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위기도 있다. 최근에는 외압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인 정치 풍자 내용을 둘러싼 잡음 탓이다. 지난해 세태를 풍자한 코너 ‘민상토론’이 인기리에 방송되자 돌연 녹화가 중단되기를 반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시청률 하락은 위기설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 18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된 프로그램 성격과 진행 방식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엇갈리면서 올해 들어 시청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 짧게는 몇 십 초에 불과한 동영상에 울고 웃는 ‘온라인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럼에도 <개그콘서트>에 참여하는 개그맨과 제작진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사진출처=‘개그콘서트’ 공식 페이스북
# 전유성·김미화 주축으로 출발…최장수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의 위기에서 출발했다. 1990년대 접어들어 MBC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콩트 코미디를 겸비한 프로그램이 속속 폐지되는 상황에서 코미디언 스스로 찾아낸 자구책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개그콘서트>는 코미디언 전유성과 김미화가 주축이 돼 기획됐다. 당시 대학로에서 개그 공연을 이끌던 전유성은 스탠딩 공개 코미디 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김미화와 의기투합했고, KBS를 통해 실현했다.
<개그콘서트>는 개그맨이 스스로 낸 아이디어를 코너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매주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실제 방송 무대에 올리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방송 녹화에서 반응이 없거나 시청률이 저조할 경우 명맥을 유지할 수 없는 철저한 경쟁 방식이다. 덕분에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기존의 스튜디오 녹화 형식을 탈피한 것도 특징. 대형 공개홀에서 진행되는 공연 형식으로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웃음을 만들어냈다.
<개그콘서트>는 출발부터 시청률 상승을 맛봤다. 역대 최고 기록은 2003년 8월 31일 방송에서 거둔 32.2%(TNS 집계·전국시청률 기준). 이 같은 성공은 다른 지상파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SBS는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신설했고, MBC는 <개그야> 제작에 돌입했다. 모두 <개그콘서트>와 같은 방식이다.
사진출처=‘개그콘서트’ 공식 페이스북
# 스타와 유행어 탄생의 산실
18년이란 시간은 다양한 기록을 만들었다. 스타의 탄생과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어가 이어졌다. 초창기에는 토요일 밤에 방송됐고 이후 일요일로 시간을 옮기면서 한 주간의 피로를 씻어주는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누리던 무렵에는 ‘월요병을 달래준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개그콘서트>와 뗄 수 없는 스타는 김준호다. 프로그램이 신설된 1999년 KBS 공채 14기로 방송에 입문한 김준호는 <개그콘서트>의 첫 회부터 출연해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주역이다. 신인 시절에는 대선배인 심현섭이 이끄는 코너 ‘사바나의 아침’에서 어리바리 역할을 맡았고 이후 ‘꺾기도’, ‘감수성’ 등 코너를 이끌었다. 몇 개월간 공백을 가진 적은 있어도 프로그램을 떠난 적은 없다. 김준호는 6월부터 다시 복귀해 새 코너를 선보인다.
그런 김준호에게 이번 900회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김준호는 “2001년 이장님 캐릭터를 맡아 대중에 알려지면서 개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900회를 맞이하니 마음이 찡하다. 개그콘서트에서 지금껏 100개 정도 코너를 선보였고 그 중 20개 정도만 알려졌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꾸준히 참여한 코너도 있고, 그렇게 700회, 800회를 넘어 900회를 맞아 기쁘고 행복하다”고 밝혔다.
시청자의 기억에 남은 코너도 여럿이다. 초창기 ‘사바나의 아침’을 시작으로 ‘갈갈이 삼형제’, ‘수다맨’, ‘골목대장 마빡이’, ‘봉숭아 학당’, ‘고음불가’, ‘깜빡 홈쇼핑’, ‘생활의 발견’, ‘대화가 필요해’ 등 여러 편이다.
가장 오래 방송한 코너는 김병만이 이끈 ‘달인’. 2007년 시작해 2011년까지 4년간 방송했다. 김병만은 ‘16년간 천고의 수행 끝에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는 설정 아래 매주 방송을 통해 놀라운 재주와 묘기를 선보였다. 일반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미션을 완수해 보는 이들을 매번 놀라게 했다. 허세를 섞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내뱉는 그의 대사는 그대로 유행어가 됐다.
안영미와 강유미 등 여성 개그맨 네 명이 이끈 코너 ‘분장실 강선생님’도 빼놓기 어렵다. 이들은 매회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통해 조직 내 위계질서를 풍자했다. “똑바로 해 이것들아”,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등 유행어도 모두 이 코너에서 나왔다.
# 위기와 고비도…시청률 고전 ‘숙제’
기록이 곧 역사가 되고 있지만 <개그콘서트>가 18년간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위기도 찾아왔다. 히트 코너가 탄생하면 한동안 안정적인 시청률이 보장됐지만 인기가 늘 지속된 것도 아니다. 한 코너가 오랫동안 방송할 때면 어김없이 ‘우려먹기’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아이디어 발굴이 한계에 봉착하거나 시청률이 하락할 때마다 ‘개그 프로그램의 위기’라는 지적에도 시달려야 했다.
2년여 전부터는 시청률 하락세 역시 명확하다. 2000년대 30%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한 자릿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시청률은 4월 23일 방송에서 기록한 10.7%일 뿐이다.
<개그콘서트>의 이정규 PD는 “눈에 띄는 캐릭터가 많지 않다”는 점을 침체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시청자를 흡입할 만한 매력적인 개그맨이나 캐릭터 발굴에 집중하기보다 대본이나 극의 완성도를 중시하다보니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분석이다.
김준호는 “최근 지상파 시청률 전체가 내려가는 상황”이라며 “인터넷과 모바일 기반으로 짧게는 1분 안에 웃겨야 하는 현실은 사실 힘들다. 이렇게 가다간 2초 안에 웃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시청자도 좀 여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