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필립의 친자라고 주장하는 건더, 필립 공과 아들 찰스 왕세자. 건더와 많이 닮았다. | ||
최근 수백년 동안 ‘루머의 창고’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 왕실에서 또 한번 쇼킹한 스캔들이 터져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찰스 왕세자의 알려지지 않은 이복형이 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책이 곧 출간되기 때문이다.
독일에 사는 텔레비전 엔지니어인 건더 폭크라는 인물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진 책에 따르면 건더는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내내 자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와 영국군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바로 이 영국군 장교가 나중에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이 되는 필립 공이라는 주장이다.
건더는 자신이 찰스의 이복 형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신이 필립 공의 친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DNA테스트를 받아 보려고 영국 왕실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영국 왕실은 이 정도 선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게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건더는 한 인터뷰에서 “내 출생의 비밀을 갖고 영국 왕실을 위협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필립 공이 사실을 토로하지 않는 이상 내 아버지가 누군지를 밝히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는 찰스 왕세자의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들이밀면서 “이 사진들을 비교해 보아라. 나와 왕세자가 닮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얼굴은 물론, 특이한 형태로 생긴 찰스의 귀와 건더의 것이 빼다 닮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올해 84세의 필립 공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결혼을 하기 전에 세 명의 여자와 사귀었다고 한다. 건더의 어머니 마리 캐롤라인이 바로 이 세 여자 중 한 사람인데 1945년 필립 공을 독일의 브레멘에서 만났다고 한다. 필립은 당시 영국군의 HMS라는 구축함의 중위였다. 마리에게 반한 젊은 장교 필립은 그녀를 적극적으로 유혹했다고 한다. 건더는 자신의 책에 당시 필립 공이 독일에 머물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까지 첨부했다.
건더의 주장에 따르면 필립 중위는 어머니가 임신상태였을 때 어머니 곁을 떠났다고 한다. 더욱 복잡한 것은 필립과 사랑에 빠진 마리의 당시 법적 신분이 유부녀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나치였던 군인과 결혼했지만 이 남자는 작전 중 실종되었고 나중에 죽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마리 캐롤라인은 그 남자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딸을 두었으나 잘생기고 매력적인 영국군 장교 필립에게 빠져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립은 이 순간에도 영국 왕의 딸인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마음이 가 있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을 하기 직전인 1946년 7월12일, 필립 공은 독일의 마리에게 와서 당시 한 살이던 건더를 자신이 데려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이때 마리 캐롤라인은 필립이 약혼을 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마리는 필립의 부탁을 거절했고 그 다음부터 그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런던으로부터 마리의 집으로 식량이 우송되었으나 그것을 보낸 사람이 필립 공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고 한다. 마리는 결국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고 건더는 폭력적이던 양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면서 자라나야 했다. 건더는 어렸을 때 또래 아이들에게 ‘토미 보이’(Tommy Boy)라고 불리며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전쟁 당시 독일에선 영국 군인들과 불륜으로 낳은 이른바 ‘전쟁 혼혈아’들을 모두 이렇게 불렀다.
건더가 자신의 아버지가 필립 공이라는 사실을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1994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마리의 친정어머니이자 건더의 외할머니가 건더의 출생 비밀에 대해 털어놓았던 것.
이후 건더의 아버지 찾기 작업이 본격화됐다. 영국 왕실에 끈질기게 확인을 요청했던 것. 그러나 왕실은 건더를 무시했다. 건더는 급기야 협박 비슷한 메시지도 받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책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건더는 “나는 단지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만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필립 공이 내 존재를 인정할 때까지 쉬지 않고 그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