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정치권 일각에선 사정당국의 전방위 공세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적 차원을 넘어 친노그룹의 생존 플랜과 맞물린 대반격 프로젝트가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9월 위기설’ 등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만큼 ‘여론정치’ 등을 통해 친노그룹의 재결집을 꾀하는 동시에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본격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사당당국의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에 맞서 ‘맞짱’ 승부를 펼치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대반격 프로젝트 속으로 들어가 봤다.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대반격 프로젝트는 사정당국이 전개하고 있는 일련의 사정 드라이브와 맞물려 있다. 참여정부를 겨냥한 사정당국의 고강도 사정 칼날에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친노그룹이 방어 차원을 넘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정당국은 참여정부와 구 여권을 겨냥해 거침없는 사정몰이를 전개해 왔다. 각종 공기업 비리를 비롯해 신성해운 로비 사건, 대우그룹 구명 로비 사건, 제피로스 골프장 탈세 사건 등 굵직굵직한 대형 사건을 파헤쳐 왔지만 이렇다 할 ‘대어’를 낚는 데는 실패했다. 소문만 무성했을 뿐 ‘용두사미’식 수사로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정당국의 레이다망에 걸려든 또 다른 대형 비리 사건은 단순한 ‘의혹’ 수준을 넘어 참여정부 실세들을 정조준하면서 권력형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홍경태 전 행정관의 대형공사 수주 외압 의혹 사건은 참여정부 게이트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고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과 러시아 유전게이트의 주역인 전대월 씨에 대한 재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A 의원 등 참여정부 핵심 실세들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 사건에는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참여정부 때 급성장한 프라임 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에는 B 씨 등 참여정부 최고위급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어 검찰의 수사 추이에 따라 정치권에 또 한 차례 격랑이 휘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사정당국의 일련의 수사가 상당 부분 노 전 대통령 측근들과 참여정부 실세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형 비자금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노 전 대통령 또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최근 심상찮은 행보를 보이며 대반격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친노그룹 생존 전략과 맞물려 대대적인 ‘반격 모드’로 전환하고 있는 분위기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6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자녀 결혼식에서 주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
노 전 대통령은 8월 30일 민주당 경남도당 전진대회에 참석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전국정당이 돼야 한다”며 “호남과 충청을 합쳐도 영남 표만큼 안 되고 정권을 잡더라도 국회에서 다수당을 만들어내지 못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여권이 추진 중인 감세정책과 성장주의, 특권층 중심의 교육정책 등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복수의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9월 4일 자신의 생일 축하차 경남 봉하마을 사저를 찾은 김정권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에게 “감세정책의 경우 현재는 괜찮지만 향후 재정적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친노그룹도 모임 결성 등 정치세력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이끄는 연구재단 ‘광장’ 회원 200여 명은 8월 30~31일 양일간 전북 무주에서 대규모 하계 수련회를 가졌고 유시민 전 장관과 지지자 모임인 ‘시민광장’ 회원들은 8월 30일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청와대 혁신수석을 지낸 이용섭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승용 전 홍보수석 등 참여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 30여 명은 가칭 ‘청정회’ 모임을 추진하고 있고 성경륭·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성환 전 정책조정비서관 등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승계·발전시켜 나갈 ‘미래정책연구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사정당국의 전방위 사정몰이에 대한 방어 차원을 넘어 친노그룹 생존전략과 맞물려 대반격에 나선 듯한 형국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인터넷 여론정치는 벌써부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전진대회에서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고 토론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민주주의 2.0을 개발 중”이라며 “대통령 그만두고 민주당 편들며 핏대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 2.0을 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안목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론정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 재개 움직임에 대해 집중 포화를 날리면서도 퇴임 후 더욱 인기를 얻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 대한 경계심 또한 늦추지 않고 있다.
차명진 대변인은 9월 1일 논평을 통해 “정당의 당원 대회에 참가해 연설을 하고 정치 사이트를 개설하는 게 정치가 아니라면 무엇이냐”며 “노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상왕 정치’를 닮아간다”고 성토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사이버 세상을 통한 ‘친노 왕국’ 내지는 ‘사이버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민주주의 2.0’ 개설은 네티즌과 시민들 간에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추진하는 것이지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것은 아니다”며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와 맞물려 인터넷을 통한 ‘친노 왕국’ 조성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위키피디아’(개방적 백과사전)를 모델로 향후 사이버상에 차기 정권의 각료 등 예비 내각을 구축할 것이란 소문까지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 친노 직계인 L 전 의원은 지난 3일 기자와 만나 “‘친노 왕국’이니 ‘사이버 대통령’이니 하는 것들은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뒤 “다만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정치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기자가 ‘구체적인 재기 플랜은 무엇이냐’고 묻자 L 전 의원은 “무엇보다 노사모 등 지지 세력을 재결집하는 게 급선무인 만큼 친노 핵심인사들이 각자 위치에서 각개약진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정회’ 모임이나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장관이 이끌고 있는 ‘광장’과 ‘시민광장’ 모임이 활기를 띠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고 답했다.
L 전 의원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여론정치를 본격화하면서 ‘공중전’을 펼칠 것이고 친노 핵심들은 지지층 결집과 함께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 활동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친노그룹 주변에서는 이 전 총리와 유 전 장관이 2010년 지방선거 때 각각 서울시장과 대구시장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히 나돌고 있고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도 영남권 단체장 선거에 대거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정치 재개에 시동을 거는 등 ‘올인’ 전략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이 9월 6일 열린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자녀 간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은 점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전 실장과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랜 후원자로 친노그룹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들이다. 따라서 ‘자연인 노무현’이 양가 자녀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으로 직접 주례를 맡은 배경에는 친노 인사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자신과 친노세력의 건재함을 알리고 사정당국의 융단폭격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략이 투영돼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과연 향후 노 전 대통령과 친노그룹이 사정당국의 전방위 사정 칼날을 어떻게 방어할지, 나아가 자신들의 생존 전략과 맞물린 대반격 프로젝트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 나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