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16개 보와 96개 저수지를 만든 이명박 정부의 최대 국책사업이었다. 정부 재정 22조 원이 투입됐다. 때문에 이번 4대강 감사의 칼끝은 결국 이명박 정부를 향해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전(前) 정부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현(現) 정부는 거의 없었다. 4대강 감사도 결국 떠나간 권력과 새로운 권력 간 갈등의 재연인 것일까.
지난해 8월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녹조사태 해결 및 청문회 개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이날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낙동강 및 금강의 수질이 오염되고 녹조가 심해진 것에 대해 4대강 사업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고성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2일 4대강에 있는 보를 상시개방하고 4대강 사업 정책 결정 및 집행과정에 대한 정책감사를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는 정책감사에서 명백한 불법행위나 비리가 나타날 경우, 이에 상응한 처리를 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번 감사 결과에 따라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 지시에 따라 4대강에 있는 16개 보 가운데 낙동강의 고령보, 달성보, 창녕보, 함안보, 금강의 공주보, 영산강의 죽산보 등 6개 보는 다음달 1일부터 취수와 농업용수 이용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까지 수문이 개방된다. 나머지 10개 보는 생태계 상황 및 수자원 확보, 보 안전성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뒤 개방 수준과 방법이 단계별로 확정된다. 수문 개방으로 인해 사실상 4대강 사업 자체가 존폐 기로에 섰다.
청와대는 수문 개방을 통해 보의 기능을 사실상 없애는 동시에 4대강 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도 진행한다. 4대강 사업 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이 비정상적이라고 보고 왜 환경 문제와 수자원 확보 사업이 균형 잡히지 않은 채 추진됐는지를 감사원 감사를 통해 살펴보겠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명백한 위법·불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는 불가피할 것”(청와대 김수현 사회수석)이라는 입장도 내놓은 바 있어 강도 높은 감사와 수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방대한 토목사업이었던 만큼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에서 두 차례 감사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한 차례 감사를 했다. 한 가지 정부 국책사업을 놓고 무려 네 차례나 감사하는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이번 감사는 문재인 정부 사정 작업의 한 갈래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 칼끝은 4대강 정책 입안자는 물론 감사 결과에 따라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도 향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이미 대선 공약집에서 4대강 사업을 재평가하겠다고 밝혔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업의 부당성을 언급해왔다. 대선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 8월 낙동강 하구를 찾았던 문 대통령은 “4대강 이전에도 낙동강 수질은 좋지 않았는데 보를 만들어 놨더니 더 나빠졌다. 4대강 같은 정책적인 오류에 고의가 개입됐다면 당국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조한 전문가와 지식인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에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쏟아 부은 예산 22조 원은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고위공직자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몰랐다는 말로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국토를 완전히 망쳐놨는데 책임을 묻기 위한 정책실명제도 필요하다”고 썼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정당들은 발끈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감사 지시에 법적 하자가 있는데다 정치 보복적 성격이 크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은 문 대통령의 감사 지시에 대해 불법이라고 몰아붙였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원 감사는 국무총리가 감사를 요청하거나, 관련 부처 장관이 공익 감사를 청구하거나, 감사원이 직권으로 착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법 절차도 모두 무시하고 감사원 감사를 지시한 것은 법을 무시하는 일이다. 문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이 감사를 지시했든, 이것은 전형적인 정치 감사다. 법적 절차 위반”이라고 했다. 바른정당 조영희 대변인도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법과 원칙을 벗어나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적폐의 청산이 아닌 답습에 불과하다”며 감사 지시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권력을 내놓은 지 오래돼 세인들에게서 잊혀가던 이명박 전 대통령 측도 발끈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치 보복을 당할 만한 ‘유효기간’도 지났는데 다시 보복의 비극이 재연되고 있다며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즉각 반응을 내놨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제17대 대통령 비서실 명의로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종합적인 치수사업”이라며 “그동안 버려졌던 강을 되살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에 대비하며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행됐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감사와 재판 등 모든 평가가 끝난 전전(前前) 정부의 정책사업을 또다시 들춰 정치적 시빗거리를 만들기보다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후속사업을 완결하고 확보한 물을 잘 관리해 당면한 가뭄을 극복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