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씨는 또 “영국은 화재에 민감한 나라라 실내는 모두 금연인데 (최 의원이) 자신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흡연을 할 수 없다며 고정된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사관 직원에게 이를 관철시키기를 요구했다”고도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최 의원 측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해외출장 때 딸을 데려와 관광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박은숙 기자
전직 대사관 직원 A 씨는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최경환 의원 같은 사례를 너무 많이 봐서 일일이 말하기도 힘들 정도”라며 각종 부조리들을 본지에 털어놨다. A 씨는 “대사관에 근무하면 (정치인 갑질은) 일상다반사로 보게 되는 일이다. 맛집 추천은 기본이고 대사관 직원들을 관광 가이드쯤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이 많다”면서 “수행을 다녀보면 이게 여행을 하러 온 건지 회의를 하러 온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문화탐방이라는 이름하에 유명 관광지나 도시 중심가를 다녀온 적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지는 A 씨의 말이다.
“회의 때 통역하러 들어가 보면 회의하면서 조는 사람도 있었고, 회의 준비를 너무 안 해 와서 이게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정치인들은 관행처럼 호텔 방 업그레이드를 요구했다. 굳이 스위트룸에 묵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해외 국정감사도 비슷하다. 정치인들 컴퓨터 화면을 우연히 보면 관광지 일일투어, 이런 거 검색하고 있더라. 해외공관은 언론의 사각지대고 근무자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내부고발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민들의 혈세가 이런 식으로 낭비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했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우려했다. A 씨는 “오 아무개 씨 폭로 이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큰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다. 기재부하고 외교부에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더라”면서 “동료들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은데 피해가 갈까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외교부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외교부는 오래전부터 자국민 외면 문제를 지적받아왔다. 최근에는 한 탈북자가 탈북을 문의하기 위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더니 “업무가 끝났으니 나중에 하라”고 대답했다는 폭로가 나와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해 A 씨는 “자국민을 외면해도 인사 고과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다. 이어 A 씨는 “외교부에 대한 감시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비리나 각종 사안들을 신고해도 제대로 처리가 안 될뿐더러 외교부 내 감찰실에서는 직원들을 감싸고 돌기 바쁘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외교부 조직 문화를 꼬집기도 했다. A 씨는 “상명하복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고시 패스한 사람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것들이 심각하다. 검찰도 비슷한 문제를 가진 조직이지만 언론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는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공관들은 완전한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례를 들려줬다.
A 씨는 “대사관 직원끼리 불륜관계여서 익명의 제보자가 이를 외교부 내부 감사실에 알렸다. 감사실에서는 높은 직급의 남자 직원은 감싸고 낮은 직급의 여직원에게만 책임을 물었다. 결국 그 여직원만 그만두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어떤 대사관 직원은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다녔다. 이를 고발하자 그 직원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 사용내역을 조작했다. 조직에 흠이 가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모든 평가는 대사가 하는 시스템이다. 상부에서 하부로만 평가가 이뤄지다보니 일반 직원들에 대한 갑질은 기본이다. 회식 자리에서 상관이 직원들에게 성경험을 물었다. 직원들이 대답을 못하자 자위행위를 한 적이 언제인가 묻기도 했다. 모욕적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한국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A 씨는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개인은 조직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대사관의 부조리를 고발한다고 해도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다. 큰 기대는 없지만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외교부 개혁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