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진들은 당시 미공군 소속이었던 ‘1352 포토그래픽 그룹’이 고성능 초고속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것으로서 핵폭탄이 투하되는 바로 그 순간이나 또는 투하 직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미군은 최첨단 기술과 최고의 사진기사를 엄선하여 촬영을 진행했으며, 일부는 냉전시대 미국의 파워를 홍보하기 위해 구소련측에 일부러 공개되기도 했었다.
한편 당시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그대로 방사선에 누출되었던 수천 명의 군인들은 물론이요, 실험장이 위치해 있던 네바다주 및 태평양 군도의 주민들은 몇 년 후 암으로 사망하거나 후유증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또한 몇몇 군도는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폐허로 변해 여태 버려져 있기도 하다. 이에 라이트는 “이 책은 인류 최대의 잔혹함을 증명하는 자료”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잔혹한 행위가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96년 UN 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핵무기 보유 국가는 아직 이 결의안을 비준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 인도, 파키스탄 등은 아예 서명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진1] 1954년 5월5일 오전 6시10분. 태평양 비키니 환초.
13.5메가톤급의 대형 폭탄이 터진 직후의 모습. 고리 모양의 증기가 폭발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약 10분 후에는 지름 82km의 방사성 구름이 환초의 상공을 뒤덮었다.
[사진2] 1955년 5월15일 오전 5시. 네바다주.
캐나다와 영국의 고위급 관리들을 초청하여 벌어진 핵폭탄 실험. 당시 터트린 핵폭탄은 미국의 파워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28kt급의 대형 폭탄이었다. 모두 보안경을 쓴 채 여유롭게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수중에서 폭발된 핵폭탄으로 인해 6백m 두께의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는 모습. 이로 인해 주변에 있던 여러 대의 선박과 4만t의 항공모함이 모두 파도에 휩쓸렸다.
[사진4] 1957년 8월7일 오전 5시25분. 네바다주.
체펠린 비행선을 점검중인 한 공군부대의 뒤편에서 핵폭탄이 폭발하고 있으며, 폭발 압력으로 인해 비행선의 외피가 무너지고 있다.
폭발 직후 중심부의 온도는 무려 약 1억℃로써 이는 약 1천5백만℃의 열을 내뿜는 태양 중심부의 온도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사진5]1957년 8월7일 오전 5시25분. 네바다주.
핵폭탄이 터지자 황급히 등을 돌려 눈을 가리는 군인들. 보안경을 착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현장에 있던 병사들은 상대의 뼛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