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북한을 방문한 임동원 전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 다시 만났다. | ||
그런데 김 대통령과 손을 잡아 번쩍 올리며 포토타임을 가진 김정일 위원장은 자리로 돌아와 임 전 장관에게 ‘귓속말’로 “지금 이곳으로 오는 차 안에서 대통령께 ‘금수산궁전에는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임 원장이 이겼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임 원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 장면이 국내 TV 화면에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장이 북한의 간첩두목과 귓속말로 밀담을 나누었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금수산궁전 방문은 남북 고위급들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장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던 사안이었다. 북측은 정상회담 이전은 물론 방북 기간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궁전을 방문해 예의를 갖춰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이 고심 끝에 “정상회담 개최가 금수산궁전 방문보다 더 중요하다. 이제 와서 정상회담이 깨지게 되면 겨레에게 실망을 주고 역사와 세계에 웃음거리가 된다. 우선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공동선언까지 발표하고 난 다음에 금수산궁전을 방문할 수 있다고 전하라”며 결단을 내렸다는 것.
그러나 임 전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입장을 전달하며 설득하려 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의 정서로는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의 주검을 참배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협력사업을 위해서는… 확고한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데 국민의 70% 이상이 금수산궁전 참배를 반대한다. 김 대통령의 입지를 좋게 해주어야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측이 원하는 경협을 할 수 있다. 금수산궁전에 참배하면 김 대통령의 지도력이 상처를 받게 되고 정상회담의 의미는 퇴색되며 합의사항의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된 이후 이 얘기를 임동옥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부터 보고받은 김 위원장의 ‘답장’이 바로 만찬장의 귓속말. “임 원장이 이겼다”며 결국 금수산궁전 방문 일정을 포기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