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의회 뇌물 파문’ 관련 당사자들의 전원 사퇴를 요구하는 민주당 기자회견. 뇌물 파문이 여권 핵심부로 확산되는 가운데 김민석 최고위원(가운데)은 ‘뇌관은 따로 있다’며 추가 폭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 ||
뇌물 사건을 둘러싼 여야 간의 첨예한 대치 국면은 급기야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고 야권은 ‘주민소환제’ 추진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등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른바 ‘김귀환 뇌물 리스트’가 여의도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한나라당과 여권을 또다시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김귀환 뇌물 리스트’의 실체를 추적해 봤다.
김 의장이 주도한 ‘뇌물 스캔들’은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의 극심한 이전투구와 맞물려 있다는 게 정설이다. 서울시의회는 전체 106석 가운데 한나라당이 100석을 독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장 선거 또한 한나라당의 집안싸움으로 전개됐다.
한나라당 내부의 성향 분석에 따르면 시의원 가운데 친이계(친 이명박 대통령) 대 친박계(친 박근혜 전 대표) 비율이 8 대 2 정도로 친이계가 월등히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시의회 내에서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로 알려진 김 의장이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의장직에 선출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자금력과 로비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김 의장은 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 때 188억여 원을 신고해 전국 지방의원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인사로 등극한 바 있다.
김 의장이 2002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서울시의회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공천 자금을 투자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 의장이 시의회 진출 6년 만에 의장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배경에도 자금력과 로비력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회 의장 선거 과정에서 김 의장이 친이계나 친박계를 망라하고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쳤다는 사실에서 그의 막강 로비력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계파를 불문하고 동료 의원 30명에게 3500여만 원을 뿌린 혐의로 7월 16일 전격 구속됐다. 6월 20일 선거로 시의회 의장에 등극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그의 꿈이 그야말로 ‘일장춘몽’으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의 구속은 뇌물 사건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논란에 불을 지피는 전주곡으로 돌변하고 있다. 야당에서 한나라당 일부 현역 의원을 비롯해 몇몇 여권 실세들도 김 의장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이나 정치자금을 수수했을 것이란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가에선 김 의장이 살포한 자금 액수도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은 10억 원대에 달한 것이란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김귀환 뇌물 리스트’의 불똥이 시의회를 넘어 국회로 옮겨 붙고 있는 형국이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홍준표 원내대표와 권택기 진성호 강승규 윤석용 등 현역 의원 실명을 거론하며 대여 공세에 불을 지폈다.
▲ 홍준표 원내대표(왼쪽), 권택기 의원 | ||
김 최고의 의혹 제기에 해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홍 원내대표는 “합법적 후원금에 문제가 있다면 정계은퇴도 불사하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권 의원은 “영수증이 발부된 합법적 후원금임에도 실명을 거론하며 의혹을 부풀리는 것은 정치적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진성호 강승규 윤석용 세 의원도 각각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김 의장으로부터 한푼의 후원금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발했고 급기야 7월 23일 권택기 진성호 윤석용 의원은 자신들에게 ‘뇌물 스캔들’ 연루 의혹을 제기한 김 최고를 상대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찰 고소 소식을 접한 김 최고는 7월 24일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건은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돈공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뇌관이 하나 또 있다”며 추가 폭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또 “법적으로 따지자면 어차피 명예훼손이 안 되는데도 고소를 한 것은 나를 귀찮게 해 더 이상 떠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나를 검찰에 출근시키려 한다면 자기들도 출근해야 할 것이다. ‘모래시계 검사’라고 출근 안 하겠느냐”며 홍 원내대표와 자신을 고소한 의원들을 겨냥했다.
이처럼 ‘뇌물 스캔들’이 법정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등 야권 주변에서는 ‘김귀환 뇌물 리스트’와 관련한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김 의장의 막강한 자본력과 전방위적인 로비력에 비춰볼 때 또 다른 현역 의원들과 일부 여권 실세들이 이른바 ‘뇌물 리스트’에 포함돼 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
특히 민주당 대책위는 뇌물 스캔들과 관련한 정보를 전방위로 취합하는 동시에 사실 확인 작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대책위 주변에서는 친이계 인사인 P, L 의원과 친박계인 L 의원 등이 ‘뇌물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박계 중진인 A 의원과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여권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는 B 씨 등도 의혹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같은 민주당 측의 의혹 제기에 대해 “정치공세를 위해 억측만으로 괴담을 양산하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진상이 밝혀지면 음해의 당사자들은 무거운 법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여야 간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뇌물 리스트’ 공방전은 야권의 추가 폭로 및 검찰의 수사 추이에 따라 향후 적잖은 파문을 몰고올 것으로 관측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