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예복을 입고 노씨종친회 대제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지난 업적이 재평가되고 있는 분위기다. 연합뉴스 | ||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해 당내 ‘친노 입지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또 친노그룹 좌장격인 이해찬 전 총리와 ‘친노 아이콘’으로 통하는 유시민 전 의원은 외곽에서 신당 창당 등 지지층 재결집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신적 지주인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노 핵심 인사들이 민주당 내부와 외곽에서 상호 교감 속에 광폭 행보를 걷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각종 개혁정책 실패로 씁쓸히 퇴장했던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호재로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정가 일각에서는 친노그룹이 ‘노무현 신당’ 등 차기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중장기 비밀 프로젝트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적에게 위기는 아군에게는 더 없는 기회다.”
친노그룹 핵심 인사 중 한 사람인 L 전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4일 기자와 만난 L 전 의원은 “국민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국가 대사를 추진하는가 하면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도 반성과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아마추어 정권”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저평가는 현 정부의 실정과 맞물려 재평가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이 완승을 거둔 배경에는 이른바 ‘노무현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실패한 정권’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는 게 사실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L 전 의원은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매도하는 시각도 적지 않으나 출범 100일 만에 요동치고 있는 ‘이명박호’에 비하면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은 국익과 국민들의 생명권과 직결된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보여줬다”며 “비록 노 전 대통령이 온 국민의 환대를 받으며 퇴장하진 못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역사가 진정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L 전 의원은 또 친노그룹의 정치세력화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친노그룹에 386세력 등 앞날이 창창한 소장파들이 상당수 포진돼 있는 만큼 중장기 재기 플랜에 교감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민주당 내부와 외곽에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이념과 노선을 같이하는 핵심 인사들이 신당 창당 등 단계별 중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L 전 의원의 주장처럼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퇴임 후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귀농생활’을 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 스스로 현실정치에 목소리를 내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고 민주당과 당 외곽에 포진된 친노 핵심 인사들의 정치행보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달 중순쯤 인터넷 정치토론장인 ‘민주주의 2.0’ 개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이트를 통해 정치 현안 및 시국 전반에 대해 지지자는 물론 일반인들과 가감 없는 의견을 나눌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재단법인 ‘봉하’ 설립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인 설립에는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이병완 전 실장의 주도하에 참여정부 장·차관 및 청와대 참모진 등 핵심 인사들과 친노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강금원 창신그룹 회장이 거액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안희정 씨(왼쪽), 유시민 전 의원. | ||
얼마 전 부산상고 동문회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에게 친노그룹의 한 전직 의원이 “대통령 한 번 더 하면 어떻겠느냐”는 농담을 던졌다는 사실도 친노그룹 정치세력화와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성격과 정치 스타일을 감안하면 그가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 가능성은 낮지만 친노그룹의 생존과 맞물린 중장기 정치세력화 플랜에는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친노그룹 비밀 프로젝트의 종착지도 노 전 대통령을 정신적 지주로 한 이른바 ‘노무현 신당’ 창당에 맞춰져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여론정치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과 맞물려 친노그룹이 재결집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4·9 총선에서 생존한 친노그룹이 소수에 불과하고 정치 일선에서 밀려난 친노 인사들이 당장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정치권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정치세력화 플랜은 차기 총선과 대선에 맞춰 단계별로 추진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L 전 의원이 전한 친노그룹의 중장기 프로젝트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기자와 만난 친노그룹의 한 재선 의원은 “친노그룹의 정치세력화 플랜은 노 전 대통령의 여론정치, 민주당 내 입지 구축, 외곽 지지세력 결집 등 크게 세 트랙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친노그룹의 역할론에 힘이 실릴 경우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노무현 신당’이 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이념에 동조하고 있는 친노그룹과 지지자들이 ‘노무현 브랜드’를 ‘정치상품화’시키기 위해 물밑 교감을 나누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친노 핵심 인사들은 민주당 안팎에서 약화된 정치 입지의 재구축과 지지층 결집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당내에선 참여정부 시절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참모 역할을 했던 안희정 씨와 이광재 의원(재선)이 친노 입지 다지기에 앞장서고 있고 ‘쇠고기 청문회 스타’로 급부상한 조경태 의원(재선) 또한 ‘리틀 노무현’이란 별칭을 얻으며 친노그룹 이미지 제고에 일조하고 있다.
친노그룹은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장을 낸 안 씨를 적극 지원하는 동시에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친노 진영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인사를 지원하기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곽에선 친노그룹 좌장격인 이해찬 전 총리와 ‘친노 아이콘’으로 통하는 유시민 전 의원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4월 말 진보진영의 재결집과 세력 복원을 목표로 연구재단 ‘광장’을 설립해 외연을 넓혀가고 있고 유 전 의원도 진보세력을 아우르는 신당 창당을 암중 모색하는 등 모종의 프로젝트를 가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 전 의원은 특히 5월 25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속에 등불을 켜고 언제나 깨어 있겠다. 국민의 요구가 분출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묵묵히 실력을 기르고 역량을 키우며 살아갈 것”이라며 밝혀 ‘친노 신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출항 100일 만에 거대한 암초에 부딪혀 지지율 10%대로 급락한 이 대통령과 현 정부의 총체적 난국을 틈타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중장기 정치세력화 플랜이 어떤 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지 정치권의 또 다른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