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서 의미하는 ‘아동 학대’에는 사실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가령 훈련중 어린 선수들을 구타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은밀한 신체 접촉을 강요하는 행위 또는 어린이 사진을 인터넷에 무단 유포하는 행위 등도 모두 포함되는 것.
버킹엄셔에 거주하는 한 14세 소년의 어머니의 눈물 섞인 호소를 들어보자. 지금도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고 말하는 그녀는 “지금껏 축구란 스포츠를 신사적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순진한 어린이들을 파렴치한 인간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더 이상 팬들로부터 존경을 받겠는가”라며 분개했다.
그녀의 14세 아들이 팬티 차림에 운동화만 신고 황급히 집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새벽 4시 무렵. 평소 가깝게 지내는 심판 아저씨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하룻밤 묵고 오기로 했건만 어찌 된 일인지 벌거벗은 채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후 아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영국축구협회(FA)의 심판 교육 과정에서 알게 된 마이클 웹 심판(47)과 친하게 지내왔던 아들과 달리 어머니는 늘 지나치게 친절을 베푸는 웹의 태도를 미심쩍어 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충고를 할 때마다 아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웹 아저씨는 정말 자상하고 친절한 걸요. 게다가 아저씨는 축구 심판이잖아요.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데요”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웹 심판이 그녀의 아들을 집으로 초대한 후 잠든 사이에 몰래 성폭행을 하고 만 것이다. 이상한 낌새에 눈을 뜬 아들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성폭행하고 있는 웹 심판을 보고는 기겁을 한 채 그렇게 집으로 도망을 오고 말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후였다. 비록 웹 심판은 아동 성추행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우울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는 소년은 심지어 중등학교 졸업시험에도 낙방하는 등 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힘들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영국의 한 축구계는 “이와 같은 사건은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어쩌다가 한번씩 일어나는 아동 학대 사건도 폭력이나 욕설 등 작은 사건들에 불과하다며 부모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아동 학대로는 축구단에 소속되어 있는 어린이들의 사진을 무심코 사용하는 행위다. 이는 사용하는 사람도 그 위험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 사실.
가령 볼보이 어린이가 축구장에서 뛰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구단 홍보용으로 제작하거나 인터넷의 웹사이트에 캐릭터로 활용할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얼굴이 공개된 어린이는 뜻하지 않은 비방이나 심지어 성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된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심심치 않게 행해지는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들의 볼보이들을 향한 언어 폭력도 문제다. 경기중에 볼을 너무 느리게 또는 너무 빨리 경기장으로 던졌다는 이유로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공을 던져서 부상을 입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아동 학대는 비단 축구계에 종사하는 어린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기를 관람하러 온 어린 팬들도 뜻하지 않게 성추행을 당할 수 있다. 가령 구단의 마스코트 탈을 쓴 인형과 사진을 찍을 경우 이들이 어린이들의 은밀한 부위를 만지거나 일부러 야릇한 포즈를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FA는 선수들이 어린 소녀들의 몸에 사인을 해주는 일도 엄연한 성추행이라며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선수 본인도 어디까지가 성추행이고 또 어디까지가 아닌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애매모호한 것이 현실.
이에 FA는 앞서 말한 ‘아동 성추행’의 사례들을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행동 지침서를 마련한 후 철저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에 있다.
한편 FA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처럼 지난 4~5년 동안 ‘어린이에게 위험한 존재’로 판단되어 징계를 받은 축구 관련 종사자들은 약 70명 정도. 이들 대부분은 벌금형이나 보호관찰 등 경미한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다른 리그로 옮겨 갔을 경우 아무런 제재 없이 손쉽게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한 비록 FA로부터는 취업 금지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버젓이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다반사.
그 결과 지금도 여전히 일주일에 10건 정도의 아동 학대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FA는 이번에 발표한 조사 보고서를 기점으로 상당 부분 개선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가령 감독이나 코치, 심판 등 축구 관계자들의 신상 명세서를 자세히 기록한 ‘통합형 ID 카드’를 발급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는 어느 리그에서도 공통으로 사용될 수 있는 신분 증명서로서 가령 청소년 축구 리그에서 아동 학대의 전과가 있는 경우, 다른 리그로 이직했을 때에도 고스란히 기록이 남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개혁과 노력을 입으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과자들이 암세포처럼 몰래 축구계에 남아 있는 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