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배우자가 죽은 후 배우자 친족과의 관계를 끊는 ‘사후이혼’이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봄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49재 때 시누이들이 ‘앞으로도 우리 부모님을 잘 모셔 달라’고 하길래 ‘미안하지만 이제 가족관계가 아니니 그렇겐 못 하겠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죠.”
일본 가나가와현에 살고 있는 히로코 씨(55·가명)는 지난해 사후이혼을 했다. 그는 “수십 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동안 시댁식구들이 자신을 가정부 대하듯 했다”고 전했다. 시아버지가 뇌경색에 걸려 몸에 마비가 왔을 때도 병 수발은 전부 히로코 씨 차지였다. 근처에 시누이들이 살고 있었지만 “올케가 있어 다행”이라는 겉치레 말만 할뿐, 정작 도움에는 인색했다.
히로코 씨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당시 솔직한 내 심정은 ‘이 사람이 죽으면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49재 날 아침 결국 구청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일본 주간지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 사후이혼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알기 쉽게 ‘사후이혼’이라는 말을 쓰고 있긴 하나, 실제로 법적인 이혼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일본 법률은 배우자 사망 후 이혼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친인척 관계 종료신고서’를 관공서에 제출하면 배우자 사망 후 배우자의 가족과 절연할 순 있다. 이로써 수발이나 부양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대부분 신고를 하는 쪽은 시댁과 인연을 끊고 싶어 하는 여성이며, 반대의 사례는 거의 없다.
일본 법무부의 호적통계를 살피면 ‘친인척 관계 종료신고’ 수는 지난 2005년 1772건에서 2015년 2783건으로 급증했다. 10년 새 5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최근에는 “관련 상담전화도 폭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간호·간병 부담이 커진 점”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또 “텔레비전이나 잡지 등 매체들이 사후이혼을 다루면서 부쩍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후이혼에 대한 남녀 반응이 다르다”는 점이다. 먼저 여성의 경우 마치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공감하는 반면, 남성은 ‘우리 집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 만다. 그러나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어차피 며느리는 남이니 아들이 죽고 난 후에는 절연해도 상관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돈 이야기가 얽히면 갈등은 커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연도 있다. 지바현에 거주하는 하야시 씨(81·가명)는 2년 전 아들이 출장지에서 쓰러져 그대로 숨을 거뒀다. 심근경색이었다.
보험금과 퇴직금이 한꺼번에 지급되자 며느리는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사서 살림을 차렸다. 들리는 소문에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고 한다. 아직 50대 중반이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하야시 씨는 “며느리에게 우리 노부부의 부양을 바라진 않는다. 다만 아들의 재산 일부를 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하야시 씨는 아들의 유산 분배를 놓고 재판 중이다.
<주간겐다이>는 “일본의 사후이혼 절차가 비교적 간단한 편”이라고 전했다. 필요한 서류는 ‘친인척 관계 종료신고서’라는 A4 크기 한 장이면 된다. 처리는 본적지 혹은 현주소지의 관청에서 진행하며, 호적등본과 사망한 배우자의 호적등본(사망 기재가 되어 있는 것), 인감도장만 제출하면 즉시 성립한다.
진짜 이혼이 아니기 때문에 친인척관계를 종료해도 남편과의 법률적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편의 상속인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고, 유족 연금도 받을 수 있다. 서류 신고는 배우자가 사망한 후라면 언제든지 괜찮다. 제출기한 또한 없다. 게다가 당사자들에게는 통보되지 않는다. 즉, 호적등본을 떼 조사하지 않는 한 절연됐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낼 가능성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청서를 심리적 위안용으로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여성도 많다. ‘여차하면 언제든지 남으로 돌아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5년 전 남편을 병으로 잃은 미키코 씨(51)도 지난해 사후이혼을 했지만, 아직 시부모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를 제출한 뒤 솔직히 생활이 크게 바뀐 건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 이제 시부모와 ‘생판 남’이라고 생각하면 무척 홀가분하다”고 밝혔다.
다만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남겨진 부모로서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며느리의 사후이혼을 막는 절차도 있을까. 이에 대해 변호사 리자키 도모히데 씨는 “사후이혼을 하느냐 마느냐는 며느리 의지에 달린 문제로 막을 순 없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아들에게 유언장을 쓰게 하는 것 정도다. 그것도 단순히 ‘부모를 보살펴 달라’는 정도로는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효력이 발생하려면 ‘사후 재산을 모두 물려주겠으니 대신 부모를 모셔 달라. 만일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재산을 제3자(부모나 형제)에게 전한다’는 식의 유언을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만일을 대비해 이 같은 유언을 써 달라’고 부탁할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도모히데 씨는 “현재까지 그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부모·형제에 대한 부양 의무가 없다. 실제로 부양 의무가 생기는 것은 가정법원이 아내에게 ‘부모를 부양하라’는 재판을 내렸을 경우다. 이때도 친인척 관계 종료신고서를 내 사후이혼을 하면 그 결정은 무효가 된다. 하지만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부모와의 법적관계는 해소되지 않으므로 아이들이 부양할 의무를 질 순 있다.
도모히데 변호사는 “흔히 같이 사는 며느리에게 부양 의무가 있다고 오해하는 시부모와 며느리들이 많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보자면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야박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률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장래 며느리가 자신들의 노후를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달콤한 꿈이다. 상대에게 아무런 법적 의무가 없음을 알아두는 편이 좋다”고 조언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