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의 밀실 야합 의혹 속 전대 방식 등에 강한 불만을 품은 추미애 의원이 중도 하차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출범 100일 만에 휘청거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여권 못지않게 민주당 또한 당권 전쟁과 맞물린 계파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당직자들은 계파 간 생존플랜과 직결된 당권 혈투가 심화될 경우 이번 전대가 자칫 정파 간 ‘이별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추미애 의원도 전대 방식 등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중도하차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20여 일 앞으로 성큼 다가온 전대를 앞두고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는 민주당 당권전쟁 속으로 들어가 봤다.
쇠고기 정국에 묻혀 한동안 잠잠했던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또다시 폭발할 조짐이 일고 있다. 7·6 전대 방식과 시기 등을 놓고 물밑 기싸움을 벌여 왔던 각 계파들이 본격적인 ‘전투 모드’로 돌입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 안팎의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비상체제 선언과 ‘전당대회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의 파행적 당 운영 및 ‘지분 챙기기’ 의혹을 둘러싼 논란도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당 내에선 이대로 가다간 7·6 전대는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고 여권에 등 돌린 민심이 민주당까지 외면할 것이란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6월 12일 개혁성향 전·현직 의원 16명이 ‘전대 연기론’과 ‘비대위 전환’을 주장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들 전·현직 의원들은 성명을 통해 “7·6 전당대회를 연기하고 전 당원 직접참여제로 국민적 대표를 선출할 때까지 민주당은 비상체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성명에는 당 대표 경선 불출마를 선언한 천정배 의원을 비롯해 이종걸 강창일 우윤근 의원 등 ‘민생모임’ 그룹과 김근태 전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민평련’ 소속 우원식 이목희 전 의원,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채수찬 최재천 전 의원 등이 참여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을 이끌었던 양대 산맥이었던 정동영·김근태계와 개혁세력이 연대해 현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천 의원은 “이명박 정권과 국민이 직접 부딪히는 상황에서 현 지도부는 쇠고기 정국을 끌어갈 적절한 지도부가 아니다”며 현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뒤 “전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정체성 논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당권주자였던 천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전대 과정에서 당 정체성 논란과 맞물린 계파 간 서바이벌 전쟁이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당 일각에선 2000년 민주당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 시절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정동영 전 장관과 천정배 의원, 당권주자인 추미애 의원이 의기투합해 ‘제2의 정풍운동’을 전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당 내 신주류를 이끌고 있는 손 대표와 구 민주계를 대표하고 있는 박 대표가 주도하고 있는 7·6 전대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위기감에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선과 총선 패배 이후 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정 전 장관과 불출마로 선회한 천 의원이 추 의원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도 세 사람이 처한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정 전 장관과 천 의원이 추 의원을 지원하고 대표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정대철 고문과의 후보단일화가 성사된다 해도 ‘정세균 대세론’이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민주당 지도부는 지금까지 모두 202명의 지역위원장을 선정(6월 12일 기준)했는데 대부분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당 출신 인사들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도부는 또 전대에서 투표권이 부여되는 대의원 총수를 1만 2000명으로 정하고 이중 60%를 245개 지역구에 균등배분한 뒤 나머지 40%는 4·9 총선 때 지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한다는 기준을 마련한 상태다.
이에 따라 4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높았던 호남권에는 2288명의 대의원이 배정된 반면 호남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영남권에는 1929명의 대의원이 배분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여기에 영남권 68개 지역구 중 42곳만 지역위원장이 선임되고 나머지는 신청자 자질 검증 등을 이유로 부적격 판정이 내려지거나 선정 작업이 지연되고 있어 실제 영남권 대의원 수는 더욱 감소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는 열린우리당 의장 출신인 데다 대부분 수도권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신주류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정 의원의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가뜩이나 당내 기반이 취약한 추 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출신지(대구)인 영남권 대의원이 턱없이 적게 배정되자 크게 낙담하고 있는 분위기다.
추 의원 측과 당 일각에서는 당원들이 지도부를 직접 선출하는 ‘전 당원 투표제’ 도입을 주장했던 추 의원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손·박 대표가 자파 ‘지분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밀실에서 야합한 결과물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비록 추 의원이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손·박 대표의 입김이 반영된, 한정된 대의원 투표로 실시되는 전대 방식으로는 당내 기반 열세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따라서 추 의원 역시 ‘정치는 세력’이라는 냉혹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경선 포기 내지는 중도하차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전대 흥행몰이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그나마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추 의원마저 낙마한다면 민주당은 혹독한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7·6 전대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축제의 장’이 아닌 계파 간 생존 전략과 맞물린 피 말리는 전쟁터로 변질될 수 있고 여기에 정체성 논란이 본격화될 경우 이별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남권 당원들을 중심으로 ‘전대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고 개혁성향 의원들 사이에서는 현 지도부가 정한 방식으로 전대가 치러질 경우 반쪽 전당대회 내지는 ‘도로 호남당’으로 전락할 것이란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추 의원 측은 ‘경선 포기설’과 관련해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현 지도부와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촛불시위에 편승한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대되면서 지도부와 정 의원은 ‘조건부 국회 등원’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는 반면 추 의원은 ‘대통령의 선 재협상 선언, 후 등원’이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천 의원 또한 “쇠고기 전면 재협상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쇠고기 정국’을 둘러싼 당 지도부와 당권주자 간의 견해차가 당권 전쟁과 맞물리면서 치열한 정체성 논란으로 확전될 조짐마저 일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11일 기자와 만난 개혁성향의 한 재선 의원은 “손·박 대표가 주도한 전대 방식으로는 흥행을 기대할 수 없고 ‘호남당’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전통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 노선과 이념에 부합되지 않는 세력이 당권을 장악하려 한다면 더 큰 저항과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큰 저항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현 지도부를 상대로 ‘정풍운동’ 등 내부 투쟁을 전개할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정치 노선을 같이하는 세력끼리 따로 살림을 차리는 방안도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이번 전대가 자칫 이별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전대 방식 및 시기를 둘러싼 잡음이 증폭되면서 전대 TF팀이 마련한 전대 로드맵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민주당 전대 로드맵’에 따르면 6월 13, 14일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등록을 마치고 15일 공명선거 서약식 및 합동기자회견을 가진 뒤 19일 제주대회를 시작으로 29일 마지막으로 서울대회를 치르는 전국투어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천 의원의 불출마에 이어 추 의원 진영에서도 이상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후보 등록을 16, 17일로 연기한 상태다.
쇠고기 정국에 따른 장외투쟁 등 전대 변수로 인해 가뜩이나 빡빡하게 마련된 전대 일정이 급박하게 수정됨에 따라 당장 19일로 예정된 제주대회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는 ‘전대 연기론’과 ‘비대위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당 내외 개혁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단초로 작용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전대 연기론을 주장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지도부 흔들기’에 불과하다”며 결정된 방식과 일정에 따라 전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쇠고기 정국에 묻혀 한동안 잠복해 있던 민주당 내 계파 갈등이 전대가 다가오면서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민주당 전대가 흥행 여부를 떠나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별전쟁으로 비화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