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재오 전 최고의원, 이방호 전 의원, 정동영 전 대표, 손학규 전 대표. | ||
실제 정가에선 미국에 체류 중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이재오 전 의원의 ‘조기 복귀설’이 고개를 들고 있는가 하면 일부 거물급 정객들이 이미 재·보선 출마 결심을 굳히고 극비리에 출마 지역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여야 거물급들이 수도권에서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내년 4월 재·보선이 미니 총선을 넘어 거물들이 격돌하는 대권 전초전 양상으로 치러질 조짐마저 예고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여야 거물들은 내년 4월 재·보선에서 정치 생명을 건 생존게임을 선택할까.
검찰은 10월 9일 18대 총선 사범 공소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가 있는 현역 의원 34명(3명 구속)을 기소하고 69명을 불기소 처리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료했다. 검찰은 8일 이한정 의원(구속)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주는 대가로 6억 원을 받은 혐의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고, 9일 총선 재산 신고시 채무신고를 빠뜨린 혐의로 김재균 민주당 의원을 마지막으로 기소하는 것으로 총선사범 수사를 종결했다.
기소된 의원은 모두 34명으로 한나라당이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 7명, 친박연대 3명, 창조한국당 2명,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4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미 재판에 넘겨진 의원 중 18명이 1심 또는 2심 선고를 받았는데 무소속 강운태 의원(광주 남구)을 제외한 17명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다. 특히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 받은 의원도 10명이나 됐다. 한나라당 구본철(인천 부평을)·윤두환(울산 북) 의원, 민주당 정국교(비례대표)·김세웅(전두 덕진) 의원, 친박연대 비례대표인 서청원·양정례·김노식 의원,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이한정 의원, 무소속 김일윤·이무영 의원 등이다.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 후보자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가 선거와 관련해 징역이나 3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 받을 경우에도 해당 의원의 당선이 무효가 되는데 이러한 경우로 기소된 사례는 6건이다. 양정례 의원의 모친 김순애 씨는 직계 존속의 위법행위로, 한나라당 유재중(부산 수영)·허범도(경남 양산)·권경석(경남 창원갑) 의원, 민노당 강기갑 의원(경남 사천) 등은 선거사무장 또는 회계책임자의 위법행위로 의원직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유선진당 김낙성 의원(충남 당진)의 경우 선거사무장이 최근 벌금 200만 원을 확정 받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직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은 의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처럼 내년 4월로 재·보선 무대가 ‘미니 총선’ 격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원외 여권 실세 및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여야 거물급들의 출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여권 핵심 실세로 통하는 이재오·이방호 전 의원과 유력한 차기주자로 분류되고 있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민주당 원외 차기주자인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거물들은 정국 주도권 및 차기 대선구도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더러 침체된 정치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흥행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거물들은 내년 재·보선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자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는 등 정계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이재오 전 의원의 경우 벌써부터 ‘조기 복귀설’ 문제로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4·9 총선 때 문국현 대표에게 일격을 당한 뒤 미국에 체류 중인 이 전 의원이 당초 계획을 앞당겨 연말쯤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권 주변에선 이 전 의원의 구체적인 귀국 일정(12월 26일)이 나도는가 하면 그가 4월 재·보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공성진 최고위원은 9월 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이 전 의원의 거취와 관련해 “내년 4월에는 재·보궐선거가 많이 있을 것이다. 자기 지역구였던 은평에서도 지금 재·보선 가능성이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것(출마)도 뭐 가능한 시나리오의 하나가 아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문국현 대
▲ *표시는 1, 2심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의원. | ||
18대 총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주도했던 이방호 전 의원도 재·보선 출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9 총선 때 여권 핵심 실세인 자신을 이기고 최대 이변을 연출했던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전 의원 측은 강 의원의 재판 추이를 지켜보면서 부활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권 내 유력한 차기주자 중 한 사람인 강재섭 전 대표의 출마설도 나돌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은 4월 재·보선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고 총체적 위기상황에 몰려 있는 여권의 현실을 감안하면 수도권 출마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 전 대표의 경우엔 원내 진출보다는 입각 등 현 정부에서 핵심 중책을 맡아 ‘대권 수업’을 받게 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강 전 대표가 지난해 대선과 4·9 총선 정국에서 당 대표를 맡아 정권교체와 총선 승리를 이끌어 낸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용이 예상되기도 한다. 여권 일각에선 연말 개각설과 맞물려 ‘강재섭 총리설’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민주당의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동영 전 장관과 손학규 전 대표도 조기 정계복귀 및 내년 재·보선 출마를 놓고 목하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대선 패배에 이어 총선에서 낙마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절치부심 ‘차기’를 준비하고 있다.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는 각각 미국과 국내에 머물면서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내심 정계 복귀 시점 및 중장기 대권 플랜을 치밀하게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특히 두 사람은 내년 4월 재·보선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자 측근들로부터 적극적인 출마 권유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손 전 대표 측은 손 전 대표의 지역구이자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와 경기지사를 역임한 프리미엄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수원 장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두 지역구 현역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과 박종희 의원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손 전 대표와 가까운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아직 재·보선 지역이 확정되지 않아 손 전 대표가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내심 출마를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며 “종로나 수원 지역에서 재·보선이 실시되면 최상의 조건이 되겠지만 기타 수도권 지역 출마도 불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해 손 전 대표의 재·보선 출마론에 힘을 실었다.
정 전 장관 측은 정 전 장관의 고향이자 지역구였던 전주 덕진과 전주 완산 지역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지역구의 현역인 민주당 김세웅 의원과 무소속 이무영 의원이 1심과 2심에서 각각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 원과 300만 원을 선고 받은 상태라 이대로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날 경우 내년 4월에 재·보선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의 한 핵심 측근은 “정 전 장관이 차기 대권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원내 진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4월 재·보선은 더 없는 호기”라며 “정 전 장관의 높은 인지도를 감안하면 전주 지역이든 수도권이든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민주당 주변에선 벌써부터 정 전 장관과 손 전 대표의 재·보선 ‘전략공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침체된 당 지지율을 끌어 올리고 대안 야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두 거물을 수도권에 전략공천하는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논리다. 또 당 일각에선 강재섭 전 대표나 이재오 전 의원이 출마할 경우 두 사람이 그 대항마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내년 4월 재·보선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만큼 여권의 핵심 실세를 상대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참패와 총선 낙마로 ‘대망론’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또다시 정치생명을 건 생존게임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내년 4월 재·보선 지역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여야 거물들의 출마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거물급이 맞붙는 ‘빅 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고 있다. 특히 손 전 대표와 정 전 장관, 이재오 전 의원은 4·9 총선에서 일격을 당한 전례가 있어 또 한 번 거물 간 맞대결에서 패할 경우 정치생명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맞대결에서 승리하는 쪽이 정치복귀 명분 획득은 물론 차기 대권가도에도 탄력이 붙게 될 가능성이 높아 다른 한편으론 매력적인 카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차원에서 여야 지도부가 거물들의 ‘빅 매치’를 성사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내년 4월 재·보선 대진표가 과연 어떻게 짜여질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