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케 유리코(오른쪽)와 지원유세에 나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 ||
고이즈미로서는 이번 우정성 민영화 법안이야말로 본인의 역량을 클로즈업시키고 정치 지도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한 세이프’로 중의원을 통과한 ‘우정 민영화 관련 6개 법안’이 막상 참의원에서는 부결되자 고이즈미는 거의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 해산권 발동은 자민당 내에서 반대표를 던진 37명의 의원들에게는 진퇴양난, 보이지 않는 비수가 되어 가슴 깊숙히 꽂혀 들었다.
이 비정하고 매몰찬 자민당 총재 고이즈미는 법안에 반대한 자기당의 37명을 개혁저항세력이라며 이번 총선에서 절대로 공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명감독’ 고이즈미는 자기가 직접 전화를 걸어 오케이를 받아낸 깜짝 놀랄 후보들을 반대파 37명의 선거구에 자객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자객’ 1호는 현 환경성 장관인 고이케 유리코(小池 百合子·53)다. 카이로대학을 졸업하고, 이집트어 통역, 민방의 뉴스캐스터를 거쳐 정계에 입문한 그녀는 그동안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을 거쳐 자민당에 안착, 장관에까지 오른 대표적인 ‘철새’정치인이다. 아직 독신인 그녀의 미니스커트 미인계에 수많은 남자 의원들이 옴쭉달싹도 못한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독신인 고이즈미에게 가끔씩 손수 만든 요리를 대접한다고 하고, 좀 괜찮은 남자들을 보면 “나 이제는 슬슬 결혼을 생각해봐도 될 것 같아요” 하는 식으로 추파를 던져 상대방 혼을 빼놓는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능수능란한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총선에서도 ‘반란군’ 37명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는 도쿄 10선거구의 고바야시 고키(小林 興起·61) 의원에 맞서 스스로가 본거지(효고현)를 버리고 출마하겠다고 손을 들었다니, 어지간히 튀는 걸 좋아하는 강심장이다. 최근의 고이케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구노이치’. 계집녀(女)자를 풀면 3획으로 나뉘는데 이걸 일본어로 읽은 말로, 원래는 ‘여자’ 또는 ‘여자 닌자(忍者)’를 가리키는 속어다. 이로부터 ‘자객전술’이란 말이 이번 선거를 나타나는 하나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고이즈미가 뽑은 자객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다. 시즈오카 7선거구에 출마하는 가타야마 사츠키(片山 さつき·46). 전 일본 재무성 국제국 개발기관 과장이다. 대학교수 아버지 밑에서 공주님처럼 자랐다는 미모의 재원으로, 도쿄대학 법학부 재학중 ‘미스 도쿄대’로 뽑혔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야마구치 모모에(山口 百惠)라는 한국계 가수가 있었는데, 가타야마는 ‘동대의 모모에’로 불리며 여대생들 패션잡지의 모델도 했을 정도로 재색을 겸비했다. 대학 졸업 후 대장성에 들어간 그녀는 승승장구 커리어를 쌓아가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녀의 약력에는 읽다보면 짜증날 정도로 ‘여성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많다.
▲ 고이즈미 총리가 우정성법안 반대파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표적 공천한 ‘마돈나 닌자’들. 왼쪽부터 가타야마 사츠키, 이노구치 구니코, 후지노 마키코. | ||
이밖에도 조치(上智)대학 법학부 교수이며 전 군축회의 일본정부 대표부 특명전권대사인 이노구치 구니코(猪口 邦子·53)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해외파. 조치대학 졸업 후에는 예일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대학의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모교에서 교수를 하며 국제정치학자로 방송에도 자주 나온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특명전권대사 말고도 방위문제간담회위원, 행정개혁회의, UN군축위원회위원 등 여러 공직을 역임했다.
고이즈미의 ‘마돈나 자객’은 정부 관료나 학자와 같은 커리어여성뿐만 아니다. 일본은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 이들 요리연구가들 중에는 톱클래스로 꼽히는 이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아이치(愛知)현 4선거구에서 출마하는 후지노 마키코(藤野 眞紀子·55세)다. 남편은 전 일본 운수성 관료였고 현재는 참의원의원인 국회의원 사모님이기도 하다. 이런 그녀가 “요리와 정치는 마찬가지다. 개혁을 향한 첫 발을 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에 참여하겠다”며 고이즈미 편이 되어 출사표를 던졌다.
이번에 출마한 ‘마돈나 자객’ 거의 모두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투표 결과 분석 예상도 있다. 인기전략에 의존하는 고이즈미의 승부, 전국을 무대로 크게 벌이는 이 한판이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정작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이즈미의 선거전략을 지지하는 일본유권자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개혁저항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는 기치가 명백하다. 일관성이 있다. 강한 리더십에 매력을 느낀다.” 국민은 지도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오는 9월11일. 우리는 어쩌면 하나의 답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송미혜 일요신문재팬 기자 ilyo-jap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