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식의 한 장면.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
‘환상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역대 최고의 개막식으로 시작한 이 스포츠제전은 기대와는 달리 약물파동과 잦은 오심을 거치며 ‘더티올림픽’으로 평가절하됐고, 급기야 관중이 선수를 습격하는 보기 드문 ‘마라톤테러’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경제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은 그리스는 과다한 재정지출로 심각한 올림픽 후유증을 치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테네 현장에서는 그밖에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을 일본의 대중지 <주간신조>가 소개했다.
개막 직전까지 늑장을 부리던 올림픽 관련시설 공사. 벼락치기로 간신히 끝내기는 했지만 결국 지붕이 없는 수영장에서 지중해의 따가운 햇볕에 검게 그을린 선수들이 경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지 저널리스트는 “무리한 벼락치기 작업으로 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2백40명 정도 나왔다”고 지적했다.
가장 심각한 시설은 선수촌이었다. 광대한 황무지 위에 세워진 아파트 식의 숙소는 올림픽이 끝난 후 저소득층 시민들에게 분양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조잡한 게 사실. 일본 탁구선수인 후쿠하라 아이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려고 문을 열었더니 손잡이가 떨어져 버렸다. 오늘 아침에도 또 떨어져서 결함공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지 취재기자의 하소연이다. “문틈이 벌어져 있거나, 벽이 파손되어 있었다. 문이 잠기지 않는 방도 있었다. 심지어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더구나 에어컨의 온도는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서 밖은 35℃인데 실내는 18℃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염려한 선수단 본부에서 밤에는 에어컨을 끄라는 통지를 했을 정도. 또한 샤워기에서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불편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경기장 밖에서 의외의 고전을 했던 것이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한 한국과 북한 선수단. 함께 섞여 있어서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개막식에 불참한 선수들까지 합치면 한국 선수가 2백67명이었고 북한 선수는 그 7분의 1인 36명이었다.
▲ 선수촌 내부의 모습. | ||
<코리아리포트>의 변진일 편집장에 따르면 “북한의 임원수가 선수보다 많은 것은 시드니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원들의 역할은 우선 선수들의 신변보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은 선수들의 망명을 방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이나 보안관계자들이 임원으로 와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임원들은 선수들의 망명을 막는 감시자인 것이다. 그 배경에는 과거의 아픈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요시자키씨는 이에 대해 “91년 바르셀로나 세계유도선수권에 참가한 북한선수가 한국공관으로 망명한 일이 있었다. 북한선수들은 시합성적이 나쁘면 돌아가서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선수의 망명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그 외에도 90년대 후반 이후 두 명의 축구대표팀 감독이 망명했고,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가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대범한’ 그리스인의 일면을 살펴보자.
첫 경기로 벌어진 그리스 대 한국의 축구시합 때의 일이다. 그리스의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ERT의 축구중계가 20분 정도 중단됐다. 이 일로 방송국의 간부 두 명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방송사고에 그리스인들은 익숙하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체류한 적이 있는 한 외국인의 설명이다. “민간방송국의 프로그램 도중, 광고가 끝나자 프로그램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적이 있었다. 또 정전되는 일도 많지만 현지인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현지 취재기자도 “당시 리드당하던 그리스가 동점까지 따라붙자 시청자의 분노도 가라앉았다”며 그리스인의 낙천성을 설명했다. 지난 7월에는 TV 기자노조가 며칠 동안 파업을 감행하는 바람에 뉴스조차 방송되지 않은 적도 있다니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무신경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다고 그리스의 방송사정이 열악한 것은 아니다. 민간방송 외에도 세 개의 공영방송 채널이 24시간 방송을 하며 수신료는 전기요금과 함께 징수하고 있다. 또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의 방영에도 매우 엄격한 편이다.
결국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무신경한 면은 본래 TV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국민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체류한 적이 있는 한 외국인은 “그들은 여름에는 낮잠을 자거나 TV보다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최소한 전세계에 방송되는 시합중계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으니 다행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