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사망 소식이 소개된 가짜 뉴스. 일요신문 DB
‘빌 게이트 피살 보도’는 사실 만우절 장난용으로 제작된 사이트에서 유포한 것이었다. 워낙 CNN 사이트를 완벽하게 흉내 낸 데다 피살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해 기사로서의 완성도도 높았다.
2003년 7월 15일에는 ‘탤런트 변정수 사망 기사’가 화제가 됐다. 변정수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것. 그렇지만 이것 역시 가짜 뉴스였다. 최초 유포자는 대학 신입생 변 아무개 씨였는데 그는 기존에 보도된 교통사고 기사를 짜깁기해 변정수 사망 기사를 만들어 냈다. 시기적으로 볼 때 국내에선 최초의 가짜 뉴스 해프닝이었던 변정수 사망 보도는 일정 부분 빌 게이츠 사망보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시작은 재미를 위한 장난이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가짜 뉴스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졌는지는 자연스럽게 입증됐다.
# “기자 삼촌한테 들었는데…”
‘정보’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누가 ‘양질의 정보’를 선점하느냐는 권력으로 연결되고 엄청난 금전적 이익으로 이어진다. 중앙정보부에서 안기부를 거쳐 국정원이 된 국가정보기관은 권력의 핵심 기관이며 대기업 역시 주식 정보, 부동산 정보 등 엄청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부를 창출해내고 있다. 인터넷에 급속도로 전세계를 변화시킨 원동력 역시 ‘정보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이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세상을 주도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일반 대중의 정보 접근성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이 됐다. 누구나 쉽게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인터넷과 SNS로 이를 유통한다. 유통망이 발전하면서 정보의 확산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다. 과거 여의도에서 시작된 소문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데 며칠이 걸리고 다시 전국 각지로 퍼지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던 데 반해 요즘은 단 몇 초 만에 전국으로 확산된다.
그럼에도 갈증은 여전하다.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어떤 정보가 더 신뢰성 높은 고급 정보인지를 추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뢰도가 떨어지는 수준을 벗어나 아예 사실이 아닌 가짜 정보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됐다.
가짜 정보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연예계 악성 루머다. 가짜 정보의 시작점은 ‘장난’이나 ‘호기심’으로 보인다. 만우절에 장난으로 한 것과 유사하다. 연예계 루머 최초 유포자로 적발된 이들의 상당수가 경찰 조사에서 장난삼아 그런 글을 올렸다고 진술했다. 또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악성 루머지만 자신이 만든 정보가 어떻게 확산되는가에 대한 호기심도 이런 흐름에 일조했다. 연예계 루머와 같은 가짜 정보가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한다는 부분을 악용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인터넷 사이트의 접속자 증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회원수 증가,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의 접속자 증가, 그리고 요즘엔 SNS 계정의 ‘좋아요’ 증가 등을 노리고 가짜 정보를 유통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 그렇게 서서히 가짜 정보의 영향력은 계속 커져왔다.
문제는 가짜정보에 신빙성을 더하는 것이다. 뉴스처럼 보이도록 하는 ‘가짜 뉴스’를 비롯해 유가로 거래되는 고급 정보인 ‘증권가 정보지’처럼 보이도록 만든 ‘가짜 정보지’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만든 ‘연예계 X파일’이 화제가 되자 ‘가짜 연예계 X파일’도 등장했다. 반드시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유포하는 가짜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도 등장한 것. 예를 들어 ‘내 친구가 직접 봤는데~’ ‘내 친구가 기자인 삼촌한테 들었다는데~’ ‘친구 어머니가 연예인 누구 어머니랑 친구인데~’ 등이다.
# 국정원 출신이 만들었다고?
지난 2월 14일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가장 심도 깊게 다뤄진 부분은 우선 그 개념이다. 개념 자체가 불명확한 터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방안도 모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사의 오보부터 패러디, 풍자적 가짜 뉴스 등을 포함하면 가짜 뉴스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진다. 이런 까닭에 그날 세미나에선 요즘 문제가 되는 가짜 뉴스 개념을 ‘정치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뉴스 형식으로 유포한 거짓 정보’라는 좁은 의미로 규정했다.
지금까지의 가짜 뉴스는 ‘장난’이나 ‘호기심’이 그 배경이었다. 물론 부작용은 심각했다. 연예계 악성 루머가 연예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을 침해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된 요즘의 ‘가짜 뉴스’와는 분명 그 결이 다르다. ‘정치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라는 분명한 목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의도’가 심각하다. 이미 경제적 의도로 생성된 가짜 뉴스는 어느 정도 존재했고 대부분 사기 등을 위해 악용돼 왔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사기 범죄의 피해자로 국한됐던 데 반해 정치적 의도의 가짜 뉴스는 일반 대중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는 심각한 사회 분열을 야기한다.
