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 특별강연과 만찬에 참석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해 대선 참패로 10년 진보 정권이 무너지자 당 일각에서 ‘DJ 책임론’이 불거진 바 있고 4·9 총선 과정에서는 ‘공천 혁명’을 명분으로 ‘탈 DJ’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여기에 마지막 보루였던 추 의원마저 신주류의 지원을 받은 정세균 대표에게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40여 년 호남권 맹주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해 왔던 DJ의 영향력이 단계별로 소진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권세가 10년을 가지 못함)이란 교훈과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저물고 있는 ‘DJ시대’를 조명해 봤다.
DJ의 위상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대선 정국을 전후해서다. DJ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범여권 대통합과 후보단일화를 주창하면서 ‘막후 사령탑’ 역할을 담당했다. DJ는 범여권 통합 작업과 후보단일화가 무산되자 친정이나 다름없는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 대신 범여권 후보 중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물밑 지원했다.
동교동계 좌장 격인 권노갑 전 고문과 핵심 측근인 박지원 의원 등이 정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섰고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핵심 인사들도 대거 탈당해 정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대선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과 정 후보의 득표율이 더블 스코어에 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인제 후보는 1%에도 못 미치는 참담한 득표율(0.7%)을 기록해 50년 전통의 민주정당을 자임해온 민주당 당직자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겨줬다.
범여권 전체가 대선 완패에 따른 충격파에 휘말리면서 ‘DJ 책임론’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자존심 상한 민주당 당직자들은 물론 신당 일부에서도 지역주의에 의존해 ‘반 이명박’ 구도로 대선을 치르려 했던 DJ에게 집중포화를 날렸다. 특히 DJ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고 97년 대선 때는 ‘DJP 연대’의 이론적 틀을 마련한 황태연 당시 민주당 중도개혁국가전략연구소장도 DJ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이는 40여 년 호남권과 민주당 맹주로 군림해 온 DJ의 위상을 뒤흔드는 신호탄이었다. DJ는 4·9 총선을 거치면서 다시 한 번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DJ와 동교동계는 대선 참패에 따른 충격파에서 4·9 총선을 계기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DJ가 당시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신당 대표직을 수락한 손학규 전 대표를 ‘50년 전통 야당의 계승자’라고 추켜세웠던 배경에도 재도약 플랜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였던 손 전 대표와 박상천 의원은 ‘자파 지분 챙기기’와 맞물린 ‘탈 DJ’ 공천에 의기투합하고 대대적인 ‘공천 혁명’을 단행했다. 당시 ‘공천 저승사자’로 통했던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혁명 공천’을 명분으로 비리부정 전력자 11명 전원을 숙청한 데 이어 ‘호남 현역 30% 물갈이’도 현실화시켰다. 핵심 측근인 박지원 의원과 차남인 김홍업 전 의원도 숙청 대상에 포함됐다. DJ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히 쇠락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동시에 재도약을 꿈꿨던 동교동계의 부활 프로젝트에도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7·6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을 지원했지만 추의원은 1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 ||
전남도와 신안군 압해도 주민들이 연륙교 명칭을 놓고 적잖은 논란을 빚었다는 사실도 DJ의 위상 추락을 대변하고 있다. 전남 서남해안 섬 지역들의 대관문 역할을 수행할 목포-압해 간 연륙교인 ‘압해대교’ 준공식(6월 23일)을 앞두고 전남도와 압해도 주민들이 마찰을 빚었던 것. 신안 압해도 주민들은 8년여에 걸친 교량 건설공사 기간 내내 ‘압해대교’로 불렸는데 전남도가 개통을 앞두고 ‘김대중 대교’로 확정하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논란이 일자 박지원 의원은 “DJ가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이에 전남도가 재선정 절차에 들어가 ‘압해대교’로 최종 결정했다. 고향(신안군) 주민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DJ의 씁쓸한 현주소를 반영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 DJ였지만 그에게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었다. 민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7·6 전당대회였다. DJ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추미애 의원이 당권을 장악할 경우 위축된 DJ의 위상이 재정립되는 것은 물론 동교동계 부활 플랜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나름의 전략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특히 4·9 총선을 거치면서 앙금이 쌓인 손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주류 측이 정세균 대표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DJ와 동교동계의 추 의원 지원은 ‘복수혈전’이나 다름없었다.
권노갑 전 고문을 비롯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 이훈평 윤철상 전 의원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이 추 의원과 또 다른 당권주자였던 정대철 고문을 잇달아 접촉하며 후보단일화를 모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3자 대결구도가 형성되면 대세론을 구축하고 있는 정세균 대표를 이길 수 없다는 현실론에 공감하고 후보단일화로 승부수를 띄우자는 전략이었다.
추 의원과 정 고문도 이러한 전략에 의기투합하고 경선 당일 1차 투표 결과 3위 후보가 2위 후보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당과 각 캠프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볼 때 정 대표의 지지율은 45%를 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하면 55%가 넘는다는 산술적인 계산도 두 사람의 단일화 합의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1차 투표에서 정 대표가 과반을 넘기지 못할 경우 단일후보가 대역전극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부풀었다.
하지만 동교동계와 추-정 두 후보가 기대했던 실낱같은 희망은 1차 투표를 넘지 못했다. 정 대표가 과반이 넘는 득표율(57.6%)로 당선이 결정돼 후보단일화 카드를 꺼내지도 못한 채 분루를 삼켜야 했다.
정 대표의 완승은 민주당 내 세력 재편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향후 당내 역학구도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오랜 세월 민주당 ‘대주주’로 군림하면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해온 DJ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호남권의 한 재선 의원은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가 현실 정치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듯이 DJ의 동교동계 또한 이제는 역사에 묻혀야 한다”며 “DJ도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DJ가 뒷모습이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이 됐으면 한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