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계곡에 자리한 용담정은 봄기운이 완연해 화려한 왕벚꽃이 짙푸른 신록을 배경으로 반겼다. 수운 선생의 노래 중에 “춘삼월 호시절에 또 다시 만나볼까”라는 대목이 있는데 아마 용담 계곡의 풍광을 읊은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10월 경주시에서 주최한 ‘경주 동학문화축제’ 당시 찾았던 용담정은 태고적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듯 가을의 고운 색으로 반겨 출사가 들의 핫스팟으로 욕심을 낼만한 곳이었다면 봄의 용담정은 푸른 기운 그 자체였다.
‘동학’은 근세에 들어 ‘천도교’로 새롭게 이름을 바꾸고 세상에 드러내는 ‘현도’(顯道)의 길에 들어섰다. 21일은 천도교 의회에 해당하는 ‘종의원’들의 합동 수련을 하는 기간으로 2박 3일 동안 진행됐다.
수련회는 개강식을 시작으로 염상철 종의원 의장의 개회사, 이정희 교령의 격려사, 김종운 수도원장의 수도원 안내 후 폐식이 1부 순서로 진행됐다. 이후 윤석산 선도사의 ‘동학 천도교의 신의 명칭’과 ‘동학 천도교의 신관’을 주제로 강의가 이어졌다.
염상철 종의원 의장은 개회사에서 “용담정은 동학 천도교가 창도된 천도교 제1의 성지이다.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은 ‘용담의 물이 흘러 네 바다의 근원이 된다(龍潭水流四海源)’는 시를 남겼듯 사람 섬기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처럼 하라는 사인여천 인내천(事人如天 人乃天) 사상을 실천한다면 신문명, 신세계의 근본 사상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동학 천도교는 수운 최재우 선생의 순도 이후 퇴락했으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이 고난 속에서도 교세 확장에 힘써 1890년 전후에는 전국적인 교세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갑오년(1894)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후 다시금 수십만 명이 순국하고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의 노력으로 1910년대 중반에는 다시 300만 교단을 일궜으나 기미년(1919) 3.1운동 이후 극악한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광복 이후, 한때 300만 교단의 세력(그중 70% 이상이 이북 지역에 분포)을 회복했으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서구화 일변도로 성장 발전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오늘날 그 세력이 매우 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염 의장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며 “내안의 진리를 밖으로 넘치게 하는 덕을 갖춘다면 300만 포덕의 재건은 가능할 것이며 종의원이 선도 그룹이 돼 앞장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격려사에서 이정희 교령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3.1운동에 앞장섰던 천도교가 다시한번 마음 모아 종의원들이 앞장서서 민족중흥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천도교 종의원들은 2박3일의 수련기간 동안 천도교가 예전의 명성과 세력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며 시천주와 인내천 사상을 다시한번 새기며 포덕의 결의를 다졌다.
용담성지 경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조신한 발걸음, 때로는 강경한 어조로, 때로는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봄볕, 봄꽃, 봄바람 넘치는 구미산 계곡의 용담수도원과 용담정은 마치 ‘무릉도원’이 예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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