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이후’ 정국의 향방을 가늠할 첫 시험대는 10·29 재·보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흔히 재·보선은 ‘여당 지도부의 무덤’으로 불린다. 노무현 정권 시절 열린우리당이 각종 재·보선에 연전연패하면서 그에 책임을 지고 대표(의장)가 줄줄이 낙마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재·보선은 여당으로선 어려운 싸움이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0·29 재·보선은 기초단체장 두 곳(충남 연기군수·울산 울주군수) 등 전국 14곳에 치러지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선거지만 한나라당이 핵심인 단체장 선거에서 고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연기군수 재선거는 몰라도 울주군수 보궐선거는 승리를 낙관했다. 그러나 최근 당 자체 조사결과 연기군수 선거는 자유선진당 후보에 큰 격차로 뒤졌고,울주군수 선거도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지만 적극투표 의사층에서는 무소속 후보에 근소하게 역전당하는 등 승리 전망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울주군수 보선에서 질 경우 정국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희태 대표와 안경률 사무총장 등 지도부가 ‘올인’하고 있는 터에, 다른 곳도 아닌 ‘안방’인 영남에서 진다면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울주군수 보선에 ‘당 소속 선출직의 귀책사유로 재·보선을 치를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내부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후보를 낸 터다.
특히 재·보선 직전에 터진 쌀 직불금 파동 등으로 정국이 어지러운 가운데 여당이 참패할 경우 당장 야권은 ‘민심의 심판’이라 선전하며 정국 주도권 장악의 호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11월 10일부터 시작해 26일간 치러질 ‘쌀 소득 보전 직불금 불법수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는 누구에게 치명타를 안길지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불거진 일이긴 하지만 지금껏 드러난 바로는 한나라당에서만 의원 2명(김학용·김성회 의원)의 수령 사실이 확인됐고 불법 수령자 명단에 이명박(MB)정부 고위인사들이 포함될 경우 여권에도 엄청난 데미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여권은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이 노 전 대통령을 정조준한 채 직불금과 관련 전 정권의 비리 및 은폐 의혹을 폭로하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증인 출석’ 의사를 비치며 정면돌파에 나설 뜻을 밝히고 나서면서 치열한 난타전이 될 것이란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17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불법 수령자 명단 속에 생각하지 못했던 정치권 인사들이 포함돼 있을 경우 여의도 정가가 일거에 카오스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직불금 국조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여권이 부메랑을 맞는 일이 벌어질 확률은 낮다고 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워낙 국민정서에 미치는 파장이 큰 사안이라 불똥이 엉뚱하게 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2009년도 예산안과 감세 범위를 둘러싼 공방도 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미 작금의 경제난을 MB정권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삼기 위해 진보진영,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총공세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8개월 만에 우리 경제를 망쳐 버린 MB와 한나라당의 실정을 하나하나 낱낱이 파헤치겠다”(민주당 정세균 대표)며 종합부동산세 폐지반대를 위한 1천만인 서명운동까지 전개하고 있을 정도다.
야당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문제는 정부·여당 간에도 이견이 심상찮다는 점이다. 가령 본격적인 국회 심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의원(한나라당)은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데 필요한 감세는 하되 그렇지 않은 것은 미뤄야 한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감세를 다 하게 되면 곤란하다”며 선수를 치고 나섰다.
이 위원장은 또 273조 원 규모인 내년 예산안에 대해서도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 상황이 장기화되면 당초 성장률 5%대를 기반으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도 심의과정에서 조정할 필요성이 논의될 것”이라고 가세하고 나선 상황이다.
반면 정부는 이미 확정안 예산 및 감세안을 원안대로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감세는 감세대로 하고 (재정) 지출은 지출대로 늘리면 된다. 오히려 지금은 감세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자칫 이 문제를 놓고 당정 간에 파열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뜨거운 감자’인 종부세 완화 문제도 여야 간, 그리고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거세 향후 정국의 뇌관이 될 수 있다.민주당 등 야권은 ‘결사 저지’를 공언하고 있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비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부 원안대로 처리되면 ‘한나라당=부자정당’이란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다”는 기류가 상당해 이견 절충이 쉽지가 않은 형편이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국회 동의안 비준도 여권에서 ‘연내 처리’ 방침을 밝히면서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한미FTA에 부정적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 확률이 높아진 터에 여권이 무리하게 비준을 추진할 경우 이에 반대하는 야권과 노동자·농민·시민세력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밖에 한나라당이 개폐를 공언한 이른바 ‘좌파 법안’의 국회 처리도 정쟁의 고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 완화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공기업 민영화 관련 법안 등 어느 것 하나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될 것이라 쉽게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에서다. 여기에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대립구도가 심화되고 있는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도 향후 정국의 불안정성을 배가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준원 언론인