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의원들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쇠고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채택과 의사일정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강기갑(위 왼쪽부터), 양승조, 김우남, 강기정, 정진섭(아래 왼쪽부터), 김용태, 윤상현, 권택기 의원. 연합뉴스 | ||
여당인 한나라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은 이미 참여정부 때 기획된 것이라는 이른바 ‘참여정부 설거지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졸속으로 타결된 ‘정상회담 선물용’에 방점을 찍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쇠고기 특위가 전·현 정부 책임론과 맞물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혈투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여야와 특위 위원들은 전·현 정부 대외비 극비문서 취합에 주력하는 등 뜨거운 정보전쟁을 펼치고 있다. 특위가 구성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대외비 문서가 공개됐지만 이것은 신호탄에 불과하고 정치권 전체를 뒤흔들 대형 핵뇌관이 터질 것이란 관측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한 건’을 노리는 야권 소장파들은 물밑에서 ‘대형사고’를 준비하고 있고 여권도 정국 대반전을 꾀하기 위해 숨겨둔 비밀병기를 투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보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쇠고기 국조’, 초읽기에 들어간 시한폭탄 같은 극한 대결 속으로 들어가 봤다.
7월 14일부터 활동에 들어간 여야 특위 위원들은 그동안 경쟁적으로 전·현 정부의 대외비 문건 등을 폭로하면서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치열한 진실게임을 펼쳐 왔다.
초반 폭로전이 전·현 정부 책임 공방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여야 간에 펼쳐지는 아전인수식 논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릴 정도다. 정부의 공식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공방전임에도 불구하고 핑퐁게임을 방불케 하는 형국이다. 그만큼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논란이 전·현 정부의 복잡 미묘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전개돼 왔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또한 최종 협상 타결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문제점들은 무성한 추측과 소문만 양산했을 뿐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진 상태다. 따라서 쇠고기 특위 활동이 본격화될수록 핵심 쟁점인 ‘실제로 어느 정부가 협상을 결정지었는지’를 놓고 여야 간에 그야말로 생존게임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쇠고기 특위에서 ‘책임론’의 희생물이 되는 쪽이 깊은 치명상을 입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무현 정부에서 결정된 쇠고기 협상을 현 정부는 도장만 찍었을 뿐”이라며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왔다. 홍정욱 의원은 7월 22일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미국산 쇠고기 협상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문건을 공개하면서 “참여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 권고(동물성 사료 금지 강화 조치)를 시행하면 OIE 기준을 완전 준수해 쇠고기를 월령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해 ‘참여정부 설거지론’에 불을 지폈다.
7월 29일 김기현 의원도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경제부총리 주재 관계부처 회의자료’ 문건를 공개하면서 설거지론을 부각시켰다. 김 의원은 “회의자료에는 우리 측의 세 가지 대안이 제시됐는데 모두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OIE 기준을 완전수용하는 내용이고 노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자료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패하자 다음 총선 득표를 위해 국익이나 국가 간 신뢰를 내팽개치고 책임을 다음 정부로 넘겨버렸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 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은 7월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지난해 그런 회의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부처 간 이견을 놓고 최종 결정하는 것은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와 쇠고기 협상은 전혀 별개 문제이고 쇠고기 수입은 30개월 미만 뼈 있는 것까지 양보할 수 있지만 그 이상 안 된다’고 단호히 얘기했다”고 반박했다.
▲ 여야 의원들이 폭로한 ‘쇠고기 협상’ 관련 정부 대외비 문건. | ||
참여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바 있는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전·현 정부 책임론 공방전이 심화되자 “과거 정부의 쇠고기 협상 과정과 현 정부가 출범한 후 4월 18일까지 합의에 어떻게 도달하게 됐는지 모든 대미 협상 서류를 똑같이 공개하자”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현 정부 책임론이 가열되면서 똑같은 정부 보고서를 놓고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는 기현상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경제부총리 주재 관계부처 회의자료’ 문건을 놓고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이 “참여정부에서 이미 쇠고기 협상 타결이 결정됐다”고 주장한 반면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정치적으로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며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청문회 일정(8월 18~19일)과 증인·참고인을 확정했지만 지루한 정치공방전이 반복될 경우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약간의 온도차는 있지만 이번 쇠고기 특위를 통해 각각 전·현 정부에 치명타를 가하는 동시에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야권에 비해 방어적 입장에 있는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설거지론’에 방점을 찍고 모든 정보라인을 풀가동한다는 방침이다. 광우병 위험 과장 보도 논란을 빚은 MBC
야권의 공세 수위에 따라 숨겨둔 비장의 카드를 승부수로 띄울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7월 30일 기자와 만난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여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정보”라고 전제한 뒤 “여권은 쇠고기 협상 과정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의 각종 치부와 관련된 고급 정보를 전 방위적으로 확보했을 것이고, 관련 자료들을 이번 쇠고기 특위에서 히든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그동안 공개된 문건 외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대형 뇌관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쇠고기 협상 타결 과정에서 불거진 ‘이명박-부시 빅딜설’과 ‘검은 커넥션’ 의혹 등을 철저히 파헤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정상회담 선물용’으로 이 대통령 방미에 앞서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통째로 내줬으며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또 여권 수뇌부가 미국산 쇠고기 개방 방침을 미리 정해놓고 총선에 미칠 영향을 의식해 4·9 총선 직후에 밀어붙였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3월 노 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기록은 물론, 지난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간의 대화록 공개를 정부 측에 요구하는 등 전 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쇠고기 정국’에서 정부의 대외비 문건을 수차례 공개하면서 ‘일당백’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은 현 정부 책임론과 미국 쇠고기 안정성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스타 정치인’을 꿈꾸고 있는 야권 소장파들도 경쟁적으로 비밀문건 취합에 열을 올리는 등 정보전쟁에 적극 가세하고 있다.
‘쇠고기 특위’가 가공할 위력을 지닌 시한폭탄을 탑재한 채 여의도 정치권을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특위발 시한폭탄이 정치권을 뒤흔들지 아니면 이번에도 불발탄으로 끝날지 국민적 관심이 쇠고기 국조 특위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