이미 미 대선에서 가짜 뉴스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정치적 의도’의 가짜 뉴스는 사회 분열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져 탄핵과 특검 및 검찰 수사, 그리고 구속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과거 연예계 악성 루머와 같은 가짜 정보는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받아들여진 데 반해 요즘의 가짜 뉴스는 훨씬 강력한 신뢰성을 갖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미디어이슈-일반 국민들의 가짜 뉴스에 대한 인식’ 보고서를 내놨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1084명을 대상으로 6개 뉴스를 보여주고 진짜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는 실험이었다. 6개 가운데 4개가 가짜 뉴스이며 2개가 진짜 뉴스였는데 이를 정확히 찾아낸 답변자는 단 19명(1.8%)에 불과했다. 6개의 뉴스 가운데 4개 이상을 진짜와 가짜로 구분해낸 비율은 43.8%에 불과했다. 진짜 뉴스와의 구분이 쉽지 않아질 만큼 가짜 뉴스가 급속도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험’이라는 제한적 상황이 아닌 실제 현실에선 훨씬 더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커진다. ‘믿거나 말거나’로 받아들이는 연예계 루머와 달리 정치적 가짜 뉴스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보다 본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믿고 싶어서 찾아보는 경향’이 짙어진 것.
게다가 분명한 목적성은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일부 가짜 뉴스를 상습적으로 작성하고 유포한 이가 30여 년 동안 국정원에서 일한 전직 국정원 직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30년 동안 정보를 만지는 일을 했던 이의 손길을 거쳤다면 기술적인 측면에서 완성도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기사를 작성해오던 전직 기자들이 가짜 뉴스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도 거듭 제기되고 있다. 그 내용은 ‘가짜’지만 이를 담아낸 ‘뉴스’의 기술적 완성도가 거듭 높아지면서 형식적으론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점차 힘겨워지고 있는 셈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가짜뉴스의 미래는 AI가 주도한다? 가짜 판정 프로그램도 안심 못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세기의 대결 이후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미 AI는 각종 산업에서 필수 기술로 대두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각종 산업 혁명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AI는 현실보다 SF(science fiction)의 주된 소재로 활용돼 왔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픽션이 아닌 현실이 돼 가고 있다.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에선 인공지능 컴퓨터 전략 방어 네트워크인 스카이넷이 핵전쟁으로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내몬 뒤 살아남은 인류를 기계가 지배한다.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는 AI가 인간의 기억까지 입력하고 삭제할 수 있게 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현실인 ‘매트릭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또한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이글아이>에서 AI는 핸드폰, 현금지급기, CCTV, 교통신호등 등 전자장치와 시스템을 통해 인간들을 통제한다. 실제로 AI가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망시키려 한다면 무엇을 이용할까. 아무래도 그 매개체는 정보일 것이다. AI는 IT(Information Technology)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바로 중심이 ‘정보’와 ‘통신’이다. 정보는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보기관을 두고 관리할 만큼 그 중요성이 공공연히 입증된 사안이다. 누군가 정보를 독점한다면 충분히 권력과 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AI일 수도 있다. 이런 우울한 전망은 가짜 뉴스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가짜 뉴스의 다음 단계를 ‘AI가 작성하는 가짜 뉴스’로 보고 있다. 이미 뉴스를 기자가 아닌 AI가 대신 쓰는 것은 현실화됐다. 통신사 AP의 자동뉴스 작성 시스템 ‘워드스미스’, 30초마다 한 건씩 기사를 내보내는 인공지능(AI) 기자 ‘퀼’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까진 데이터 분석이 주된 영역이라 스포츠와 경제 기사를 위주로 AI가 기사를 작성하고 있지만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의 일간지 주부게이자이(中部経済)신문이 창간 70주년 특집기사를 AI가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이벤트를 가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선 4명의 대학생들이 가짜 뉴스를 판정해내는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AI가 가짜 뉴스를 판정해낼 수 있다면 그 반대로 진짜로 보이는 가짜 뉴스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누군가 정보를 조작한 뒤 이를 기사 작성 AI를 통해 가짜 뉴스로 만들고 가짜 뉴스 판정 프로그램까지 속일 수 있도록 조작한다면 진짜 뉴스와 구별이 매우 힘든 가짜 뉴스가 생성될 수도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에 핵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가짜 기사로 인해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사이에 실제로 핵전쟁을 일어날 뻔했다. 이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만약 AI가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직접 이런 상황까지 조장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터미네이터> 같은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