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플루스’ 우베 베르크하임 (오른쪽)과 ‘로레알’의 장 미셸 켄느 사장 | ||
독일의 이동통신회사인 ‘O2’의 브랜드 매니저 이포 회펠의 말이다. 여기서 ‘얼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흔히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 또는 사회 각 계층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유명인사를 떠올리게 된다. 가령 제품의 이미지에 가장 알맞은 모델을 찾아 브랜드의 ‘얼굴’로 기용하거나 또는 반대로 그 모델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제품을 선전하고자 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제대로 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요즘 독일 광고업계에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회사의 실제 경영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회사의 대표를 ‘브랜드의 얼굴’로 내세우는 이런 광고는 ‘신뢰’와 ‘믿음’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근사한 정장을 한 백발의 한 노신사가 카페에 앉아 있다. 그가 젊고 매력적인 여종업원에게 윙크를 보내자 여종업원이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와 찻잔에 커피를 따른다. 지긋이 눈을 감고 한 모금을 음미한 그는 곧 이렇게 말한다.
“카페인은 원두 속에 숨어있는 천사입니다.”
이 TV 광고는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정도로 유명한 커피 광고.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커피 브랜드 ‘이데 카페(Idee-Kaffee)’의 광고로서 이 광고 속에 등장하는 노신사는 다름아닌 알베르트 다르보펜 사장(68)이다.
이 광고가 독일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처럼 광고 속에서 직접 자사의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 사장의 모습 때문.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으로 친근감을 더할 뿐더러 특히 본인 스스로도 매일 열 잔을 마셔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커피 마니아라는 점이 더욱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게다가 이 광고의 콘티 역시 다르보펜 사장이 직접 짰다고 하니 그야말로 ‘사장의, 사장에 의한, 사장을 위한 광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사실 이처럼 회사의 사장이 직접 광고에 출연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은 지난 90년대 국내 모 대기업에서도 활용한 바 있어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것이 사실. 또한 독일에서도 지난 90년대 이미 오렌지 주스, 이유식 등 몇몇 회사들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광고를 해 적지 않은 효과를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유행이 되다시피 한 이런 ‘CEO 광고’는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불황 속에서 제품의 성능을 알리고 장점을 선전하기보다는 우선 ‘믿을 수 있는 기업’이라는 회사의 건실한 이미지를 강조해 꽁꽁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 여공들 앞에 서 있는 ‘트리게마’사의 볼프강 그루프 사장. | ||
가령 독일의 대표적인 이동통신회사인 ‘에플루스(E-Plus)’의 우베 베르크하임 사장과 세계적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L’OREAL)’의 장 미셸 켄느 사장이 만난 광고가 이에 해당된다. 나란히 앉아 켄느 사장에게 자사의 휴대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베르크하임 사장의 모습이 담긴 이 지면 광고에 대해 한 광고 전문가는 “소비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방법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다”고 말한다.
이에 질세라 이동통신업계 4위인 ‘O2’사의 경우 역시 사장을 내세운 광고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명 스타나 스포츠 선수 등 인물 위주의 광고를 해왔던 이 회사는 자사 대표인 루돌프 그뢰거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모든 CEO들이 이런 제의에 쉽게 응낙하는 것은 아닌 모양. 그뢰거 사장의 경우에는 처음 이 같은 제의를 받고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그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고심한 후에야 마침내 오케이 사인을 했고, ‘CAN DO(할 수 있다)’라는 광고로 소비자 앞에 직접 나서게 됐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광고에 직접 출연해 200% 효과를 본 사장이라면 독일의 최대 티셔츠 제조업체인 ‘트리게마(Trigema)’사의 볼프강 그루프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의 ‘9시 뉴스’격인 ‘타게스샤우’ 뉴스 시작 직전의 황금 시간대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이 회사의 최근 광고는 바로 사장의 기업 이념을 담은 ‘대국민 캠페인’ 형태의 특이한 광고.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수백 명의 여직원들 앞에 자리잡고 서있는 그루프 사장은 시청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는 오로지 독일 내에서만 제품을 생산할 것이며, 계속해서 1만2천 명의 일자리를 꿋꿋이 지켜나갈 것입니다.”
티셔츠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이 20초짜리 광고에 등장하는 것이라곤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고 있는 여공들의 모습과 그루프 사장의 모습뿐이다. 최근 독일 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일자리 문제를 기업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연결시킨 이 광고는 특히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는 타 기업과 비교했을 때 ‘애국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점차 독일인들의 공감을 얻은 이 광고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린 것은 물론이요, 그루프 사장 역시 일약 대국민 스타로 발돋움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창출했다.
처음 “광고의 광자도 모르는 우스운 광고다”라고 코웃음치던 광고인들의 비아냥을 뒤로 하고 그루프 사장은 현재 수많은 토크쇼에 불려 나가는 인기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