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강경책으로 막힌 정국을 돌파하려는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볼때 위기에 몰릴 때마다 되살아나는 이 대통령 특유의 돌파력이 다시 힘을 얻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야당가에서 ‘허수아비’로 불리는 ‘박희태 대표-한승수 총리’ 구도가 확립되면서 무소불위의 대통령 친정 체제도 구축되었다. 거칠 것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식 정국 운영의 막후를 들춰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이나 지금이나 시국을 보는 눈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최근의 촛불시위를 보면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6·10 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민심 이반에 대해 느꼈던 애절한 심경을 피력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 대국민 반성문도 위기 돌파의 수단일 뿐 대통령의 기본적 시국 인식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 곁에서 오랫동안 전략적 조언을 해오던 정치권 관계자 A 씨의 말이다. 사실 이 대통령은 촛불정국이 극한으로 치닫던 지난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뼈저린 반성문’을 발표하며 백기 투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이 지난 뒤 이 대통령의 시국 인식에 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는 촛불집회의 규모가 줄어드는 시점인 지난 6월 24일 “체제를 흔들거나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라며 촛불시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진보진영에서 “이 대통령이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신 공안정국 조성이다”라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일련의 ‘변심’ 과정을 두고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 완전히 머리를 숙인 것이 아니라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현 위기 상황을 10년 집권으로 구축된 진보진영의 강력한 저항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이런 말들을 직접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측근’들을 통해 대통령의 시국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쇠고기 정국으로 힘이 빠진 청와대를 대신해 여권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 원내대표. 최근 그는 촛불 정국을 두고 “촛불 시위 정도의 저항은 예상했던 것이다.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의 잔재를 처리하려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촛불 시위가 애초의 순수성을 잃고 지금은 진보진영의 저항세력만 남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근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이 대통령과 만나기도 하고 전화도 한다. 그때마다 국민들의 마음을 바르게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의 독대를 굳이 부인하지 않는 홍 대표의 인식이 곧 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7·3 전당대회에서도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그룹 후보인 공성진 의원이 “진보진영의 막판 저항이 거세다. 수세에 몰린 이 대통령을 구해내겠다”라고 말했던 점도 이 대통령과 시국 인식을 같이하는 코드 맞추기로 해석된다.
또한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켜본 인사들은 하나같이 “그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이 그 누구보다도 확고한 사람이다. 고집도 무척 세다. 그동안 몰랐던 것에 대해선 순순하게 선뜻 받아들이고 고치려는 자세도 있지만, 경험으로 쌓은 기본적 원칙에 대해선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참모들도 이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려하기보다 웬만하면 모두 그의 뜻에 맞추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최근의 위기를 기독교 신자들이 말하는 ‘시련’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민심의 도도한 흐름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국의 반전 기미도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게 하는 동인이다. 일단 촛불집회에 대한 지지 여론이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는 점이 감지된다. 또한 유가 급등과 스태그플레이션 등 경제에 대한 위기감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위기 국면이 이 대통령을 살릴 것이라는 아이로니컬한 분석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전망이지만 경제위기가 이명박 대통령을 살리게 될 것이다. 경제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불안감을 느낀 다수가 결국 국정 안정과 법질서 강화를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향후 강공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분석은 현재의 여권 체제를 봐도 알 수 있다. 촛불 정국으로 수세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에게 쏟아진 수십 개의 조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 분점이었다. 청와대 위주의 독단적 정국 운영이 오만함으로 비치면서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박근혜 전 대표의 총리 옹립 문제를 접근해온다면 논의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던 배경도 권력 분점이 그들 주장의 요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반성문’을 발표한 뒤 그 수습책은 오히려 그러한 주장들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한승수 총리는 교체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유임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개각도 3~4개 부처에 그칠 것이란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한때 청와대에서 “노무현 정권 때의 이해찬 총리 수준은 아니더라도 내각을 컨트롤하는 상당한 권한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지만 흐지부지됐다. 