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초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 참석한 역대 대통령들. 재임 당시 친인척 비리 관리가 정권의 공과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 | ||
이명박 대통령 역시 요즘 친인척 문제로 고민이 깊다.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의 공천 로비 의혹 사건이 터진 데 이어 셋째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미공개 정보이용 주식거래 의혹,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잇단 친인척 관련 비리 의혹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최근 청와대가 오는 9월 인사에서 2~3명 정도 친인척 담당 직원을 늘리기로 결정한 이유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친인척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집중 관리에도 정권마다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역대 정권의 친인척 관리 행태를 뜯어보면 그 해답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청와대에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는 ‘친인척 전담관리팀’은 민정수석실에 속해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이 넘는 친인척 관리 업무를 이곳에서 전담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국정원이나 과거 안기부 등에서 비공개적으로 친인척 관련 정보를 수집해 내사를 벌이기도 했다.
임기 중이나 퇴임 이후에까지 친인척 관련 비리로 대통령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던 까닭에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친인척 관리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던 경우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더 나아가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초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취임 전 TV를 통해 중계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친인척 관리 방안에 대해 직접 언급한 바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친인척 관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경계해야 할 문제로 지금까지 대통령 주변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 선거에서 친인척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친인척부당행위금지법 등 3금 법안을 내놓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친인척 관리를 위한 법안까지 마련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어떤 식으로 친인척 관리가 이루어졌을까. 당시 청와대는 김 전 대통령의 친가는 8촌까지, 외가 쪽은 4촌까지 200여 명을 특별 관리했고 먼 일가친척까지 포함해 총 700여 명을 관리대상에 넣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친인척 및 공직자의 비리 관련 수사를 맡았던 ‘사직동팀’을 폐지하고 공식적으로 청와대 내에서 직접 이 업무를 담당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 ||
그 덕분인지 DJ정부 시절 중반을 넘어서까지 다른 정권에 비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정도의 대형비리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씨가 예금보험공사 전무를 맡았던 것처럼 친인척이 중요한 직책에 오르는 사례가 적지 않았고 당시 김홍일 의원과 가까운 사이였던 민정수석실 김 아무개 국장이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허술한 점’이 엿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DJ 부부의 아들과 친인척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주변의 간언을 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들 현철 씨를 신뢰한 나머지 물밑 활동을 묵인하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던 경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결국 세 아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된 이른바 ‘홍삼트리오’ 사건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도 친인척 관리에 오점을 남기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엔 친인척 관리가 비교적 철저히 이루어진 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친가의 8촌, 외가의 6촌에 사돈과 종친회까지 포함된 900여 명에 이르는 친인척들을 대상으로 상시 관리시스템을 운영했다. 당시 만들어진 자료는 친인척이 나열된 지도만 2권 분량에 호적 등 관련 서류만 캐비닛 한 개를 채웠다는 후문. 이러한 철저한 관리 때문에 일부 친척들은 ‘역차별을 받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문제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 문제 등 이전 정권의 사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취임 전부터 친인척 관리에 남다른 의지를 보였다. 2003년 3월에는 민정수석실 산하에 기존 팀과는 별도로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를 수집하는 ‘특별감찰반’까지 설치했을 정도.
하지만 이러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시절에도 친인척 관련 비리가 없지 않았다. 친형인 건평 씨가 장관 청탁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는가 하면 건평 씨의 처남인 민경찬 씨의 거액펀드 조성 과정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친인척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형 건평 씨가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유임’을 부탁했을 때 노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거론해 남 사장이 그 충격으로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 민경찬 씨 사건 당시엔 민정수석실에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화를 내기도 했다. 노건평 씨 사건이 터진 이후에는 건평 씨 집 주변에 24시간 경비를 두고 감찰을 벌이는가 하면 친조카 노지원 씨의 우전시스텍 주식 부당배정 의혹사건이 터졌을 때엔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반환시키도록 했다.
▲ 노태우 전 대통령 | ||
실제로 청탁 보고가 올라오면 박 대통령은 친필 경고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김정렴 전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은 친인척 중에 누가 이권에 개입한 것이 드러나면 청와대 출입을 금지하도록 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출입금지를 당한 친인척이 3~4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육영수 여사의 처가 쪽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장모 이경령 씨는 말년을 청와대에서 보냈고 처조카들도 자유롭게 청와대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처가 인사들의 정·관계 진출에도 ‘너그러운’ 편이었다.
친인척 비리가 가장 범람했던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전 전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친인척 관리를 엄중히 하겠다는 각오를 보였지만, 대인관계를 맺을 때 능력보다는 인정과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사스타일 때문인지 결국 ‘혈연’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대의 친인척 비리사건을 겪은 인물로 거론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의 처삼촌 이규광 씨가 연루된 이른바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사기사건’이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장영자 씨가 남편 이철희 씨와 함께 무담보대출의 허점을 이용해 사기행각을 벌여 총 6404억 원의 자금을 만든 사건이었다.
큰형 전기환 씨 역시 동생이 정권을 잡은 뒤 상경해 권력의 단맛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결국은 정권이 끝난 뒤 노량진 농수산물시장 강탈사건으로 감옥에 가게 된다. 이밖에도 동생, 사촌, 조카, 처남 등 일일이 세기도 힘든 친인척들이 각종 인사 청탁과 탈세혐의, 공금횡령 등으로 줄줄이 비리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추문을 남기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전 정권의 과오를 지켜보며 친인척 관리에 나섰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정가에 ‘청와대 가족회의’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친인척을 가까이했다.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 씨와 동서인 금진호 씨는 당시 정권에서 각각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박 씨는 다음 정권인 문민정부에서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권력의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