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양소년은 몸이 너무 재빨라 잡는데 애를 먹었다고. | ||
그렇다면 과연 실존했던 ‘야생아들’도 모두 그러했을까. 최근 독일에서 출간된 저서 <카이파 하우저의 형제자매>의 저자인 P.J 블루멘탈은 “대부분은 문명의 품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지만 때로는 적응에 실패하고 야생으로 돌아가거나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인 539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발견된 1백 명가량의 ‘야생아들’이나 혹은 수십년 간 사람과의 교류 없이 고립된 채 자랐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는 기구한 운명과 함께 이들이 어렵사리 문명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의 야생아들은 발견 당시 함께 지내고 있던 야생 동물의 습성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었다. 지난 1946년 시리아의 한 초원에서 영양 무리와 함께 발견되었던 일명 ‘영양 소년’은 인간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시속 50km의 달리기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어찌나 빠른지 한 번 도망갔다 하면 도무지 잡을 재간이 없었기에 급기야 손발을 꽁꽁 묶어 놓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 인도의 늑대소년은 물을 마실 때도 손을 사용하지 않고 늑대처럼 혀로 핥아 먹었다. | ||
물을 마실 때에도 컵을 사용하지 못하고 접시에 담겨진 물을 혀로 핥아 마셨으며, 야행동물의 습성상 밤마다 날고기를 찾아 헤매 다녔다. 특히 늑대처럼 어두운 곳에서도 인광을 발하는 푸른 눈을 지닌 탓에 깜깜한 밤에도 멀리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야생아’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기록은 멀리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57년 현재의 벨로루시에 위치한 한 숲에서 곰들에게 둘러싸여 지내고 있던 한 소년이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소년은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괴성만 질러대고 있었으며, 머리털은 온통 흰색으로 마치 곰의 털처럼 빳빳하고 두꺼웠다. 힘 또한 여느 소년보다 배는 더 셌으며, 잡혀온 후에도 어둡고 구석진 곳을 찾아 다니거나 혼자 중얼거리면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등 야생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또한 툭하면 풀이나 식물의 잎을 뜯어 먹었으며, 심지어 날고기를 찾아 숲 속으로 도망가기 일쑤였다.
이렇게 한때 세상의 관심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처참하게 버려진 비극적인 스토리가 있다. 바로 유명한 ‘카스파 하우저’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
1828년 독일 뉘른베르크의 운슐리트 광장 한복판.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이상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던 한 소년이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에 의해 구조되었던 그가 할 수 있었던 말이라고는 “아버지처럼 기병대가 될래요” “몰라요” 단 두 마디가 전부였으며, 소년의 품속에서는 “이 아이의 이름은 카스파 하우저입니다. 본인은 가난한 직공으로 이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사정입니다. … 이 소년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양육을 맡았지만 이후로 이 소년을 집에서 일체 외출 시키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한 통 발견되었다.
후에 그가 말을 배운 뒤 기억해낸 바로는 그가 감금되다시피 했던 방은 똑바로 서있을 수조차 없는 좁고 낮은 방이었으며, 평생을 그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몇 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갇혀 살았는지는 본인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광장에 버려졌던 카스파의 특이한 인생과 행동은 곧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이내 시당국의 보호 아래 보통 청소년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 17세. 하지만 불과 2∼3세 수준의 지식과 언어 능력으로 극진한 보살핌 속에 지내던 카스파는 그로부터 정확히 1년5개월 후 칼에 찔린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점차 자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자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던 카스파가 자살을 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 10년간 어두운 독방에 갇혀 지낸 제니(왼쪽). 유아기 때 침팬지와 함께 키워진 도널드 켈로그. | ||
아버지에 의해 10년 동안 독방에 갇혀 지냈던 제니가 하루종일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방안의 변기에 묶인 채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자는 일이 전부였다.
10년 동안 그 누구와도 말을 할 수 없었던 까닭에 발견 당시 소녀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아버지로부터 줄곧 들어왔던 “그만!” “됐어!”가 전부였다. 또한 어두운 방안에서만 지내온 탓이었던지 소녀의 시야는 불과 30cm 이내가 고작이었으며, 똑바로 일어서거나 걷는 것조차 못했다.
이후 양부모에게 보내져 교육을 받긴 했지만 1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뒤늦게 인간으로서 살아가기란 무척 고된 일이었다. 제니는 지난 9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으며, 보통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과 동물의 경계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아들을 시험 대상으로 삼은 학자도 있었다. 1931년 심리학자인 윈트로프 켈로그는 자신의 10개월 된 아들 도널드의 여동생으로 7개월 된 침팬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이 둘에게 같은 잠옷, 같은 숟가락, 같은 식사를 하도록 하는 등 마치 진짜 남매처럼 키우면서 지켜보길 수개월. 하지만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모든 면에서 도널드보다 침팬지의 학습 속도가 월등히 빨랐으며, 14개월을 넘어서자 도널드가 침팬지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배고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침팬지처럼 울부짖거나 접시의 바닥을 핥는 등 침팬지의 행동 양식을 습득하기 시작했으며, 18개월이 되자 자신의 신발을 입으로 물어 뜯거나 핥기 시작했다. 19개월이 지났는데도 도널드가 말할 수 있는 단어 수는 고작 6개. 보통 아기라면 그 시기에 50개의 단어를 습득했어야 했다.
자신의 아들이 점차 ‘동물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켈로그 박사는 즉시 실험을 중단했으며, 그때부터 도널드는 비로소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도널드에게 어릴 적 침팬지와의 생활이 나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정상적인 청년으로 자라난 도널드는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수재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