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민주당 대표 | ||
4·9 총선과 민주당 7·6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다소 소원해졌던 두 사람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대표가 과거 DJ의 청년조직으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크게 기여한 ‘연청’ 중앙회장 출신이란 점에서 두 사람의 관계 정상화는 예정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 복원 배경에는 정 대표의 ‘대망론’과 DJ의 ‘햇볕정책 계승’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DJ와 정 대표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신 밀월설’ 속으로 들어가 봤다.
쇠고기 파동과 금강산 피격사건, 독도사태 등 잇따른 대형 악재는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DJ와 정 대표에게도 어려운 숙제를 던져 주고 있다.
DJ는 촛불집회 배후 세력으로 지목받는가 하면 독도사태 이후에는 DJ 정부 때 맺은 ‘신 한·일 어업협정’을 놓고 여야 정치권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 대표는 ‘민주호’ 출항 한 달을 넘기고 있지만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고 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적 평가에도 직면해 있다.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촛불집회는 DJ의 주문과 민주당의 차기 집권구상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DJ 배후론’을 제기한 바 있다.
‘신 한·일 어업협정’ 논란도 독도사태 이후 정치권의 또 다른 논쟁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7월 1일 독도문제 긴급 간담회에서 “‘신 한·일 어업협정’은 당시 DJ정부가 서둘러 졸속으로 체결한 것”이라며 “‘신 한·일 어업협정’을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렇게 나가는 게 정도이자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정몽준 최고위원도 “‘신 한·일 어업협정’이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를 향해 독도에 관해 잘못된 사인을 보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주장이 많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세에 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박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신 한·일 어업협정’은 당시 해양법 전문가와 수산업계로부터 많은 자문을 받아 맺은 것”이라며 “‘신 한·일 어업협정’과 독도 영유권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 한·일 어업협정’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을 독도가 아닌 울릉도로 설정한 것으로 한·일 양국은 DJ정부 때인 1998년 9월 협상을 타결한 뒤 그해 11월 정식으로 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독도를 우리 영해가 아닌 중간수역으로 분류해 논란이 일었고 이후 한·일 어업협상에선 우리 어민들의 ‘쌍끌이 조업’ 실적이 누락돼 파문을 야기하기도 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8월 6일 제3차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등 지난 10년간의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차별화를 분명히 해 가뜩이나 금강산 피격 사건 등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더욱 꼬이고 있는 형국이다.
정 대표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선임된 지 한 달이 넘어서고 있는 정 대표는 당 안정화에는 연착륙했지만 제1야당 수장으로서 정국주도권 경쟁에서 밀리는 등 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상천 의원을 정점으로 한 구 민주계와의 화학적 결합도 난제로 남아 있다. 당내 국회부의장 경선 과정에서 쌓인 앙금이 채 가시지 않았고 대대적인 당직자 구조조정 과정에서 또 한 차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2년간 임기는 보장됐지만 ‘대망론’을 품고 있는 정 대표 입장에서는 현재의 자리가 강력한 리더십과 지도력을 보여줘야 하는 또 다른 실험무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정 대표가 취임 이후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각별히 예우를 갖추면서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지방순회를 정례화하고 있는 배경에는 전통적 지지층 복원과 조직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투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가 8월 4일 여성과 영남 몫으로 배정된 2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에 장상 구 민주당 대표와 윤덕홍 대구대 교수를 내정한 것도 지지층 복원 전략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장 전 대표는 DJ 정부 시절인 2002년 7월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국무총리에 지명됐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뒤 2006년 2월 구 민주당에 입당해 당 대표를 맡은 바 있다. 또 윤 교수는 전국민주화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역임한 대구지역 개혁세력의 좌장 격으로 노무현 정부 초대 교육부총리를 지냈다. 두 사람의 최고위원 내정은 DJ와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정 대표의 복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DJ와 정 대표는 밖으로는 거대 여당과 힘겨운 정치 투쟁을 전개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지지기반 복원과 정치적 입지를 제고해야 하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해빙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 대표는 8월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당원자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지시하는 등 4·9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했던 인사들에 대한 복당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이달 중순까지 선별복당 대상자를 확정할 계획이지만 박지원 의원의 복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정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와 박 의원 중심의 동교동계가 잦은 비밀 회합을 갖고 복당문제를 비롯해 향후 당 운영 과정에서 협력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교감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달 전국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지역위원장을 선출할 당시 박 의원의 지역구(전남 목포)를 비워둔 대목도 양측의 교감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