한 총리가 살아남는다면 그는 결국 청와대의 ‘오더’를 충실히 수행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총리실 관계자도 이에 대해 “한 총리가 유임되더라도 현재의 권력 구도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얼마나 청와대의 오더를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총리의 성적표가 매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3일 한나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당 인사들에게 목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정치권에선 “허수아비 격인 여당 대표와 총리를 앞세운 이 대통령이 앞으로 더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쇠고기 정국과 촛불에 밀려 주춤했던 ‘MB(이명박 대통령 이니셜)식 개혁’에 강력한 드라이브가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이래서 나온다. 이 대통령이 누차 ‘공기업 선진화’ 등을 강조한 데 이어 최근 들어서는 “경제 횃불을 들자”라고 독려하고 나선 것도 앞서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선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강력한 지도력이 불가피하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현재 여권의 권력 구도는 어디를 둘러봐도 ‘이명박’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쓴소리를 하고 견제를 할 세력이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이는 ‘예스맨’들의 필연적인 충성경쟁을 불러올 뿐이다. 최근 이 대통령의 ‘폭력 시위 강력 대처 원칙’에 대한 공안 라인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그 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6월 말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간부들을 새벽에 긴급 호출해 대책회의를 열며 촛불집회에 대해 ‘극렬’, ‘선동’, ‘배후’ 등의 단어를 거론하며 ‘공안정국’ 시비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일각에서는 임채진 검찰총장을 제쳐두고 검찰을 진두지휘하는 듯한 그의 행보를 빗대 ‘김경한 검찰총장’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여기에 어청수 경찰청장도 연일 폭력 시위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김 장관과 함께 현정국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런데 두 사람에 비해 촛불 시위에 대해 침묵모드를 지키고 있었던 임채진 검찰총장이 지난 6월 말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전국 공안부장·형사부장 회의에서 “불법 폭력 시위에 종지부를 찍겠다”라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는데, 일각에서는 “그가 ‘공안정국’ 조성에 뒤늦게 뛰어들었다”라며 입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같은 날 오후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이 펼친 비폭력 평화 미사로 궁색해져 버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검찰 총수인 임 총장이 자신의 주관할 업무인 공안 문제에 대해 김경한 법무장관이 너무 치고 나간다고 생각해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가 종교계의 비폭력 시위 주도가 발표되면서 오히려 체면을 구기게 된 측면이 있다. 이는 시위 강력 대처라는 이 대통령의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안 라인 간에 벌어진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나온 해프닝인 것 같다”라는 말이 나온다. 촛불집회가 비폭력 평화시위로 장기화할 경우 임 총장의 ‘종지부’ 발언은 대통령의 코드에 맞추려다 빚어진 오버 행보로 귀결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어청수 경찰청장 등 시위 방어 일선에 참여하는 공안 라인으로부터 “더 이상 물러나면 국가 공권력이 무너질 것”이라는 건의를 받아들여 촛불 시위에 대해 강경책으로 돌아섰다는 분석도 있다. 경찰이 시위대로부터 당한 피해 사례 등을 위주로 해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 여권 내부 기류의 촛불집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경찰청장으로선 당연히 강경 대처를 주장할 수 있지만 이 대통령의 폭력 시위에 대한 근절 원칙이 여권 내부로 확산되면서 촛불정국 대응도 강경책으로 흐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원칙과 신뢰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고무줄 행보다. 통합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가 통치권자로서 ‘폭력 시위 강력 대처’라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발언이 있기 불과 며칠 전에 통절한 반성을 했다는 점에서 그런 극적인 변화는 결국 지도자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이어질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홍보 관계자들은 “말이 바뀐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발언한 것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촛불집회가 비폭력 장기집회로 가면서 그 열기가 식는다고 해서 이 대통령의 강경책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대통령의 촛불시위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을 두고 ‘믿지 못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심은 꺼진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다시 살아나는 산불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이 대통령의 강경드라이브가 정국을 안정시킬지 아니면 반대로 정국을 더욱 경색시킬지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