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실장은 한때 비문 인사로 통했지만 문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선거 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선 기간 내내 문 대통령과 가장 자주 머리를 맞댄 최측근으로 꼽히며 실질적인 캠프 좌장 역할을 맡았다.
5월 11일 국회 자유한국당 당 대표실에서 임종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을 예방,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운동권 스타, 별명은 ‘임길동’
임 실장은 과거 운동권 스타였다. 전남 장흥 출신인 임 실장은 한양대 진학 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한양대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았고, 이로 인해 지명수배를 받게 된다. 전대협은 친북 통일운동 및 각종 반정부 활동을 주도해 이적단체로 분류됐다.
임 실장은 지명수배 후 경찰 추적을 교묘하게 따돌리며 기자회견만 10여 차례 했고 20번 넘게 각종 행사에 모습을 나타내 화제가 됐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임길동’이다.
경찰은 2계급 특진과 1000만 원 현상금을 내걸고 임 실장을 체포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동원된 경찰 수가 연인원 12만 명에 달했을 정도다. 임 실장은 약 10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전국 대학가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고 임수경 전 의원의 ‘평양 축전 참가’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임 실장의 신출귀몰 도피행각으로 시중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임 실장이 여장을 하고 다닌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임 실장은 검거 후 인터뷰에서 “안경은 쓰고 다녔지만 여장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임 실장 키가 176cm 정도인데 여장을 했다면 오히려 사람들 눈에 띄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 실장은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로도 인기를 끌었다. 수배 전단을 붙여놓으면 여학생들이 모두 가져가 남아나질 않았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전해진다. 어느 잡지가 여고생 대상으로 실시한 인기 투표에서 임 실장은 연예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임 실장 수배 전단은 2015년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다. 임 실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가 ‘응팔’(응답하라 1988)에 나온 거 아시나요. 덕선이가 노을이 보호하려 싸우다가 파출소에 간 장면입니다. 저 웃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라며 소감을 남겼다. 임 실장은 결국 체포돼 3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 제도권 정치 진입, 재선 성공
파란만장한 대학 시절을 보낸 임 실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에 따라 영입돼 정치에 입문했다. 임 실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성동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4선 이세기 의원을 꺾는 파란을 연출했다. 당시 임 실장 나이는 만 34세로 최연소 원내 입성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뒤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재선에도 성공했다. 임 실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대변인, 통합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의원 시절에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만 6년을 활동하며 외교 분야 전문가로 성장했다.
임 실장과 같은 시기 국회의원을 지냈던 전직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은 “임 실장이 고등학교 후배다.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당이 달라 깊은 관계는 맺지 못했다. 전대협 출신이라고 하면 목소리 가장 크고, 전면에 나서서 투쟁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임 실장은 달랐다.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면서 “임 실장은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할 때 뒤에서 야당 의원들을 다독이고 설득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전대협 주사파 출신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본 것도 사실인데 야당 의원들도 나중에는 임 실장에 대한 평가가 후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2002년부터 5년 연속 백봉신사상을 받기도 했다.
# 연이은 위기, 서울시로 컴백
임 실장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며 정치 인생에 시련을 겪는다. 2012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출마 자체를 포기해야만 했다. 임 실장은 2011년 삼화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2005년부터 곽 아무개 전 보좌관을 통해 임 실장에게 매달 300만 원가량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곽 전 보좌관이 불법 정치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사실을 임 실장이 알았거나 묵인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곽 전 보좌관은 신 회장에게 금품을 받은 사실이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 443만 원을 선고받았다. 신 회장에게 받은 돈을 곽 전 보좌관이 임 실장에게 전달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곽 전 보좌관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재판 결과에 불만은 없다. 공정한 재판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 이후 2014년 6월 임 실장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직을 맡으며 정치권으로 복귀했다. 임 실장은 2015년 12월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사임했다. 하지만 공천에서 탈락해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 문재인 캠프 좌장으로 우뚝
임 실장은 유독 정치 거물들이 사랑한 남자다. 임 실장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를 남달리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 외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임 실장과 함께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 실장을 임명했다. 원외 인사였던 그를 핵심 보직인 당 사무총장에 기용한 것은 파격인사라는 반응이 많았다. 임 실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총괄팀장으로 활동했고, 선거가 끝난 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됐다.
임 실장은 19대 대선에서 박원순 시장을 도울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임 실장은 2016년 10월 문재인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임 실장을 데리고 오기 위해 직접 설득을 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친문 패권주의 논란에 시달렸던 문 대통령이 외연 확장 차원에서 비문계 임 실장을 영입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문재인 캠프에서 임 실장과 함께 일했던 한 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임 실장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고 매너가 좋은 사람”이라며 “같이 일하면서 특별하게 생각나는 에피소드는 없지만 일처리에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권 인맥도 상당히 넓다. 실무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유력 정치인들이 임 실장을 찾는 것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초대 비서실장에 임 실장이 임명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경선과 본선에서 무난히 캠프를 이끌며 문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이유에서였다. 이는 적중했다. 임 실장이 호남 출신에 비문 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정부 인사 정책이 탕평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