삭히고 쇠고기 정국 등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조언을 경청한다는 명분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먼저 청와대로 초청했고 뒤이어 6·15 기념행사에도 참석해 DJ와 전격적인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본격화되고 있는 민주당 당권 전쟁에서도 범동교동계는 치열한 생존 게임을 펼치고 있다. 7월 6일로 예정된 민주당 대표 경선에는 정세균 의원을 필두로 추미애 의원과 정대철 고문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고 천정배 의원도 유력한 경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경선 구도는 손학규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 의원이 조직력에서 우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5월 27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에서 신주류 측과 386 소장파의 지원을 받은 원혜영 의원이 새 원내대표로 당선됐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정세균 대세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는 4자 대결구도를 전제로 한 판세라는 점에서 후보 간 단일화 등 경선 막판까지 적잖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민주당 주변에선 벌써부터 정 의원에 맞선 ‘3자 연대론’이 가시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추 의원과 천 의원은 16대 국회 시절 민주당 정풍운동을 주도한 ‘바른정치모임’의 핵심 멤버로 활동한 바 있고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정대철 고문 역시 15대 총선을 앞두고 법조인 출신인 추·천 의원이 정치권에 입문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 인연으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세 사람은 동교동계와 구 민주당 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3자 연대론’이 가시화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남 출신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추 의원과 호남 출신이면서 개혁성향인 천 의원, 수도권 출신으로 구 민주계는 물론 친노(친 노무현 전 대통령) 그룹까지 광범위한 정치권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정 고문이 후보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신주류 측과 소장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 의원에 맞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기에 원내대표 경선에서 수도권 출신인 원 의원에게 석패한 이강래(전북) 홍재형(충북) 의원이 3자 연대론에 가세할 경우 ‘3자 연대론’은 곧 ‘대세론’으로 확산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정 고문은 ‘3자 연대’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고 추·천 의원 역시 후보단일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세 사람의 단일화 여부는 민주당 당권 향배를 가늠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범동교동계도 당내 생존 플랜과 맞물려 ‘3자 연대론’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범동교동계 인사들은 당권 주자인 이들 세 사람과 자주 비밀 회동을 갖고 후보단일화를 물밑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좌장 격인 권노갑 전 고문을 비롯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홍업 김옥두 이훈평 최재성 윤철상 전 의원 등은 지난 5월 18일 밤 정 고문과 회동을 가졌는가 하면 박지원 의원도 5월 16일 목포에서 추 의원과 단독으로 만나 후보단일화 문제 등에 대해 교감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총체적 난맥상에 빠진 여권 핵심부와 본격화되고 있는 당내 권력 투쟁 정국에서 쌍끌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범동교동계가 화려했던 왕국 재건을 위한 기틀을 다질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