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취임 5개월 만에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터졌다. 이 사건이 권력형 공천 비리로 확산되면 이 대통령에겐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특히 이번 사건이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공천 비리에 대한 검찰의 전면 수사로 확대될 경우 여야는 사정정국으로 내몰리면서 벼랑 끝 대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김옥희 씨에게 공천 청탁 대가로 돈을 건네준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이 대통령과 수시로 독대를 하던 관계였다’는 말이 정가에서 나오면서 이번 사건의 불똥이 이 대통령에게까지 튀는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기 실패’로 결론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긴 하지만 정치권에선 김 씨 사건이 터진 시점 등을 놓고 ‘음모설’ 등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옥희 씨 사건의 정치적 파장을 따라가 봤다.
미국의 독도 표기 문제 해결로 한숨 돌리던 이명박 대통령이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인 김옥희 씨가 국회의원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 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옥희 씨와 김 아무개 씨 등은 18대 총선 공천이 진행되던 지난 2~3월 김종원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에게 접근해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공천되게 해 주겠다”며 세 차례에 걸쳐 10억 원씩 30억 원을 수표로 건네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아무개 씨가 브로커로 활약하며 두 사람을 연결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기로 결론이 난다면 최근의 상승 국면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사건이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전형적 권력형 비리로 확대될 경우 크나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터지자 벌써부터 법조계 주변에서는 “권력을 의식한 검찰이 서둘러 이번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만약 대통령 영부인의 이름이 직접 거명되고, 공천과 관련해 여권 실세들이 줄줄이 법정에 불려나올 경우 이명박 정권은 출범 5개월 만에 사상 최악의 사면초가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도 쉽게 칼을 휘두를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단 검찰은 김 씨를 구속하면서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김 씨가 김 이사장을 공천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았다며 사기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이 보기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 직계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명색이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나도 김옥희라는 사촌언니의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고, 선거 때는 당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도 “70세가 넘은 노인이 무엇을 알겠느냐. 브로커의 농간일 것으로 본다”라고 주장했다. 김 씨가 정치권과 인연이 그리 깊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권력형 비리가 아닌 브로커를 앞세운 단순 사기 사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이 로비 대상과 외압 여부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실체’가 발견될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만약 검찰이 이번 사건에 국회의원이나 여권 실세 등이 연루된 점을 밝혀내 선거법 위반으로 김옥희 씨를 기소한다면 이 경우엔 사기죄에 비해 형량도 무겁고 그 정치적 파장도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윤옥 여사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도 이번 사건의 로비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김옥희 씨에게 돈을 건넨 김종원 이사장과 이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사건이 터진 뒤부터 2일 현재까지 잠적 중이라 더욱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 김종원 이사장 | ||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지난 2003년경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곁에서 도운 측근이다. 대선 때도 나름대로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과 그 주변 관계를 잘 아는 그가 30억 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베팅을 했다면 그만 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사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74세나 된 노인의 말만 듣고 사기를 당했다면 누가 믿겠느냐. 그런 점에서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는 제3의 여권 실세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번 사건이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가 시초가 된 것이긴 하지만 김 이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친분이 깊다는 점에서 사건이 이 대통령 쪽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대통령이 도덕적 상처를 받을 가능성과 함께 지난 4·9 총선 당시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사들에 대해 실제로 로비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이번 사건의 파장은 궤를 달리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수사 과정에서 공천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연루설이 사실로 밝혀져 공천 비리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터진 배경을 두고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음모설’을 제기한다. 이 인사에 따르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모 여권 인사를 만나면서 지난 공천 과정 때 역할을 했던 한 여권인사에 대해 굉장히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가 지난 6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고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전격적으로 검찰에 넘긴 것도 이 대통령이 서운한 감정을 내비친 그 인사를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총선 때 공천이 비교적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일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것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후회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김옥희 씨 사건의 본질을 여야의 공천 비리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여권의 사정 조명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지난 6월에 인지한 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전격적으로 이관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첫 번째 친인척 비리 발생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공개적으로 수사해 일벌백계 의지를 보여 주어야 차제에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캠프의 전략·기획 파트에서 활약했던 한 인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여권의 네거티브성 국면 전환 카드’로 보는 색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출범한 뒤 여권은 5개월 동안 한 것도 없이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다. 촛불집회 등은 정무 기능이 작동을 못할 만큼 파문이 큰 사안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독도 문제 해결 등이 여권에서 마련하는 ‘포지티브성 국면 전략 카드’라면 김 씨 사건은 공천 비리 수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네거티브성 국면 전환 카드’로 볼 수 있다. 야권도 형평성 차원에서 수사를 받게 되면 당시 야당 대표들도 상처를 받게 된다. 촛불정국으로 꽉 막혀버린 정국을 일부분이나마 뚫리게 할 수 있는 카드라고 본다. 최근 검찰의 공기업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네거티브성 사정정국 카드가 먹혀들지 않자, 공천 비리 수사로 다시 그것을 이어가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