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제공=노무현 재단
# 문재인표 일자리 공약, 고용 안정성에 중점
노무현 정부는 주요 경제 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일자리를 늘려 내수를 활성화시키면 기업이 투자를 확대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전략을 세우고 간병도우미, 보육도우미 등의 일자리 총 80만 개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문재인 정부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문 대통령의 대표적인 경제 공약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가 최고의 경제 정책이자 복지 정책이라며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상황판도 설치했다. 다만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서는 재원 마련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 편성을 요구했지만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은 국가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추경에는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무작정 공무원을 늘리려는 추경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공무원 숫자를 늘리겠다고 하니까 벌써부터 청년들이 노량진 고시촌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일인지 의문이다. 공무원 숫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면 200만 개는 못 만들겠는가. 결국에는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밝혔지만 국내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81만 개 일자리를 확대해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서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는 단순히 세금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일자리 늘리기 정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용 안정성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늘리기를 진행해 질 낮은 일자리가 양산됐고, 내수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 안정성이 높은 일자리를 창출해 내수 활성화와 직결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 중부담, 중복지 기조 이어갈 듯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했던 장기 국가발전계획인 ‘비전 2030’을 적극 벤치마킹해 복지정책과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가 계획을 발표했을 때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정책은 지난 보수 정권에서 이름만 바꿔 이미 시행됐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복지정책 기조는 소외 계층 의식주 등 기초생활과 자녀교육, 의료 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해 증세하는 중복지, 중부담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와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생애맞춤형 소득지원제도’를 공약했다. 영유아에겐 아동수당을 주고, 젊은이들에겐 청년구직 촉진수당을, 노인을 위해서는 기초연금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소득 하위 50%까지 건강보험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로 했다. 문제는 재원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는 복지 공약을 내놨다가 실행단계에서 대폭 축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자유한국당 전직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복지 정책을 모두 실행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해 보인다. 세부적인 세수 확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도 복지 강화를 위해 증세를 검토했었지만 당시 야당의 반대와 여론 악화로 무산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상황은 당시보다 긍정적이다. 대선 과정에서 모든 후보들이 증세에 대체로 동의한다는 뜻을 나타냈고 과거보다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 노무현이 못 이룬 검찰 개혁 이번엔?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지시 5호로 ‘검찰 내 돈 봉투 만찬 감찰’을 지시하며 강력한 검찰 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돈 봉투 사건으로 물러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는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을 임명하는 파격인사를 선보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법조인 출신이 아닌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한 것도 세간을 놀라게 했다.
검찰 개혁은 노 전 대통령 집권 초기에도 화두가 된 과제다. 노무현 정부 최우선 검찰 개혁 과제는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 확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권력기관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며 검찰수사 불개입 원칙을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과와 능력 중심의 다양한 인사검증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인사가 객관적으로 이뤄지면 검찰이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노무현 정부는 국정운영백서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은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회복해 대선자금 수사팀은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한국판 마니폴리테(깨끗한 손)’로 호칭될 정도였다”고 적었다.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은 반쪽 개혁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여전히 우세하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 정부에서의 검찰 개혁이 다소 불만족스러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 실패한 이유로 제도 개혁 미흡을 꼽았다. 검찰 독립성만 확보되면 중립성은 알아서 확보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독립성 확보와 함께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견제 장치 마련을 준비하고 있다.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도 그중 하나다.
관건은 검찰의 조직적인 반발을 뚫고 개혁안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얻고 있어 기대가 된다. 연속해서 파격적인 인사를 해도 검찰이 과거처럼 반발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공수처 설치 같은 것은 국회에서 통과가 되어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당이 찬성 입장이라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부동산 정책, 가격 안정이 우선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산의 상당부분을 부동산 형태로 소유하고 있어 특히 부동산 정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는 보유세를 확대해 수요를 줄여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 등이 대표적인 가격 안정 정책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부동산 시장 활성화보다는 가격 안정화와 서민 주거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 도입의 주역인 김수현 전 서울연구원 원장을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임명했다. 김 수석은 한때 국토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총부채상환비율(DTI)·담보대출인정비율(LTV) 등 대출규제와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 도입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부동산 시장은 7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을 내놨다가 실패하면서 민심 이반을 겪었던 만큼 문재인 정부에서는 섣불리 규제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성공하려면 우선 부동산 가격 급등을 바라는 투기 세력과의 대결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노무현 정부는 국정운영백서에서 부동산정책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투기세력들이 끊임없이 정부의 시장 안정화 정책을 왜곡∙비판하고 흔들어 정책이 시장에서 효과를 내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면서 “투기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일부 언론,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야당의 무책임한 정책 흔들기로 부동산정책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적었다.
# 대북 관계 물꼬 틀까
노무현 정부 안보 정책은 자주국방과 남북교류 확대를 통한 화해 정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주국방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추진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군 지휘부와의 대화에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나라 국방은 우선 자주적 역량으로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집단 안보라든지 안보 동맹이라든지 이런 것은 보조적인 것이어야 한다”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대우받는 그리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주국방해야 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 2012년 전작권을 전환하는 데 합의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안보상황 변화’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연기됐다. 문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임기 내 전작권 전환 추진을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남북교류 확대를 통한 화해 정책을 계승해 5·24 제재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책은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UN 대북제재 결의를 한국이 앞장서 깨고 국제사회의 북핵 저지 노력과 정반대로 가는 길이니 한국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고 김정은에게 꽉 막힌 돈줄을 풀어줘 결국 핵 미사일 실전배치 완성을 위한 마지막 뒷돈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박광온 대변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것은 맞지만 무작정 과거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부 비슷한 정책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보수정권의 정책도 모두 계승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